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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이 Apr 07. 2023

선택이라는 어려운 선택지

동네 골목길을 걷다가 ‘막다른 길’이라고 표시된 표지판을 만났다. 생소한 표지판인 데다 ‘막다른’이라는 표현에 괜스레 서글픈 감정이 들어 잠시 걸음을 멈추고 표지판을 바라보았다. 삶에도 이런 표지판이 있다면 살아가기가 조금 더 수월해질까. 나는 종종 길의 방향이나 차량의 속도를 표시하는 표지판을 보면 사는 일에 대입해보곤 했다. 이 길로 가는 것이 맞는 방향인지 나의 삶의 속도가 빠른지 혹은 느린지를 말해주는 표지판이 있다면, 어떨까 하고. 나는 ‘나’라는 자아에 대해서도 조금은 수동적인 자세를 취해왔다. ‘나’라는 존재는 고정되어 있고, 나는 ‘나’를 아직 다 알지 못했으니 아직 발견되지 않은 ‘나’를 찾아내야 한다는 식이었다. 그러다 ‘어떤 조건에서든지 인간은 자기의 태도를 정할 수 있다.’는 빅터 프랭클의 문장을 만났다. 자아정체성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무수히 많은 스스로의 선택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라는 사고가 나의 정체된 생각을 흔들었다. 고정된 나를 발견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내가 될지를 스스로 선택하면 된다는 것. 누군가에겐 너무 당연할지도 모르는 이야기가 내게는 큰 울림이 되었고, 나의 세계가 확장되는 기분마저 들었다. 하지만 이런 감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내가 ‘정말로’ 선택을 할 수 있는가 하는 현실적인 의문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주로 선택을 ‘받는’ 위치에 있었기에. 지금은 안다. 내가 타인의 선택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더라도 그러한 선택에 대해 어떤 자세와 감정을 취할지는 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머리로는) 안다. 그리고 그 선택의 영향권을 벗어나는 일도 나의 몫이 될 것이다.



(C)Y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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