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24년 2월 18일. 첫째 루비가 세상을 떠났다. 차갑게 식은 몸을 만지며 ‘사랑한다’는 말을 하며 지금까지의 고마움을 건넸다. 동시에 더 잘 해주지 못한 미안함이 몰아쳤다. 어떤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준 존재가 떠난 것이 슬펐고 마음에 허전함이 찾아왔다. 루비가 어렸을 때부터의 모든 순간을 되돌아보기도 했다. 돌아볼수록 고마움이 깊어졌다. 들어가기 싫었던 집에 웃음을 선물해준 존재, 공부할 때면 의자 밑에서 자리 잡던 귀여움, 잠 잘때마다 베개를 빼앗고 심장 소리를 들려주던 생명체, 다른 동물들을 만나면 숨기 바빴던 겁쟁이, 아플 때면 늘 걱정하게 만든 근심거리 등으로 루비에 대한 기억을 묘사할 수 있다.
남아 있는 둘째 진주는 현재 심장이 좋지 않다. 심장약을 먹으면 신장의 기능이 떨어진다. 그렇다고 심장이 낫지는 않는다. 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다른 기능으로 연명하는 것이다. 이별이 더 실감된다. 그리고 이제는 귀가 멀어 소리를 듣지 못한다. 이름을 불러도 반응하지 않는다. 자고 있다가도 부르면 걸어오던 모습이 그리워진다. 여러 아쉬움과 속상함을 뒤로하고, 살아 있음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다. 진주와 산책할 때면 함께 달리기했던 때를 듣지 못하는 녀석에게 얘기하곤 한다. 이제는 천천히 걸을 수밖에 없지만 녀석의 걸음걸이에 맞춰 느리지만 짙은 시간을 보낸다. 때로는 귀찮기도 하고, 의무였던 산책이 이제는 소중해졌다. 이렇게 이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도 첫 만남이 생생한데, 이제는 기억속에만 존재하는 게 못내 마음이 아려온다. 이처럼 어떤 존재와 순간을 그리워한다는 점에서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살아 있는 것만으로도 고마운 존재를 통해 현재의 소중함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된다. 결국, 사랑이라는 건 회상하며 그리워하는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는 모습이다. 사랑은 그렇게 현재와 기억 속에서 함께 한다. 눈앞에 없더라도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살아 숨 쉬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처럼 사랑이란 함께한 시간 속에서 함께 남기는 흔적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흔히, 반려동물의 죽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펫로스 증후군’을 앓는다고 한다. 함께했던 시간이 길수록, 그 존재가 삶 속에 깊이 스며들수록 상실감도 커진다. 문을 열었을 때 반겨주던 존재가 없다는 현실, 강아지와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면 떠올리게 되는 그리움, 무엇보다 사랑해주던 존재의 부재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슬픔이다.
다시는 반려동물을 들이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별이 너무 아프고, 그리움이 무척 크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또다시 이별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지인 중 한 명이 이렇게 물었다. “또 강아지 키울 거야?”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분명하다. 상황이 허락된다면, 또다시 사랑하는 것을 선택할 것이다. 이별은 아프지만, 함께 보낸 시간은 고유한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이별의 아픔이 크다는 사실은 그만큼 사랑했다는 반증이 아닐까. 2년이 지난 지금은 이별의 아픔보다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소중했는지가 먼저 떠오른다. 이제는 기다리고 있다. 상황이 허락되기를. 그전까지는 좀 더 그리워하고 존재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시간을 갖고자 한다. 이별은 늘 두렵지만, 두렵기에 함께 할 수 있을 때 더 소중히 여기는 사랑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루비와 진주를 통해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 그 존재가 있을 때뿐만 아니라 떠난 후에도 사랑은 지속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때로는 그리움이 밀려와도 결국은 행복했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 기억이 나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고, 다른 존재들에게도 더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게 한다. 이성 간의 연애를 통해 사랑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게 되는 것처럼, 반려동물과의 시간 속에서도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기꺼이 다시 사랑하기를 선택할 것이다. 이별을 맞이할 용기로 사랑하기를 선택해보는 것이다. 함께했던 순간이 마음을 따뜻하게 만들고, 웃게 만들고, 울게 만듦으로써 여러 감정을 맛보게 한다. 사랑하기에 감정이 발원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