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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 Aug 17. 2020

일의 슬픔은 알겠는데, 기쁨은 어디에있죠?

장류진, 일의 기쁨과 슬픔

처음 친구에게 <일의 기쁨과 슬픔>을 읽고 있다고 했을 때, 친구는 ‘일의 슬픔은 알겠는데, 기쁨은 뭐래?’ 하고 물었다. 그러게 말야… 사실 단편소설집의 제목은 알랭드보통의 동명소설에서 따온 한 단편의 제목일 뿐이지만, 삼성주식은 없어도 못지않은 일개미로서 책을 읽는 내내 도대체 일의 기쁨이란 무엇인가? 하는 의문과 함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며 읽었다.


햇수로 3년차가 되어가는 사원(이후 채용이 없어서 아직 햇병아리 같은 막내롤을 맡고있다)의 입장에서 <일의 기쁨과 슬픔>은 가까운 과거의 나부터 제법 가까운 미래의 나의 인생에서 있을법한 일을 조망해보는 이야기들이 담겨있었다. <탐페레 공항> 을 읽으며 나는 정말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는데, 취업 시장에 나와보니 나 정도의 스펙은 정말 지극히 평범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의 쓴 맛이 입에서 다시 나는 것 같았다. <백한번째 이력서와 첫 번째 출근길>에서는 불안하지만 설레임으로 태동하는 인턴 출퇴근길의 나를 보는 것 같았고, 여느 20대 직장인들의 희로애락에서 이거, 혹시 민간인 사찰 아닌가? 하는 감정을 많이 느낄 수 있었다. 특별히 대단한 자아를 갖고 있지도 않고 특별히 연민에 가득 차지도 않는 보통의 직장인들의 이야기는 보통의 나에게 작가가 젊은 여성이기 때문에, 같이 분노해야 할 ‘보편적인 ‘ 소재도 많았다. 눈치 백단에 명민하고, 어려운 부서이동도 해낼만큼 야무진 ‘잘 살겠습니다’의 주인공은 입사할 때에는 남자동기들에게 부서이동이 밀리고, 입사동기인 남편보다 연봉이 천만원 이상 적다. 이런 기울어진 운동장에 놓여진 위치를 알기에, 눈치 없고 속터지게하는 동기언니에게 화가 나다가도 그녀가 잘 살기를 바란다. ‘새벽의 방문자들’의 주인공은 여자 혼자 산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자신의 집을 성매매 업소로 착각하고 찾아오는 남자들의 틈에서 예전 애인을 마주하고 혼란스러워한다. 비슷한 고초를 겪는 것은 옆 동 같은 층 여자도 마찬가지다. ‘나의 후쿠오카 가이드’ 에서는 여성을 성적 대상과, 자신의 건재함을 증명하기 위한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오만한 생각에 가득찬 30대 남성의 시점으로 서술하며 젠더이슈를 비틀고 있다. 메신저 한 통에 헐레벌떡 일본으로 달려간건 본인이었으면서 소위 ‘이혼녀’가 되었다고 내심 지유를 후려치며 씨발년, 이라는 욕설도 서슴지않는 지훈이 특별한 소설 속 캐릭터가 아니라는게 웃펐다. 


 8편의 소설 중 ‘일의 기쁨과 슬픔’이 제목이 된 것은 소설들을 관통하는 제목이기 때문일 것이다. 전반적으로 일의 슬픔을 다루고 있는 듯 하나.. 그 안에 숨겨진 기쁨들이 있었다. 기울어진 운동장도 악착같이 기어올라 인정 받고, 회장의 터무니없는 갑질에도 재기할 궁리를 찾으며 괜찮은 척 회사를 다니고, 남들은 쉽게 꿈을 포기한 가련한 이 시대의 청춘으로 볼지언정 안락한 직장이 주는 편안함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한국 현대 사회의 ‘단짠단짠’한 직장생활을 놀랍도록 현실적이지만 지루하지 않게 담아낸 작가의 재능이 부러울 지경이다.


일에서 오는 숱한 슬픔과 기쁨속에서 마지막 편 ‘탐페레 공항’은 단연 인상깊은 이야기 중 하나였는데, 이것 저것 하고 싶어하다 회사를 다닌지 아직 몇 년 되지 않아 그랬다. 대학 시절엔 늘 장업계에 가고 싶어했는데 결과적으론 그렇게 피하려고 했던 (큰 의미에서의)전공 분야에 직종에 종사하고 있다. 처음 취업을 막 하고 지인들을 만났을 때, ‘축하해, 그런데 난 니가 화장품 회사에 갈 줄알았는데..’ 라거나 ‘야 너 거긴 참 안어울린다’ 라는 서운한(솔직히 타격이 있었는데 내가 샘나서 ㅋㅋ그런거라고 정신승리 중이다.) 말을 듣기도 했다. 그런데 나에겐 가고 싶은 회사를 가려고 최종합격을 포기할 정도로 여유가 있지도 않았고 취업시장이 녹록지 않음을 너무나도 잘 직시하고 있었다. 그리고 다니다보니 뭐, 결국 일이란 그렇고 그런건데.. 좋아하는 건 좋아하는 것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지 하는 생각도 하면서 어영부영 3년차가 된 것 같다. 이런 내가 정말 확신할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면, 주인공이 ‘얀’에게 회신하는 것을 미룬 것은, 정말 귀찮아서가 아니라 내가 한 때 접은 나의 꿈 그리고 꿈꾸던 시절을 다시 조우하는게 두려워서 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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