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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재적소에 필요한 역할을 다하라, ‘만능 손’

오늘도 열심히 일한 내 두 손에 감사하며.

by 윤모닝










숨어있는 혈관들을 손끝으로 찾아내라!




역시 간호사 하면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주사이다. 신규간호사 시절 버젓이 있는 굵은 혈관도 잘 터뜨리는가 하면 다른 선배들이 못 잡는 혈관도 덜컥 잡아버리는 경우도 있었다. 실패를 할 때면 늘 환자들에게 연신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이기 일쑤지만, 어려울 것 같은 환자에게 성공하면 그렇게 쾌재일 수가 없다. 사실 스킬적인 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다 잘하게 되어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주사를 잘 놓는 사람과 아닌 사람의 차이는 결국 숨어있는 혈관을 잘 느끼고 잘 찾아내느냐로 결정된다. 손끝으로 혈관을 잘 느끼기 위해서는 엄청난 집중력과 함께 손가락 끝을 세워 느끼는 감각을 요하는데 어떤 사람은 혈관이라고 느끼는데, 다른 사람은 혈관으로 안 느껴져서 지나쳐버리는 그런 경우가 많은 만큼, 이는 정말 사람마다 천차만별이라 자신을 믿고 경험을 쌓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나름 혈관찾기가 쉬운 편이다 ㅎㅎ


나는 신규시절부터 혈관의 감각을 잘 익히기 위해서, 목욕탕에 가서 내 팔에 있는 혈관들을 만져보고 엄마 팔에 있는 혈관도 만져보고 그 탱글탱글하게 올라오는 혈관의 느낌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목욕탕에서는 뜨거운 물에 몸이 뜨거워지면서 혈관이 말초로 쏠리기 때문에 숨어있는 혈관도 잘 올라온다. 그래서 혈관을 더 잘 느껴볼 수 있는데, 보통 주사는 주로 팔에 놓는 경우가 많으므로 기본적으로 사람들마다 공통적으로 있는 또는 숨어있는 혈관의 위치들을 익히기에도 참 좋은 방법이다. 실제로 목욕탕에서 유심히 관찰하고 무수한 팔들을 만져본 결과, 병동이나 응급실에서 다른 간호사들이 실패할 때마다 사람마다 팔에 공통적으로 숨어있는 혈관들의 위치를 미리 파악해 뒀던 나는 바로 숨어 있는 혈관을 찾아내 성공시키곤 했다.



물론 운동하고 나서도 혈관이 울끈불끈 나오니 혈관의 느낌을 느껴보기에 좋을 것이다.



손끝 감각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바로 강약조절이다. 피부 바로 밑에 있는 혈관은 살짝 포를 뜨듯이 주삿바늘을 넣는 것이 중요한데, 혈관이 약하거나 피부가 약하면 정말 세밀하게 힘을 조절해야 하기에 많은 경험을 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강약조절이 잘되면 누군가의 눈에는 중간크기의 바늘까지 시도할 수 있을 만한 혈관에도 가장 굵은 바늘을 성공시킬 수 있고, 불가능에 가까워 보이는 혈관에도 능히 주사를 성공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IV 마스터가 된다.





이전에 길랑바레증후군을 앓던 환자가 심정지로 응급실에 실려온 적이 있었다. 길랑바레 증후군이 있는 환자들은 말초신경 손상으로 인해 팔다리 저림과 근육약화가 생기면서 운동능력이 현저히 감소한다. 그래서 말초혈관도 근육이 적은 팔다리에 더 적게 분포할 수밖에 없다. 심정지로 인해 순환이 안되자 그나마 있는 얇은 혈관들도 더 좁아져있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심정지 상황에서 에피네프린 및 다양한 수액과 약물 투여가 필요하기 때문에 굵은 정맥주사를 잡아야 한다. 그래서 약물 투여 담당이었던 나는 가슴압박으로 인해 흔들리는 환자의 몸과 침대의 진동을 느끼면서 동시에 토니켓을 연신 팔다리에 묶어가며 침착하게 혈관을 찾아야 했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굵은 혈관은 나오질 않고 나는 이를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알렸고 의사는 굵은 혈관이 아니어도 좋으니 가장 작은 바늘이라도 시도하자라고 해서 주사를 시도해 볼 만한 얇은 혈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급하게 1분 1초를 앞다투고 있던 찰나, 내 손 끝으로 만져지는 얇은 혈관 하나.

