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소셜 딜레마>
초등학교를 다닐 무렵엔 그시절 모두가 버디버디를 했다. 부가기능인 홈페이지는 묘하게 아이들 사이의 인기의 기준이 되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될 무렵부터 고등학교까지 싸이월드가 전국을 제패했고, 내 사진의 스크랩 갯수, 댓글, 방명록과 일촌평에 전전긍긍하는 십대를 보냈다.
대학에 갈 무렵 페이스북으로 거대한 세대교체가 일어났다. 좋아요와 태그기능은 내 방 침대 속에서도 누군가와 끊임없이 연결되어있다는 느낌을 줬지만 또 한 편으로는 그 속에서 허우적댈수록 외로웠다. 나는 태그가 안됐는데 다른 친구는 태그가 된 글이 내 피드에 뜰 때, 좋아요 수가 적을 때 곧잘 그랬다.
컴퓨터 모니터로, 스마트폰 액정으로 바라본 세상에 예쁘고 잘난 또래들은 너무너무 많았다. 내가 좀 더 갸름했으면, 허리가 가늘었으면, 눈이 컸으면.. 입동굴, 승마살과 골반, 도톰한 입술.. 끊임없이 외모를 재단하는 방식이 쏟아지는 동안 '필터로 찍은 얼굴이 진짜 나야' 라는 농담에 더이상 웃을 수 없었다. 왜 꼭 자려고 누우면 나보다 먼저 취직한 지인들의 행복해보이는 일상들이 추천에 뜨는지.. 겨우겨우 보낸 하루의 마무리가 쉽지 않은 날도 많았다.
이제 나는 예전만큼 앞서 말한 외모 강박에 시달리진 않지만 소셜미디어는 하루에도 여러차례 나를 쥐고 흔든다. 친구와 대화했던 제품이 바로 인스타그램 광고에 뜨고, 꼭 자려고 하면 졸린 눈을 치뜨고 보게 된다. 자존감을 박살내가며 다이어트 제품을 팔고, 눈 앞에 친구와 가족을 두고 액정 속 데면한 지인들로부터 받는 좋아요 갯수에 집착하게 만든다. 사회적 연결을 위해 대면 관계의 단절을 선택하게 되는 아이러니다. 마케팅팀에서 근무하면서 고객들의 로그분석을 하다보면 바야흐로 tmi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이대로 괜찮은가? 이만큼 우리의 삶은 누군가에게 낱낱이 전해지고 있다. 말 그대로 27억명의 트루먼쇼인 셈이다. 중학교 때 트루먼쇼를 보고 내 일상이 누군가에게 이렇게 공개된다면? 하는 상상을 했었는데, 온라인 상에서 내 궤적은 확실히 불특정 다수와 공유되고 있는 듯 하다.
다큐멘터리 <더 소셜 딜레마>에서는 우리의 취향부터 성향까지 모든 것을 손 위에 놓으려 하는 소셜미디어 산업의 태풍의 눈에 근무하는(근무했던) 이들의 양심고백과 같은 이야기로 호소하고 있다. 다큐멘터리는 단순히 유저들에게 소셜미디어의 해악을 소개하며 줄이라고 권장하는데 그치지 않는다. 소셜미디어 역할 이상의 권한을 휘두르려는 자들에게 무언의 경고메세지를 던지고 있다. 알고리즘으로 세상은 너무나 쉽게 망가지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