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하지 않는 시간도 필요해.
"몸에 있는 근육과 똑같은 거예요.
운동을 너무 무리해서 하고 나면 며칠 간 온몸이 쑤시고 아프듯이 머리도 똑같은 거죠."
며칠 전, 연이은 이브닝 근무 중에 유독 바빴던 하루가 있었다.
출근하자마자 몸은 하나인데
3명의 분량을 동시에 쳐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서
모든 에너지를 다 쓰고도 1시간을 오버타임 할 정도로
역대급으로 몰아치던 하루였다.
그런데 그날 이후 이상하리만큼
업무에 집중을 못하는 나를 발견했다.
글이 한 번에 잘 안 읽힐 정도로 집중력이 현저히 떨어지면서
머리가 안개 낀 것처럼 멍해지는 것이 반복되었던 것이다.
그러자 이를 걱정스럽게 바라보던 나에게 의사 선생님이 해준 말이었다.
보통 병동 근무 특성상,
데이, 이브닝, 나이트 번으로 근무가 교대로 이루어져도
어느 근무가 제일 힘들다 하지 못할 정도로
예측하지 못하는 상황이 많이 벌어진다.
데이 근무가 여유로웠다고 해도
이브닝 근무 때 환자 상태 악화라던지,
입원, 전동, 전실, 업무 범위, 역할 등의 요소로 바빠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웬만하면 내가 해낼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바쁜 상황이 몰려오면
원인을 따지고 누군가를 탓하며 짜증내기보다
내게 주어진 그 상황에 지고 싶지 않다는 마음에
'아.. 또 바빠지겠네. 그래 이 참에 내 역량이 어디까지인지 한번 시험해 보자!' 하고
탁구대에 쉴 새 없이 날아오는 공을 쳐내듯이
빠르게 빠르게 일을 처리해나가려고 한다.
짜증 내는 순간 쉽게 넘어갈 문제도 더 커 보이기 때문에
나름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한 나만의 마인드 컨트롤이다.
그리고 이런 부담감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동료들도 마찬가지이기에
그들도 조금이라도 즐겁게 일했으면 하는 마음에
일부러 실없는 유머를 던지곤 하는데..
"선생님은 늘 바빠도 항상 농담 던지실 정도로 여유 있는 모습이셨는데,
오늘 제가 본 선생님은 진짜 그런 모습이 안보였을 정도였으니까.."
정말 그날은 다시는 반복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현타가 왔었지만
다음번에게 마무리 안된 채로 일을 넘기면 안 된다는 생각에
화장실 가는 시간, 밥 먹고 물먹는 시간도 아끼며
모든 집중력과 에너지를 다 쏟아부어서 어떻게든 업무를 끝냈고
터덜터덜 한 모습으로 1시간 늦게 퇴근을 했다.
같이 일하고 퇴근하던 후배가 저렇게 말했을 정도로.
분명 이렇게 한번 쏟아붓고 나면 며칠간 녹초가 되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는데 이게 단순히 몸의 피로라고만 생각했지
집중력에도 회복이 필요하다는 걸 인지하지 못했다.
그런데 머리도 몸의 근육처럼 휴식이 필요하다는 말을 듣고 나니
잠을 푹 자고 출근해도 눈앞의 환자 차트가 머리에 들어오지 않았던 거나
바쁘게 뛰어다니며 일은 하지만
머리는 안개가 낀 것처럼 멍했던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의 휴식과는 별개로 머리도 과부하 상태에서 헤어 나올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어떻게 하면 머리도 쉬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집중해야 하는 활동을 피하는 거죠.
집중을 안 해도 되는 것들을 하면서 휴식을 취하는 거예요."
집중력도 총량이 있는 건가 보다.
어떤 하루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고 나면
아무리 잘 먹고 잘 자도
그다음 날의 근무에 지장이 가는 것 보면.
지금껏 일해오면서 그런 업무의 파도를 이겨내고 나면
스스로가 뿌듯하고 대단해 보이기만 했는데..
힘들어도 토닥토닥해 주면서
다시 눈앞의 파도를 이겨내기 바빴는데..
지금은 그런 나를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지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참 생각이 많아지는 여름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