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명예로웠던 하루.

충격과 소름 그리고 밀려오는 감명.

by 윤모닝








평일 오전 8시.

전날까지 괜찮았던 한 환자가 이른 아침

언제 응급상황이 생길지 모르는 부정맥이 관찰되면서


여유로울 거라 예상했던 나의 데이 근무는

오전부터 촘촘하게 신경이 곤두 세워져있었고

책상 위에 있던 아이스커피가

언제 밍밍한 물이 되었는지 몰랐을 만큼

틈틈이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렇게 점심시간에 가까워 질 무렵,

입원하기위해 한 환자가 병동에 올라왔다.



11:45 am 병동으로 입원함.

mental alert.
both pupil 3mm/3mm slugguish.
지남력 all intact.
motor power 4-extremity all G3 checked.
chest discomfort 호소 없으나 mild dyspnea 호소함.
Spo2 monitor apply 함. Spo2 97-98% checked.
head elevation 후 nasal prong O2 1L/min apply 함.




호흡곤란으로 입원한 환자.


보통 신환이 오면 환자의 기본 정보 및 초기 환자 상태 사정을 위해

면담 후 병실을 안내하지만 환자가 호흡곤란을 호소하여 먼저 침상으로 안내했고

산소포화도 수치가 괜찮았지만 혹시나 하는 생각에

처방에 없었던 산소포화도 모니터를 부착하고

산소공급을 해주고 나서야 동행한 보호자와 면담을 진행했다.


그런데 혹시나 라며 적용한 이 산소포화도 모니터가 아니었다면

아마도 그 이후에 벌어진 응급상황과

환자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상상이 안 됐을 것이다.




1시간 뒤,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하던 도중 스테이션 중앙모니터에 알람이 울렸다.

좀 전의 신환에게 적용했던 산소포화도 모니터로 측정된 맥박수(Pulse Rate, PR)가

낮다며 알림이 울린 것이다.


‘맥박수가 37회 라고?!’


오전부터 언제 응급상황이 벌어질지 몰라 대비하고 있던 다른 환자에게

집중돼있던 내 신경이 그 순간 신환에게 기울기 시작했다.

이미 심박동기를 가지고 있는 환자였기에

셋팅 값보다 맥박수가 낮을 수 없는데?라는 의문을 가지며

곧바로 달려가 환자 상태를 체크하였고 바로 심전도 모니터를 적용하였다.



그렇게 발견된 응급 전단계 부정맥.

그리고 그로부터 10분 뒤 벌어진 응급 부정맥과 몇 초 간격으로 나타난 환자의 의식 소실.

제세동기 적용 후 급히 침대채로 병실에서 처치실로 이동.


중환자실 arrange 하는 도중에도,

중환자실로 이동하는 엘리베이터 안에서도 관찰되는 응급 부정맥과 2-3초간의 잦은 의식소실.

그렇게 의료진 동반하여 중환자실로 전동.


이 모든 상황이 입원 이후

불과 2시간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 이후 할 일을 마무리하고

다음번 간호사에게 인계를 해줘야 했기에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다시 냉정함을 유지하며

얼른 일을 정리하고 퇴근했다.


하지만 나는 집으로 운전하며 가는 차 안에서

정신을 제대로 못 차릴 정도로

머릿속이 마치 삐- 하며 자동 스위치 오프를 한 것처럼

멍-하기만 했다.



'혹시 그때 내가 산소포화도 모니터를 적용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환자 상태가 악화되는 것을 발견하지 못한 채 조용히 지나갔을 것을 생각하면

너무 소름 돋는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지금껏 9년 동안 이 일을 해오면서 정말 지치고 힘들어도

분명 이처럼 누군가의 생명을 살리는 순간이 많이 있었기에

나 스스로에겐 그래도 견딜만한 충분한 명예로움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날은 뭔가 달랐다.

평소의 뿌듯함이라고 하는 감정으로 표현되지 않는 충격과 소름.

그리고 그 뒤에 큰 물결처럼 밀려오는 감명.

조용히 건너편으로 가까이 가고 있던 환자를

다시 생명 쪽으로 데려다 놓은 느낌이 머리가 아닌

온몸으로 서서히 느껴지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비록 이 날의 일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적어도 나에겐 지금 간호사의 삶을 그만두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정말 인상적인 하루였다고.

나중에 나이가 들어 이 시절의 이야기가 궁금할까 봐

차곡차곡 기록하고 있는 일기장에 써놓을 만큼.



며칠이 지난 지금도 그날을 다시 생각해 보면

아직 소름 돋을 정도로

정말 만만치 않은 하루였지만

간호사로 보내온 시간들 속에서

가장 잊지 못할 역사적인 하루였다고 말할 수 있을 만큼

나에겐 너무도 감사한 날이었다.

그날 그 근무를 주신 파트장께도 감사하고

그 파트를 맡게 해 줘서 감사하고

뭣보다 그 순간에 있게 해 줘서 감사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