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모닝 Jan 25. 2024

4-1. 사랑받을 가치가 없다고 생각한 아이.

그건 나 때문이 아니었어.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



 

 내가 2-3살 정도 되던 무렵이었다. 엄마의 뇌에 종양이 생겨서 큰 수술을 받아야 했고 가족들은 엄마의 건강 걱정에 여유가 없었다. 그 시절 자세한 주변과정은 생각이 안 나지만 단 하나 또렷이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어렸던 나를 이모집에 맡겨두고 나머지 가족들이 아빠차를 타고 병원으로 향했다는 것. 그렇게 나를 두고 멀어져 가는 차를 아파트 복도 난간을 잡고 바라보고 있던 장면이었다. 나를 맡아주던 이모는 얼른 집안으로 들어가자며 내 팔을 끌어당겼지만 나는 가족들이 나를 버리고 떠나는 건가 하는 두려움과 충격을 받았었다. 내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는 것은 여기까지다. 물론 엄마는 이때 나에게 충분히 설명을 했었으나 내가 나이가 많이 어려서 이해도 못하고 기억도 못했을 거라고 한다. 그리고 나에게 도리어 “엄마가 설명해 준 걸 기억을 못 하는 건 네가 이상한 거야. 너는 엄마가 잘해준 거는 기억 안 나고 꼭 그렇게 못해준 것만 기억하지? 그러니까 잘해줘도 소용없는 거야.”라는 죄책감 프레임으로 씌워버린다. 하지만 나는 내가 아파트 복도 창문으로 난간을 부여잡고 멀어져 가는 회색차는 또렷이 기억하는데 엄마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설명해 준 거라면 이것이 이렇게 슬프게 기억될 수 있는 걸까 하며 좀 의아하긴 했다.


 이와 비슷한 일이 또 있었는데, 초등학생 때 엄마는 집에 나를 혼자 남겨두고 말없이 시장에 다녀온 적이 있었다. 나는 나에게 아무 말도 안 하고 엄마가 어디 가버리니 집에 혼자 있는 것이 무섭고 나에게 무슨 일이 벌어져도 아무도 없다는 생각에 더 두려워졌다. 그 당시 엄마가 아빠의 구속을 벗어나 집을 아예 나가버린 뒤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어서 더욱 그렇게 느낀 것도 있었다. 더구나 엄마가 나에게 어디 가는지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나를 별로 소중하게 대하지 않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런 엄마가 집을 돌아오니 무서웠던 마음에 엄마에게 달려가 와락 안겼지만 엄마는 “겨우 시장 간 거 가지고 뭐 그렇게 무서워해?”라며 나의 감정을 읽어주지 않고 외해 버렸다. 그 당시 엄마가 잠시라도 사라지는 것은 나에게 온 지구에 홀로 남겨진 듯한 외로움과 공포심을 주는 것처럼 무서운 일이었다. 그랬기에 나에게 있어서 엄마는 가만히 있어도 포근하게 안아주며 형성되는 애착 관계가 아닌, 없어질까 봐 늘 불안, 두 손으로 꼭 붙들고 있어야 하는 그런 관계였다.







사람들에게서 유독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던 나.




 나는 사람들에게서 가벼운 거절을 받아도 유독 마음에 깊은 상처가 건드려지는 것처럼 아픈 느낌이 들었는데, 혼자서 이 마음이 왜 드는 건지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상담선생님과 대화를 하면 더욱 깊은 면을 볼 수 있겠다 싶어 선생님을 찾아갔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것이 두려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떠나가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과 연관이 되어있어요. 그저 가벼운 거절일 뿐인데, 본인 자신을 거절했다고 느끼기 때문에 상처가 더 큰 거예요. 그 일에 대한 거절일 뿐인데 자신의 존재에 대한 거절로 받아들이는 거죠.”


‘자신을 떠나가는 것을 두려워했다’라는 말에 나는 문득 내가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랐고 눈을 감고 그 시절 느꼈던 내 마음을 마주해 보기로 했다.


‘나는 왜 그 장면을 유독 기억하고 있었을까?’

‘멀어져 가는 회색 차를 바라보던 내 마음은 어땠을까?’

‘그 차 안에는 누가 타고 있었지?’

‘아빠, 엄마, 형제가 타고 있었지.’

‘내가 없이 셋이서만 저 멀리 멀어져 가네. 아.. 참 슬픈 느낌이야.’

‘다들 내가 필요 없어서 떠나는 건가?’ 

(나는 엄마가 수술받아야 하기 때문에 병원에 갔다는 걸 알고 있어. 하지만..)

‘내가 사랑받을 가치가 없어서 떠나는 거 아닐까?’

‘아마도 내가 가치가 없는 사람이라서 떠나나 봐..’


 놀랍게도 나는 말을 제대로 할 줄 모르던 어린 시절의 마음을 깊이 마주하게 되었고 나도 모르게 두 볼에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한참을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펑펑 울고 있는데 정말 어른이 되어 우는 것이 아니라 어린아이처럼 우는 나를 발견하니 사실 마음 한편에서는 기뻤다. 진정한 나를 만나고 있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실컷 울고 나니, 나는 그 시절 나에게 어깨를 따뜻하게 감싸주며 말해주고 싶었다.


‘너는 결코 사랑받을 가치가 없는 존재가 아니야. 너는 누구보다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란다. 그때에는 엄마가 아파서 병원에 가는 일이 이해가 안돼서 너를 버리고 떠난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절대 그런 게 아니란다. 엄마가 병원에 간 일과 윤이를 사랑하는 일은 다른 이야기야. 절대 윤이를 사랑하지 않아서 버리고 간 게 아니란다. 엄마가 서툴러서 윤이를 안심시키고 이해하게 설명하지 못했던 거야. 그러니까 안심해도 돼 윤아.’


 이렇게 말해주고 나니 내 마음속에 외롭고 쓸쓸하게 복도 난간을 붙잡고 서있던 아이는 스르륵 손을 놓더니 다 커버린 나의 품에서 방글방글 웃어주고 있었다.







2-3살의 어린 나를 만난 이후




 신기하게도 나의 내면아이와 만난 이후, 사람들이 거절하는 것에 대해 깊게 다가오지 않았다. 시간이 안되어 약속을 못 정해도, 나의 제안을 거절해도, 내 취향을 다른 사람이 공감해주지 않아도 더 이상 이를 내 가치를 판단하는 기준으로 여기지 않았다. 사람들의 거절은 거절대로, 나는 나대로 카테고리를 다르게 분류하는 느낌이랄까. 더 이상 그러한 거절에 대한 반응을 해결하느라 에너지를 쓰지 않아도 쉽게 잘 넘겼다. 그뿐만 아니었다. 사람들에게 거절당하는 장면뿐만 아니라 원하지 않는 상황에 대해서도 의연해지기 시작했다. 결과가 안 나오면 스스로를 자책하기 바빴던 지난날의 내가 ‘이건 이거고 나는 나고’ 하는 시선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이렇게 실제로 내면아이를 만나고 그동안 틀어막고 있던 큰 산을 하나 넘었다고 생각이 드니 자신감도 생기면서 다른 산들은 없나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 이번에 큰 산 넘은 거 맞죠?”


“네 맞아요. 그런데 앞으로 정신분석이 더 깊어지다 보면 계속해서 이런 아이들을 만나게 될 겁니다.”


“저 이번에도 이렇게 해봤으니까 잘 해낼 수 있을 거 같아요. 선생님.”


“저도 이렇게 자신을 성장시키려는 모습을 보니 참 보기 좋네요.”






 

이전 20화 Ch 4. 내면 아이 만나기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