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장. 파란 지붕의 집

중력보다 더 익숙해진 ㅣ 습 (習)

by 윤희오 hio


저녁 6시. 현관의 디지털 도어록이 해제되는 기계음은 어김없이 정각에 울렸다.


“왔어.”


24년째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낮고 감정이 섞이지 않는 목소리였다.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그의 삶은 정해진 궤도를 오가는 시계추처럼 정확했다. 그것은 가장으로서의 역할을 무던히 해낸 성실함이었고, 결코 변하지 않겠다던 맹세의 성질과도 닮아 있었다.


그사이 큰 풍파 없이 아이들의 키가 나를 넘어설 만큼의 세월이 흘렀다.

늘 시원한 산소가 부족한 갈증을 가슴에 품고 살았지만, 그렇다고 죽을 만큼 숨이 모자라지도 않았다. 더 적극적으로 맞춰보려는 사람이 결국 자신을 더 소멸시킨다는 것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곧장 밥상이 차려지고 식구들이 모였다.

네 식구가 온전히 모여 앉아 있는 유일한 시간이 남자의 퇴근 후 저녁시간이었다.

숟가락이 사기그릇을 긁는 소리, 찌개 냄새, 그리고 확인해야 할 것들만 오가는 사무적인 문답들. 우리 집은 그야말로 고요했다.


말이 공중으로 흩어지지 못하고 바닥으로 눅눅하게 가라앉아 있었다. 식탁 위에는 김이 빠진 멸치볶음과 반쯤 남은 두부조림이 놓여 있었다. 벽에 걸린 달력은 벌써 다음 달로 넘어가려 끝이 말려 있었다.


식사를 마치고 나면 그는 30분간 산책을 나갔고, 돌아오면 소파에 몸을 깊숙이 묻었다. 등을 대고 앉아 두 다리를 양쪽으로 벌린 채, 소파 위에 올린 발가락을 한 손으로 만지작거리며 텔레비전에 시선을 박았다.


밤 10시가 채 되기 전 안방으로 사라지는 그의 뒷모습은 하루의 완벽한 마침표였다.

홀로 남은 거실에서 내 발끝을 내려다보았다. 집 안을 가득 채운 이 공기의 정체는 무엇일까. 어둡고 무거운 이 공기는 사라지지 않은 채 수시로 나를 짓눌렀다.


문제라고 말하지 않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곳이 된 나의 집. 그 공간을 채운 공기의 색깔에 사람마저 물들어가는 것일까. 어느덧 나는 그 공기를 닮아, 아무런 표정 없는 얼굴이 되어가고 있었다.

이 공기의 색깔을 그곳에서 처음 마주했었다.



24년 전, 파란 지붕이 있는 그곳.

결혼 날짜를 상의하러 처음 그 집을 찾던 날, 좁은 비포장 길 끝에서 파란 양철 지붕이 나타났다.

전날 내린 비로 마당의 붉은 흙은 수분을 머금어 질척였다.

한 걸음 떼놓을 때마다 구두 뒷굽이 흙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나왔다.


나는 그 집이 가진 묵직한 중력을 그렇게 처음 느꼈다. 대문을 넘어서자 공기는 밖보다 한층 더 가라앉아 있었다. 벽지 구석구석 배어버린 비릿한 생선찜 냄새, 장롱 깊숙한 곳에서 수십 년의 세월을 덮고 있었을 눅눅한 이불 향, 그리고 낡은 장판 위를 떠도는 먼지들. 나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얕게 들이마셨다.


“엄마, 아버지.”


그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한 톤 높게 부풀어 올랐다. 마치 밝은 표정을 지어 보이려 애쓰는 듯, 각각의 글자가 동그랗게 말리며 허공으로 솟았다가 이내 바닥으로 툭 떨어졌다.

그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허리를 정확히 90도로 천천히 꺾었다.


“안녕하셨어요.”


나도 그를 따라 허리를 숙였다. 어머니는 부엌에서 나오며 내 얼굴을 아주 짧게 스쳐 지나가 듯 보며 아들을 향해 함께 표정 없이 고개를 숙여 인사를 받았다.


