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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태연의 작사법'을 읽고

원태연 저

by 윰글

‘작사하는 즐거움에 빠져서 살다 죽고 싶다. 잠도 못 자고 배고픈 것도 잊을 만큼 즐거운 이 일을 실컷 하고 싶다. 그래서 사는 동안 내가 쓸 수 있는 모든 것,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을 쓰고 싶다. 슬프고 아름답고 눈물 나게 명랑한 것들을 언제까지고 쓰고 또 쓰고 계속 쓰고 싶다.’ 137쪽

이 문장은 작가가 책의 끝부분에 남긴 글이다. 작사가 얼마나 좋으면 이런 말을 할 수 있는지 느껴졌다. 창작은 고통을 동반하지만, 그 고통을 넘어서는 행복을 작사라는 작업은 선물한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이야기다.

윤종신이 “작사는 음악 영역이다”라고 말한 것이 떠올랐다. 멜로디라는 옷을 입은 글, 그것이 바로 가사다. 그래서 작사만이 지닌 고유한 매력이 충분하다. 나 또한 꼭 도전해 보고 싶은 영역이다.


이 책의 작가 원태연 님은 시인이자 작사가, 영화감독이자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다. 대학 시절까지는 사격 선수였지만, 스물두 살에 낸 첫 책으로 베스트셀러 시인이 되었다. 그 이후로 장르를 넘나들며 꾸준히 글을 써왔다.

김현철의 ‘왜 그래?’, 성시경의 ‘안녕’, 백지영의 ‘그 여자’, 지아의 ‘술 한잔해요’ 등 세대를 아우르며 사랑받는 노랫말들을 남겼다.

작사 30주년을 기념해 출간한 이 에세이는 감성 시인이자 작사가인 원태연의 30년 진심이 담겨 있다.


“당신의 영혼에 가장 아름다운 말을 들려드리고 싶었습니다.”


시인은 대체로 눈매가 깊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도, 이 책을 쓴 원태연 작가도 그러하다.

짧은 몇 마디 안에 상황과 감정을 오롯이 담아내야 한다는 점에서 시와 가사는 닮았다. 작사가의 성향에 따라 그들이 만들어내는 노랫말은 각기 다르게 빛난다. 특히 놀라웠던 건, 박명수 님이 부른 ‘바보에게 바보가’의 가사가 원태연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 결혼식장에서 아내에게 들려주는 축가로 쓰인 이 노래는, 진정성 있는 가사 덕분에 내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 가사 하나만으로도 원태연 작가의 작사 세계가 궁금해졌다.


작가가 시인이라서일까. 혹은 작사가의 특성일까. 문장이 시적이고 감성이 풍부하다. 특히 슬럼프를 겪던 시기를 서술한 부분에서는 가장으로서 원태연 작가의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그 안에 어떤 고통이 있었을지 고스란히 전해졌다. 생활고에 시달리며 ‘회 뜨기’―곡의 가이드를 녹음하는 장소에서 적은 돈을 받고 즉석에서 가사를 써주는 작업―를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

“쟤가 이상해서 글을 쓰는 거야.”

어릴 적, 작가의 아버지가 한 말이다. 자기만의 세계가 있어야 글을 쓸 수 있다는 의미처럼 느껴져 공감이 됐다.


이 책은 작가가 작사한 곡을 소개하고, 그 곡의 작사 과정을 서사 형식으로 풀어낸다.


‘내게 뭔가 울림을 준 사소한 일화나 문장 같은 건 머릿속의 화석처럼 깊고 단단하게 새겨진다’


이 문장에도 공감했다. 사람은 결국 자기가 기억하고 싶은 것을 기억한다. 내게 의미 있게 다가온 상황이나 일화는 결코 잊히지 않는다.

또, 가사를 쓰기 위해선 곡이 쓰인 배경을 꼭 알아야 한다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는데, 이 책에서도 이와 관련된 언급이 있었다.


"작사는 어떤 면에서 느낌과 감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다. 이탈에선 안돼. 그는 정확한 선로가 놓여있긴 하지만 또 그 안에서 감각을 끌어올려야 뻔한 느낌이 안 든다." 100쪽


그냥 떠오르는 대로 주절주절 적으면 시가 된다. 물론 나중에는 수정을 거쳐 처음의 형태와 달라질 수 있지만, 초기에 가졌던 그 감성은 시의 원석이 된다. 이런 점은 작사의 과정과 비슷하다.

이렇게 창의적이고 즐거운 작사 작업도 마감 기한에 맞춰 가사를 짜내야 할 때가 있다. 작가는 이런 상황을 “학대 수준의 집필기”라고 표현한다.


'감정을 눌러서 표현한다'

'감정의 무게를 숨긴다'


가사는 그 감정을 감출 때 듣는 이를 더 안달 나게 한다. 그래서 위의 표현이 인상 깊었다.


‘작사가는 본인이 아닌 그 곡의 화자가 말하게 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가사란 멜로디뿐 아니라 가창자의 목소리와 어우러지게 하는 도구여야 한다.’


드라마 OST를 쓴다면, 먼저 드라마의 장르를 파악하고 누가 극을 이끌어가는지 확인해야 한다. 작사는 잘 풀리지 않는다고 해서 비슷한 콘텐츠를 참고하면 안 된다고도 안내한다.

또한 다양한 가사를 쓰기 위해서는 평소에 메모를 습관화할 것을 권한다. 특히 주제어별로 자료를 정리하라고 조언하는데, 예를 들어 ‘사랑, 기억, 풍경, 사람, 책’ 같은 단어뿐 아니라 문장, 그림, 숏폼 영상, 유튜브 콘텐츠 등 작사에 도움이 될 만한 것은 무엇이든 저장하라고 한다.


작가는 시인으로 시작해 작사에 빠져 살았지만, 한동안 영화감독과 크리에이터로도 활동했다. 그러나 결국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작사로 돌아와, 그 작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해 보였다. 그런 작가의 길을 응원하고 싶었다. 또한 내가 좋아하는 시와 작사의 세계가 어떻게 연결되는지, 어떤 노력을 해야 원하는 노랫말이 탄생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


감각적인 언어로 영감을 발견하고 싶은 사람, 작사가의 태도가 궁금한 사람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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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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