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에 대해 생각했다.
출처가 불분명한 마음. 나는 나를 깊숙이 숨긴 채 당신을 통해 나와 만난다. 실체가 없는 이미지에 내가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들을 잔뜩 투영했다. 그러니 당신에게 썼던 글들은 모두 스스로를 향한 다짐의 글들이었다.
다시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을까. 나는 나만 사랑할 수 있는 사람. 돌이켜 보면 나는 나 아닌 누군가에게 깊이 빠져본 적 없었다.
언젠가 한 시절을 함께 했던 이는 말했다.
‘네 옆에 있으면 나는 나무 같아. 언제나 그 자리에 있어주는 나무.’
나무라는 말이 그렇게 아프게 다가올 수도 있는 단어였음을 그때 처음 알았다.
오랜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나는 그가 아닌 나와 만났었음을, 그가 아닌 내 감정에 빠져있었음을 깨달았다.
박준 시인은 어떤 말은 죽지 않는다고 했다. 어떤 말들은 죽지 않고 사람의 마음속으로 들어가 살아남는다고.
네 옆에 있으면 내가 나무 같아. 그 말은 죽지 않고 내 마음에 살아남아서 누군가를 만날 때마다 유령처럼 따라붙었다.
그때는 어렸고, 그와 나는 너무 다른 성향의 사람들이었다는 것을 안다. 알고 있음에도 그 말은 사라지지 않았다. 간혹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면 그 누군가가 연인이 아니더라도 혹시 내가 곁에 있어도 외로운 건 아닐까 하고 떠올랐다. 그럴 때면 찬물을 끼얹듯 한순간에 가라앉는 마음. 나 아닌 그 누구도 들이지 못한 방은 수면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지기만 했다. 아무도 닿지 못한 방, 그 문을 열면 텅 비어버린 방. 공허하고 공허한.
밝은 나, 웃음이 많은 나, 그 뒤로 더 많은 울음을 삼키는 나. 그 누구에게도 꺼내 보인 적 없다. 더 큰 상실을 감당할 수 없으므로, 이해받지 못하므로. 내가 바라는 것은 온전한 이해.
기대하지 않고, 기대지 않은 채 나는 혼자 기울어지고는 했다.
사람과 사랑 사이에도 고독이 존재한다. 존재로부터 오는 필연적인 고독. 대신 울어줄 수 없는 슬픔과 절대 닿을 수 없는 심연이 존재함을 이해하는 사람, 있을까. 어떤 위로도 닿지 않을 때는 아무 말 없이 기다려주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아는 사람, 있을까.
때로는 우리의 고요가 우리를 더 견고하게 한다는 것을 이해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롯이 혼자여야만 하는 시간 속에서 조금 덜 외로울 텐데.
가끔은 모두 해체하고 해제하고 싶다.
모든 문을 열어 이리 와 함께 앉아 우리 허물어지자 하고. 그저 내버려 두었으면 싶다가도 가끔은 서로의 민낯으로 마주하고 싶다.
허물어지거나 형체도 없이 녹아버려 다시 찰랑이는 무언가가 되고 싶다고 생각한다.
애초에 어떤 형태였는지 알 수 없이 뒤섞여버린
마음과 마음. 그러나 섞이지 않는 마음으로.
불완전한 새벽을 견디는 일에 익숙한 사람들은 자신의 가장 안 쪽에 닿아있다.
어디에선가 기울어지면
어디에서, 언젠가 맞닿아.
그렇게 믿으면
우리는 조금 덜 외롭지 않겠냐고.
나누어 가질 수 없는
너무 당연한 고독 속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