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분,
이제 2번째 항암약물 달아드릴게요.
지금까지는 괜찮으시죠?
첫 번째 약물 들어가면서 힘든 건 없으셨어요?
힘든 게 왜 없어.
그래도 힘들다고 말하면 안 되잖아.
우리 간호사님도 힘들고 여기 있는 다른 환자들도 힘든데
내가 힘들다고 어리광 부리면 안 되니까.
에이 왜 힘들다고 말하면 안 돼요?
힘든 걸 힘들다고 하는 게 잘못된 게 아닌데.
여기까지 오신 것도 충분히 힘들다고 해도 되는 과정이었어요.
(환자분은 이미 앞서 여러 cycle의 항암을 견뎌오셨다.)
그래도 그렇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힘들잖아.
그게 뭐 어때서요~
괜찮아요.
힘들면 힘들다고 해도 돼요.
전혀 이상한 게 아니에요.
그렇네?!
지금 이렇게 간호사님께 솔직하게 힘들다고 말하니까
이상하게 마음이 나쁘지만은 않네?
어젯밤에 안 그래도 아팠었는데,
그냥 꾹 참고 억지로 잤어.
진통제 맞으면 안 좋을 까봐.
계속 맞으면 안 될까 봐.
그 덕에 잠도 제대로 못 잤지.
환자분,
지금 아픈 건 당연한 거예요.
시술을 하고 아픈 곳을 도려냈는데 어떻게 안 아플 수가 있겠어요?
진통제 한두 번 맞는다고 몸에 안 좋은 거 아니기도 하고
혹시라도 문제가 있으면 저희가 의사 선생님이랑 상의해서 약물을 조절하면 되는 문제니까
아프면 억지로 참지 말고 언제든지 진통제 달라고 해도 돼요.
잠시 진통제에 의지해도 돼요.
아프면 잠도 안 오니까
오늘 밤은 미리 진통제 놔드릴게요.
오늘은 제 말 믿고 마음 편하게 주무세요.
환자분,
혈당 검사하겠습니다.
나 방금 뭐 먹었는데..
지금껏 이놈의 당뇨 때문에 몇십 년 동안 집에서도 이것저것 가려가면서 먹어왔는데
오늘따라 햄버거가 너무 당겨서
방금 콜라랑 막 먹었어.
나 혈당 많이 나왔지?
당 높게 나왔긴 했는데
먹고 싶은 거 좀 먹으면 어때요~
잘했어요~
어떻게 매번 참기만 해요?
사람인데 가끔은 먹고 싶은 것도 먹고 해야죠.
이번은 못 본 걸로 할게요!
선생님.. 정말 죄송한데,
저.. 배가 너무 아파서 그런데..
응급실로 데려다.. 주실 수..
왜 무슨 일이야!
어디 안 좋아?! 식은땀 좀 봐..!
(옆에 있던 다른 동료가 나를 휠체어에 태웠고 응급실로 내달렸다.
밤근무로 출근한 지 얼마 안 되어 벌어진 상황이었고 이미 근무복을 입고 있었기에,
응급실에 누워있던 환자들도 내가 간호사라는 것을 말하지 쉽게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나는 누구보다 더 환자처럼 침대에서 때굴때굴 굴렀다.)
저 선생님 너무 아파서 그런데
진통제부터 빨리 주시면 안 될까요?
너무 힘들어요..!!
(나를 검사실로 데려다 주기 위해 이송기사님이 오셨다.)
선생님,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선생님 표정 너무 웃겨요.
웃는 건지 우는 건지 모르겠어요.
윽.. 괜찮아요. 지금 내 얼굴이 어떻든.
다른 사람이 어떻게 보는지 보다
나는 내가 아픈 게 젤 중요하니까..
아악..!!
아무리 간호사인 나라도 아프고 힘든 걸 인정하고
다른 사람을 신경 쓸 한 줌의 여유마저 거두고
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해야 할 때가 있다.
그러곤 다른 누군가에게 기대야 하는 순간이 있다.
시간이 좀 걸리긴 했지만 나도
이젠 그게 이상한 게 아니라는 걸 잘 안다.
그래서 앞으로도 기대야 하는 순간이 오면
그냥 아무 생각과 판단 없이
날 도울 수 있는 누군가에게 마음편히 나를 맡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