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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방백 1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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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영 Sep 17. 2018

Nothing but love

친구를 만났다. 한강을 가기로 했는데 절뚝거리면서 걷지를 못하길래 왜 이러냐고 하니 말없이 웃기만 했다. 재차 발이 왜 이 모양이냐고 묻는 질문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아영아 세상에 이런 일도 다 있다."


그 순간, 나는 친구에게 새로운 사랑이 찾아왔음을 직감했다. 친구의 말을 그대로 옮기자면 2년의 캄캄한 고시생활 끝에 찾아온 봄. 
자꾸 예쁘다고 해주니 정말 예뻐 보였으면 해서 구두를 신고 데이트를 갔다가 발에 물집이 잡혔다고 했다. 내가 알려준 길을 함께 걸었다고, 아주 오래 걸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행군 다녀온 군인마냥 큰 물집이 양발에 잡혀 붕대까지 감고 있었다.


"아니 발이 이 정도면 진작 못 나온다고 하지. 뭐 얼마나 예뻐 보이고 싶었던 거야?"
"글쎄, 잠깐 정신이 나갔었지. 넌 절대 안 하던 짓 하지 마."


그러면서도 그녀는 예쁘다 해주는 말이 그렇게 좋은 말인지 몰랐다며 실없이 웃었다.
나는 그런 그녀에게 다행이라는 말을 전했다. 사랑할 수 있어서 정말 다행이야.




누군가 깊이 사랑하는 일. 시작이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다.
마음 가는 대로 내버려 두기보다 그 앞을 막아서는 일에 익숙하기에.
그녀는 시험을 앞두고 있었고, 그 시험이 끝나면 합격 여부와 상관없이 경주로 내려가야 했다.


"나 내려갈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하려고. 그 이상은 내가 더 부담스러울 거 같아."


그녀가 그렇다 하기에 나도 그렇구나 했지만 여기까지만 하고 멈출 수 있는 감정이 있을까. 마음은 스스로 멈출 때까지 내버려 두어야 탈이 나지 않던데.


"걔는 무슨 생각 하냐고 물으면 천진난만하게 이런다?
nothing, 네 생각.  
어이가 없어서 웃음이나."


생각이 너무 많은 그녀가 단순히 오늘이 전부인 사람을 만난 것도 다행인 일이었다.
그녀는 얼마 뒤 경주로 내려갔다. 둘은 어찌 되었냐면, 아직 잘 사귀고 있다.


"살맛 나. 뭐하나 제대로 자리 잡은 건 없지만 마음 맞는 친구도 있고, 연애도 하고."


그래. 사랑하는 일, 사랑받는 일.
그것으로 충분할지 몰라.
끝이 어떨지는 중요치 않고, 오직 눈앞의 사랑에 집중하는 것. 어떤 순간도 후회가 남지 않도록.



텅 빈 가슴, 상처가 아물고 난 자리에 무언가 채워야 한다면 그것은 사랑일 테다.
있는 그대로의 나와 있는 그대로의 당신.
나만큼이나 위태로워 보이는 이를 안아주는 일.
어쩌면 우리는 단 한 사람, 단 한 사람이면 충분할지 모른다.


충분히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도
사랑을 해야 살 것만 같은 날들이다.
서로에게 기대어 무언의 위로를 건네면
그래도 살아질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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