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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Nov 23. 2021

나를 미치게 한 퇴사 다이어리

1.

작년 가을, 부서에 이사님이 새로 왔다. 그가 오기 전에도 나는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고, 그가 오고 나서는 더 열심히 나갈 궁리만 했다. 새로 온 이사는 꺼지지 않는 불꽃 열정맨이었고 나는 이미 타고 남은 재였기에.

그는 회의 시간만 되면 담당 브랜드를 내 자식처럼 사랑할 것을 강요하다가 미혼인 직원들이 많아 이해 못 하려나 하며 웃었다. 그 밑에서 이빨을 잘 까는 차장님도 같이 핫핫핫 하고 웃었다.

그가 주입식 열정 교육을 할 때마다 나는 업무 노트에 골뱅이를 그렸다. 나중엔 낙서로 꽉 찬 종이가 한 장도 되고, 두 장도 됐다. 골뱅이와 꽃과 풀 따위를 그리면서 생각했다. ‘자식도 없는데 어떻게 자식처럼 사랑을 해요, 이 자식아!’



모든 수치는 숙지할 것. 답변은 빠르게, 목소리는 크게. 태도는 능동적으로. 목표치까지 채우기 위한 플랜, 액션, 피드백. 어느 순간부터인가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긴장으로 심장이 두근거렸다. 달성률, 신장률, 123456789가 노트를 채웠다. 골뱅이와 꽃과 풀도 부지런히 채웠다.

몰아치는 회의와 업무에 쫓기듯이 하루를 보내고 나면 정신적 탈진 상태가 왔다. 집에 와서는 글을 써야 했는데 6개월이 다 가도록 한 편을 완성하지 못했다. 치고 나아가야 하는데 왜 이러나. 글도 회사도 어딘가에 메여있었는데 그게 뭔지 더듬거리고 있었다. 더듬거리고만.



이사는 직원들을 멱살 잡고 끌고 가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멱살 잡힌 사람에게는 난데없는 봉변이었다.

옆자리에 얄미운 동료가 이사에게 끌려가 울면서 나올 때는 통쾌하기보다는 겁이 났다. 어떻게 하면 다 큰 성인 남성을 울릴 수 있는 걸까.

호통치는 소리가 층 전체에 쩌렁쩌렁 울리는 동안 다음 차례는 혹시 나인가 싶어 내 속도 울렁거렸다. 나는 책상에 납작 엎드려 친한 동료에게 메시지를 전송했다.


 “살려줘.”





2.

부풀어 오른 풍선에 바람을 계속해서 불어넣는 상상. 그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지켜보는 것도, 부풀어 오르는 것도 나다. 터질 것 같아. 터질 거야! 아니 이미 터져버린지도.



나는 회사에서 스스로를 ‘최 부정 씨’리고 칭했다. 최 부정 씨는  매일 “그만둘 거야. 내일 말할 거야”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 부정 씨는 그만둔다고 말할 용기도 없으면서 틈만 나면 찾아왔다. 분열과 붕괴를 거치며 주위 동료들과 친구, 가족까지 괴롭혔다. 그쯤 나는 한계치에 와 있었던 거 같다.



내가 내뱉는 부정적인 말들에 주위까지 힘들게 하는 게 맞나 싶어서 마음이 불편하고 그러다 슬퍼지면 말했다.

“고맙고 미안해.”

갈피를 못 잡고 찌질거리는 나에게 사람들은 말했다. 말해서 나아지면 다행이라고 다들 똑같다고 이해한다고. 그러면 나는 또 고맙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

“들어줘서 고마워, 고마운데… 멈출 수가 없어.”

서른이 넘어서도 이토록 찌질하고 하찮을 수 있다니 나도 내가 싫어지려고 하는 참이었다.





3.

고등학교 친구들이 있는 단톡 방에 메시지가 쌓여있었다.

“너만 생각해. 무엇보다 나를 먼저 생각해야지. 인생은 혼자여. 내 행복이 다여! 내가 세상에 중심이다 이 말이야.”



다른 한 친구가 그 말을 받았다.