청실홍실 방석 2개가 나란히 거실 끝자락에 놓여 있었다. 안방 문을 열고 남자의 아버지가 나오며 앉으라는 듯 손짓에 나와 남자는 덩그러니 그 위에 올라앉았다.

마른 체형으로 천천히 뒷짐을 지고 걷는 모습이 고집스러움을 담고 있었다.


어머니의 허리는 이미 기역 자로 굽어 있었고, 무릎 위로 포개어 놓은 작은 손은 마디마디가 툭 불거져 있었다. 손가락들은 자유로운 움직임을 잊은 채, 하나의 투박한 옹이처럼 연결되어 있었다.


“멀어서 힘들었지.”


낮고 가느다란 목소리. 아버지는 고개를 한 번 끄덕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낡은 비닐 장판 위, 작은 찻상을 사이에 두고 네 사람이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찻상 정면에, 어머니는 그 곁에 바싹 붙어 앉았다.


그와 나는 찻상을 가운데 두고 나란히 앉았지만, 나 혼자 방석 위로 몸이 떠 있고 그와 그의 부모님은 바닥에 견고히 붙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침묵이 방 안의 먼지처럼 내려앉을 무렵, 어머니가 찻상 쪽으로 몸을 바싹 기울이며 입을 열었다.


“이 사람… 착해.”

자랑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고백처럼 들리는 말이었다. 아들의 성실함을 말하는 소리 같기도 했고, 이제는 자식의 사정을 더는 알지 못한다는 선언처럼 들리기도 했다.
그 말을 가로막듯 아버지가 낮게 뱉었다.


“어허.”


짧은 대화를 나누며 다과를 한 뒤 서울로 돌아가기 위해 차에 오르기까지 그들의 인사는 마치 태엽이 어긋나 제자리를 맴도는 고장 난 시계 같았다. 아들이 안녕히 계시라고 고개를 숙이면, 어머니는 그 말을 수거해 다시 운전 걱정을 얹어 되돌려주었다.


마침표를 찍지 못하고 같은 초(秒)만 가리키는 시곗바늘처럼, 똑같은 작별이 차 문이 닫힐 때까지 몇 번이고 되풀이되었다.

시동이 걸리자마자 나는 서둘러 창문을 내렸다. 후끈하게 밀려 들어오는 바깥공기를 산소통처럼 깊게 들이마시고 나서야 겨우 숨이 쉬어지는 것 같았다.

“왜?”
“아니… 긴장했었나 봐.”


창밖으로 들이치는 바람을 맞으며 나는 숨을 조용히 길게 내뱉었다. 그는 다시 묻지 않았다. 그저 앞만 보고 운전대를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밤, 우리 집 거실은 낯선 신랑감에 대한 호평으로 달떠 있었다. 톨게이트 앞에서의 느긋함은 '여유'로, 마당에서의 반복된 인사는 '성실'로 무사히 통과되었다. "진국이다"라는 아빠의 말 뒤로, 언니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낮게 물었다.


"너, 괜찮겠어? 취재 현장에서 며칠씩 밤새며 고함치던 네가, 그렇게 깍듯하고 정적인 집안 분위기를 견딜 수 있겠냐고."

"나 안 강해. 웬만하면 양보하는 사람이야. 그리고 사람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나는 가볍게 대꾸하며 웃어넘겼고 그저 내 젊은 자신감을 믿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 호기로운 장담이 무색하게, 내 머릿속에는 자꾸만 한 장면이 잔상처럼 맴돌았다.


90도로 깊숙이 숙여지던 그의 뒷모습. 그는 자신을 지워 그 집안의 질서 속으로 밀어 넣는 데 익숙해 보였다. 그것은 그가 물려받은 아주 오래된 삶의 방식이었다. 그가 약속했던 그 ‘일관성’의 뿌리는, 한 번 발을 들이면 밑창까지 눌려버리는 저 파란 지붕 집의 붉은 흙바닥 어디쯤 깊게 박혀 있었다.


나는 그 중력의 무게와 같은 발걸음이 반듯해 보이지만 편안하지 않았고, 선택권이 없다는 사실도 그때는 알지 못했다.

글. 사진 ㅣ 윤희오(h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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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화, [제5장 : 습(習)]으로 찾아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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