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 [사랑] 이름

사랑

by 오 영택

사랑

세상을 향한 사랑은 건강한 자기애(自己愛)에서 시작된다.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타인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진다. 사랑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바라보는 태도다. 사랑한다는 것은 곧 존중하는 것이며, 소중한 순간들을 깊이 새기는 일이다.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되돌아보며 스스로를 격려하고 다독이는 것이다.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때, 비로소 다른 존재들도 온전히 품을 수 있다. 결국, 사랑이란 자신을 아끼는 마음이 확장되어 세상과 연결되는 길이다.


# 이름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_ 도종환, 「꽃」 中


2019~2022년, 4년간 살았던 집이 있다. 3년 넘게 비어 있는 담벼락이 둘러진 오래된 집이었다. 마당이라고 하기에는 작은 2평 남짓한 공간과 작은 창고 같은 건물이 있었다. 그곳으로 길고양이들이 자주 들락날락하곤 했다. 빈 집이었던 터라 녀석들에게는 안식처였을 것이다. 녀석들을 자주 보니 정이 들었다. 자연스레 이름을 붙여 불렀다. ‘고등어’, ‘노랑이’, ‘삼색이’, ‘예쁜이’. 이미 루비, 진주 두 강아지를 책임지고 있던 터라 더 신경이 쓰였다.


자전거를 타려고 새벽에 나서면 꼭 마주쳤던 ‘고등어’, 가까이 다가가도 도망가지 않던 ‘노랑이’, 얼굴이 가늘었던 ‘삼색이’, 삼색이와 같은 무늬였지만 좀 더 예쁘게 생긴 ‘예쁜이’. 각각의 특징으로 이름을 붙였다. 이름으로 부르니 더 마음이 갔다. 며칠 안 보이면 무슨 일 생긴 건 아닐까 걱정하곤 했다. 며칠 만에 마주할 때면 눈을 깜박이며 ‘안녕’ 하며 인사를 건네기도 했다.


다른 곳에서 비슷한 길고양이를 보면 “너는 노랑이랑 닮았구나”, “너는 삼색이랑 형제야?”라며 말을 건네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이름 붙인 존재를 기준으로 생각하며 녀석들을 한 번 더 언급하고 있었다. "이름을 불렀을 때 꽃이 되었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알게 된 순간이다. 또한 눈을 보고 깜박이는 게 “너를 해치지 않아”라는 의미라는 사실을 알게 된 후로는 볼 때마다, 눈인사를 건넸다. 재개발로 인해 그 지역을 떠나게 됐지만 녀석들이 종종 떠오르곤 한다. 그저 다치지 않기를 바라며 이사를 나왔다.


이와 같이, 이름을 붙이면 신기한 일이 생긴다. 좀 더 애정이 생긴다. 그저 스쳐 지나가는 존재가 아닌 삶에 자리 잡은 존재가 된다. 길에서 마주친 고양이에게 이름을 붙이는 순간, 그 존재는 ‘그냥 지나가는 고양이’에서 ‘내가 아는 고양이’로 바뀐 것이다. 뿐만 아니라 살아가는 공간, 자주 가는 카페, 심지어 어떤 순간에도 이름을 부여하면, 그 공간은 더 이상 낯선 곳이 아닌 익숙하고 특정한 장소가 된다.


이름을 부하는 것은 그 대상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일이다. 그 존재를 온전히 인정하고, 하나의 개별적인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사람과 관계를 맺을 때도 통성명하며 알아가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호명이 아니라, 관계의 시작이다. 우리는 이름을 부르며 상대를 향한 관심과 애정을 표현한다. 친밀한 관계일수록 더 자주 부르게 된다. 부를 때마다 상대의 존재가 확실해지고, 이름을 부르는 행위 자체가 그 존재를 존중하는 방식인 것이다. 이처럼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단순한 식별이 아니다. 그것은 ‘너를 안다’, ‘너를 기억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름은 단순한 단어가 아니라 그 존재를 인정하는 첫걸음이다. 관계 속에서 서로를 이어주는 다리와 같다. 이름을 부르는 그 자체만으로도 사랑의 표현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애정을 담아 부르는 이름은 따뜻함이 느껴져 편안함과 반가움으로 다가온다. 반면 차갑고 무심하게 부르면 거리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가 가까운 사람들의 이름을 애칭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것이다. 이름을 부르는 방식에 따라서도 감정이 다르게 느껴지고, 그 감정은 관계를 반영하는 척도가 된다. 관계의 온도를 알 수 있다.


우리는 사랑하는 존재의 이름을 더 자주 부른다. 그리고 부를수록 그 존재는 더욱 선명해진다. 이처럼 불러주고 기억하는 행위 자체만으로도 사랑을 더 깊게 만들어간다. 결국, 이름을 불러준다는 것은 세상을 향해 내미는 손길과도 같다. 길고양이든 사람 사이든 혹은 어떤 소중한 순간이든 이름을 붙이고 기억하는 행위는 존재를 특별하게 대하는 것과 같다. 우리는 이름을 부르며 관계를 만들고, 기억을 쌓아간다. 그리고 그 기억 속에서 서로를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은 또 다른 사랑의 모습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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