됐어 이거다!


그렇게 시도해서 겨우 잡아낸 24G IV 정맥주사로 에피네프린과 다양한 약물을 투여할 수 있었다. 나 스스로에게도 너무 뿌듯한 순간이 아닐 수 없었다.











보이지 않는 손가락.

생각과 동시에 타자 치기.





간호사는 환자에 관한 대부분의 중요한 일들과 처치들에 대해 전산으로 기록을 남긴다. 차팅은 환자에 대한 기록이며 의료진에 대한 책임소재를 분명하게 하는 자료라는 점에서 굉장히 중요한 영역이다. 하지만 수많은 업무들 속에서 다양한 환자들의 기록을 한 명 한 명 넣는다는 것은 정말 빠른 속도의 타자실력을 요한다. 나도 신규간호사 시절 타자가 빠르지 않고 차팅이 익숙하지 않아서 한 사람 차팅을 넣는대만 해도 20-30분이 걸렸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반복되는 문구와 용어들이 있고 들어가야 할 내용들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는 것이 눈에 들어오면서 타자 속도가 빨라지기 시작한다. 예를 들면, 오른쪽 인공관절치환술 수술을 다녀온 환자에 대한 기록을 남길 때,




이송요원 동반하여 눕는 차 타고 수술실에서 1308호 병실로 옴.
조무요원 동반하여 시트채로 들어 눕는 차에서 침상으로 이동함.
mental alert.
V/S : (138/85mmHg - 36.6 - 76-20-98%) checked.
Rt.leg op site cotton & EB dressing 중이며 bleeding 없이 clear 함.
Rt. whole toe’s S/M/C intact.
op site 통해 hemovac #1 keep 중이며 olld bloody 양상으로 drainage 중임.
Rt.leg long leg spilnt, immobillizer apply 중임.
op site 회복을 위해 leg elevation 및 ice bag apply 함.
수술 이후 2시간 뒤 물 섭취 후 기침, 사레들림 없을 시 식사 가능함을 환자 및 보호자에게 설명하며 침상안정 격려함. 침상난간 올려줌.



이런 식으로 차팅을 남기게 되고, 그 이외에 심정지가 온 환자를 병실에서 발견한 경우,




7:46 am
다른 환자 라운딩 중 병실밖으로 보호자가 뛰쳐나와 간호사를 불러 병실로 들어가 보니
환자 의식 없이 축 늘어진 채로 누워있음.
mental semi coma. both pupil 8mm/8mm fixed.
경동맥 맥박 느껴지지 않음.
chest compression 시행하며 코드블루 방송 요청함.


7:53 am
D.C pad apply 함. EKG PEA rhythm 관찰됨.
chest compression 지속함.
O2 full inhalation 및 Ambubagging 중이며 Spo2 76% checked.


7:55 am
EKG monitor 상 V-fib 관찰됨.
Dr. AAA 200J shock 시행함.
PEA Rhythm 관찰됨. Spo2 80% checked.
Epinephrine 1mg IV 투여하며 N/S 1L full dropping 함.


7:57 am
EKG monitor 상 PEA rhythm 관찰됨.
chest compression 지속함.
Dr. BBB video scope 통해 intubation 시도함. ET tube 7.5Fr, 24cm fixed.
Spo2 89% checked.
ET tube 통해 suction 시행함.


7:58 am
Epinephrine 1mg IV 투여함.
주치의 보호자에게 환자 상태 설명함. 보호자 심폐소생술 및 연명치료 지속하길 원함.


7:59 am
EKG asystole rhythm checked.
chest compression 지속함.


8:01 am
Epinephrine 1mg IV 투여함.
Dr. AAA Rt.femoral central line insertion 시도함.


8:03 am
경동맥 맥박 촉지되며 ROSC 됨. sinus rythm checked.
mental stupor. both pupil 6mm/6mm slugguish.
BP 75/40mmHg, HR 64회/분 checked.
Dr. BBB Norepinephrine 6mg fluid 15cc/hr start 하자하여 IV infusion 투여함


8:08 am
Dr. AAA Rt.femoral 3-lumen C-line insertion 함.
N/S full drop -> 120cc/hr, Norepinephrine 6mg fluid 15cc/hr iv 연결함.