“그려. 아니면 박뽀영이 처럼 빌어야지 뭐. 세상 다 망해라~ 멸망해버려라~ 되게 예쁘게 소리 질러야 해. 우리처럼 악쓰면서 소리 지르면 멸망도 도망가는 거 같더라”


“그래야 풀리는데. 팔다리 바둥거리면서.”


“그래서 우리가 아직 멸망을 못 만난겨.”


“크로플이나 먹자. 행복은 맛난 음식에 있다 이 말이여.”



혹시나 해서 말해두는데 친구들은 스물 이전에 경주를 떠나 본 적이 없다. 멘털이 부서진 친구를 위해 넉넉한 품을 가진 말씨를 골랐던 거 같다.

한참 떠들다 만 대화를 뒤늦게 읽으며 나는 자리에서 숨죽여 웃었다. 뭐래, 진짜. 아무 말이나 하면 다인 줄 아네. 오랜만에 웃었다. 웃었으니 성공이었다.



다 망해버렸으면 좋겠다고 바란 적은 셀 수 없이 많았다. 드라마 속 박뽀영이처럼 예쁘게 소리치진 못 했고 처절하게 절규했지만. 때 마침 나타나 찐하게 사랑할 멸망이도 없고 나만 망하기도 싫으니까 다 같이 망했으면. 내 기도가 하늘에 닿아 세상이 망한다는 소식이 들리면 이왕 망하는 거 크로플이나 먹으러 가자고 할 사람들이 있었다. 세상이 망해도 안 망해도 일단 크로플을 먹어보자고 이끄는 사람들. 그게 힘이 돼서 나는 이만큼 올 수 있었을지 모른다.

그래. 일단 먹자. 웃자. 용기를 내자.





4.

그만둔다고 말하자 회사에서 일주일을 붙잡았다.


“지금도 시스템적으로 안 받쳐줘서 업무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거기 가서 무슨 말을 들으려고 그래?”


“너 지방에서 올라와서 자취하잖아. 돈도 필요하고 열심히 사는 거 아는데 왜 굳이 힘든 길을 가려고 그러니.”


“중견에서 중소를 왜 가는 거야? 가면 잘할 수 있을 거 같아?”

 

“내 조카 같아서 하는 말이야.”


조카 같은 소리 하고 있네… 조카…! 진짜 좆 까라 그래!

타인의 말을 잘 주워 담는 버릇은 그때도 유감없이 발휘되었고 굳이 내 손으로 다시 쓰게 만들었다.

누군가는 내 상사들처럼 내 선택이 멍청한 선택이었다고, 어리니까 그럴 수 있는 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쪽 생각이고. 나는 더 이상 어리지 않다. 욕심도 없다. 난 그저…… 일은 불편해도 마음 편하게 회사를 다니고 싶을 뿐이었다. 적어도 회의에 들어갈 때마다 부정맥이 오는 일은 없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좋은 말을 해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제가 그렇게 오래 살진 않았지만 항상 신제품, 신상이 더 좋았어요. 응원합니다.”



나쁜 말보다 좋은 말만 기억할 거다. ‘수고했다, 고생했다.’는 말 한마디 나누지 않은 사람들도 있다. 그들은 끝까지 일감을 던져줄 뿐이었다. 한순간 배신자가 되어보니 이기적인 모습들이 더 눈에 띄었다. 내가 계속 함께할 수 없는 이유는 바로 그런 것들이 쌓여서다. 내 지난 시간은 내가 알아주면 되고, 이곳에서 만난 좋은 사람들이 더 많으니까. 그걸로 충분했다.

후회하더라도 일보 전진. 전진을 위한 쉼도 오케이.

후퇴는, 없다. 더 나아질 일만 있을 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 거니까.






뒤 늦게 이 모든 기록을 모아보니 웃기고 부끄럽습니다. 화가 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썼는데 결말은 퇴사였네요. 버티려고 해봤는데 버티지 못 했습니다.

포기하는 것, 그만두는 것에도 용기가 필요하더라고요. 그래서 꾸역꾸역 끌고 오며 찌질해져 간 지난 기록입니다.

지금 전진 중이냐고 물으신다면 전진을 위해 쉬어가는 중이라고 답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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