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통화를 하는 중이었다. 당근 마켓에서 알람이 울려서 보니 몇 분 전에 올린 카메라를 사고 싶다는 연락이었다. 혹시 역 근처가 아니라 집 근처로 가면 깎아주냐는 말에 지금도 싼데 얼마를 더 깎아줘야 하나 망설였더니 통화 중이던 남자 친구가 그냥 찔러보는 거니 단호하게 거절하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지금도 저렴한 가격이라고 하니 상대방도 바로 수긍했다. 말랑한 남자 친구가 이럴 때는 똑 부러진다. 계산이 철저한 그의 모습에 거리감을 느낀 나는 말했다.
“항상 나보다 20% 더 좋아해 줘.”
그는 내 말에 핫핫핫하고 웃었다. 나는 그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내 인생을 내가 책임지기 시작한 이후로 어딘가 쫓기는 기분이었다. 여유는 그냥 가질 수 있는 게 아니라 노력해서 가질 수 있는 것. 상품을 제작할 때는 불량에 대비한 여유분(loss분)을 챙긴다. 인생도 여유분을 챙겨놓을 수 없는 걸까. 필요 외에 남는 여유분이 있을 수는 없나.
내 몫은 철저하게 지키는 깍쟁이도 못되고 어설프게 착한 나머지 불치병인 착한 사람 병에 걸린 나는 증상으로 ‘밑지는 장사’를 앓고 있다. 해당 증상은 인생을 조금씩 밑져야 마음이 편하다고 믿는 상태를 말한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 하고, 싸워서 쟁취할 바에야 포기해버리는 게 편한. 주로 사회생활 중에 발현된다.
하지만 이 병에 걸린 경우, 가까운 사람들에게는 뻔뻔해지는 특징이 있다. 밖에선 착한 척을 하고 안에서는 응석을 부린다. 남자 친구에게 사랑을 20%만 더 얹어달라고 말하는 것처럼. 늙은 부모님의 주머니를 터는 것처럼. 언니에게 양말을 벗겨달라고 하는 것처럼.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커버렸지? 쓰다 보니 모두에게 미안해진다. 잘해야겠다.)
가진 마음을 다 써도 넘치게 받아서 여유가 있으면 좋겠다. “이번 달에도 사랑이 남았네.” 같은 말을 하고 싶다. 밑 빠진 독에 물 붓는 사랑 아니고, 쓰면 없어지는 사랑 아니고, 써도 써도 20%는 남는 사랑. 입금과 출금이 정확히 적힌 가계부 같은 사랑 말고, 중고거래 에누리 같은 사랑 말고. 사랑에 사랑을 얹어주면 Loss분 없는 인생도 든든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