8:15 am
주치의 보호자 아들에게 환자 상태 및 중환자실 입실 필요함을 설명하며 중환자실 입실 동의서 받음.


8:20 am
이송요원, Dr.AAA, Int. CCC, RN. 윤모닝, 보호자동반하여 침대채로 ICU 내려감.





일상적인 순간부터 1분 1초가 긴박한 순간까지 중요한 모든 순간을 전산에 남기기 위해서는 정말 생각한 대로 그대로 차팅을 남길 수 있을 정도로 타자를 빨리 치는 것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일반 간호업무를 해내면서 차팅까지 남기기에는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리기 때문에 제시간에 퇴근하기 힘들 수도 있다. 지금 현재 차팅이 늦는 사람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게, 일을 하면서 차팅을 계속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라 자동으로 타자연습이 될 수밖에 없다. 나도 독수리 타법이었던 신규시절에는 시간이 부족해 기본적인 차팅밖에 할 수 없었지만 계속 연습하고 반복하다 보니 같은 시간 내에도 기본적인 차팅 말고도 스페셜차팅(환자의 상태변화에 따른 추가적인 차팅)까지 남길 수 있었고 그러고 나서도 시간적 여유가 생길 정도가 되었다. 이처럼 시간이 지나다 보면 나중에는 생각하는 동시에 차팅을 남기고 있는 나를 보면서 스스로 감탄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니 너무 걱정하지 말 것!.











언제든 필요한 물품을 준비하고

상황에 맞게 처치하라.




간호사는 기관내관 흡입부터 정맥주사 삽입, 유치도뇨관 삽입, 관장 등 다양한 간호업무를 직접 수행하고 비위관 삽입, 요추천자, 복수천자, 중심정맥관 삽입, 기관 내 삽관 등 의사가 수행하는 여러 처치들에 대해서도 필요한 물품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위의 상황들은 미리 수행할 예정이라고 알려주는 상황보다는 환자상태가 악화되거나, 예기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필요한 경우가 더 많기 때문에 정말 자다가 찔러도 준비물을 읊을 수 있을 만큼 숙달되어야 한다. 신규간호사 때에는 이런 처치들에 대해서 준비물 챙기는 것이 익숙하지 않고 서툴다 보니 막상 환자에게 처치를 수행하고 있는 와중에 빠진 물품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잘못 준비해서 다시 준비하는 등 여러 시행착오를 많이 겪었다. 나는 다음에는 실수를 하지 않기 위해서 핸드북이나 수첩에 그림을 그려가면서 준비물을 꼼꼼하게 외우려고 하기도 했었다. 몇 가지 대표적인 처치들에 대한 준비물품을 적어보면,


* 비위관 삽입 준비물품

Tray, L-tube (16Fr or 18Fr), multifix(L-tube 고정용), enema sirynge, 청진기, 윤활제, 장갑


* 중심정맥관 삽입물품

CVP set 안에 povidone/hexitanol, saline 20cc, 10cc sirynge #3, 4x4 gauze #3, central line set, 3-0 nylon, blade, tegaderm 넣기
장갑, 중심정맥관 삽입팩(의사들이 입는 멸균가운)


* 기관 내 삽관 시 준비물품

Laryngo scope 또는 Video scope, ET tube (6.5,7.0,7.5Fr), ET tube holder, 크린조, 10cc sirynge, stylet, glove, Ambu bag



저연차 시절에는 하도 헷갈려서 핸드북을 보면서 미어캣처럼 두리번거리기 일 수였는데, 어느 자동으로 슥슥 준비물을 준비하는 나를 보면 어떨 때는 내 손을 칭찬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처치들을 하면서 온갖 환자의 체액들이 묻어있는 장갑 낀 내 손을 보면 안쓰럽기도 하면서 기특하기도 하고 그렇다. 이처럼 간호사의 손은 언제든지 주머니에서 필요한 물품을 꺼내는 도라에몽처럼 그야말로 만능 손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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