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곳을 계속 지켜나가자.
바뻐 용건만 간단히 해.
바뻐 나중에 해.
바뻐 빨래 걷어야 해.
바뻐 빨래 널어야 해.
바뻐 냄비에 뭐 올려놨어.
바뻐 설거지 하고 저녁 먹을 거 사러 시장 가야 해.
바뻐 너 겨울 옷 정리하고 여름옷 꺼내놔야 해.
바뻐 이 커피 얼른 마시고 청소해야 해.
바뻐 이제 방송해야 돼.
바뻐 아빠 월급날이라서 은행 갔다가
시장 가서 저녁에 해먹을 닭 사야 해.
같이 있어도 함께 있을 수 없게 만드는,
누군가의 하루를 순식간에 앗아버리는,
그래서 결국 누구를 위한 건지 모를,
바쁨이 난 싫다.
미안하지만 바쁨아,
부디 내가 일하는 곳에는 오지 말아 줘.
지금 내 앞에 마주하고 있는 이 환자의 두 눈,
그 두 눈을 마주하는 순간이 내겐
차트보다,
8시간의 애씀보다
30여 년의 세월보다 더 중요하거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