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왜 이것이 필요한가?”
처음 독서를 시작하며 던졌던 질문들이다. 학교를 자퇴한 후, 홀로 있는 시간이 길어지니 말하는 방법을 잊은 적도 있었다. 사람들을 마주하는 게 마냥 두렵기도 하고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까봐 낮보다 밤에만 다니기도 했다. 낮에 심부름하러 나가는 것조차 꺼려질 정도였다. 거울 속 내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시기였다. 막연하게나마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인식은 있었지만, 어떻게 나아지고 싶은지에 대한 구체적인 이미지조차 없었다. 당시에는 자존감이 낮고, 실수하면 그것을 곱씹느라 또 다른 실수를 낳았다. 소위 ‘폐급’이었다. 그럴 때면 마음이 어려웠다. 이런 자신과 다르게 ‘리더’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는 자신감 있고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정해서 주도하는 모습이었다. 그래서 ‘리더십’에 관한 책부터 찾아 읽기 시작했다.
자연스럽게 리더란 무엇인지, 어떻게 하면 좋은 리더가 될 수 있는지 고민했다. 동시에 이런 생각이 찾아왔다.
“리더는 원래 똑똑한 사람만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 질문을 깊이 들여다보니 내 안에 자리 잡은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나는 똑똑하지 않다’는 믿음이었다. 이 믿음은 나를 주저하게 만들고, 마음을 좀먹기 일쑤였다. 리더십 분야 책들을 읽다가 뇌과학의 일부 지식을 접하면서 ‘신경가소성’이라는 개념을 알게 됐다. 인간의 뇌는 고정된 것이 아니라, 새로운 경험과 학습을 통해 변할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신경회로가 많아지면서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결국, ‘사람은 나이가 들어도 뇌는 계속 변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 사실은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고, 변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심어줬다. 새로운 믿음이 심어진 것이다.
덕분에 용기를 내기 시작할 수 있었다. 내가 부족한 것이 문제가 아니라, 변할 수 있는 가능성을 믿지 않았던 것이 더 큰 문제였다는 사실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다음으로는 '불안'에 대해 좀 더 살펴보기 시작했다. "나는 왜 불안할까? 단순히 자존감이 낮아서일까? 아니면 다른 이유가 있는 걸까?" 질문들이 계속 이어졌다. 불안의 질문들을 들여다보면서, 그 이면에는 ‘욕망’이 숨어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더 나아지고 싶은 욕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또한, 성장하고 싶은 열망과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가 공존함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런 욕망과 욕구를 제대로 마주하지 않고, 인정하지 않으니 불안한 모습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불안을 외면하는 대신, 그 안에 숨은 욕망을 인정하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감정은 항상 어떤 신호를 보내고 있었다. 다만 내가 그 신호를 못 알아챘을 뿐이었다. 이 과정에서 감정과 생각이 다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감정이 순간적인 반응이라면, 이를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생각의 영역이다. 불안을 느끼는 것과 ‘나는 무능하다’고 단정짓는 판단은 구분되어야 함을 의미한다. 결국 감정은 통제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가 중요해진다. 감정을 부정하는 대신 그 자체로 존중해줘야 한다. 자신의 감정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하나의 메시지로써 말이다. 다시 말해, 감정이 전하는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이 관건이다. 어떤 욕망에서 비롯된 감정인지 살펴볼 수 있을 때, 비로소 주체적인 태도를 가질 수 있다.
단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있는 상황에 주목하기 위해 필요한 과정이다. 감정의 층위는 무척이나 다양하다. ‘화’를 세분화하면 짜증, 분노, 환멸과 같은 형태로 나뉜다. 단순히 “화가 난다”고 말하는 것과 “분노한다”는 표현하는 것에는 정도의 차이가 존재한다. ‘슬픔’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단순히 우울한 기분에서 그치지 않는다. 상실, 그리움, 외로움과 같은 여러 감정이 얽혀 있다. 어떤 슬픔은 누군가를 잃은 데서 오고, 어떤 슬픔은 이루지 못한 기대에서 비롯된다. 이처럼 같은 슬픔일지라도 그 원인과 양상이 다르다.
마찬가지로 ‘두려움’도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단순한 공포와 불안은 다르고, 걱정과 긴장도 또 다른 층위의 감정이다. 우리는 막연한 불안감을 느끼면서도 정확히 그 감정을 정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 단순히 불안한 게 아니라, 실패할까봐 두려운 거야”라고 구체화하면 감정에 대해 좀 더 이해할 수 있다. 반대로 ‘기쁨’ 역시 단일한 감정이 아니다. 여러 결이 존재한다. 가벼운 만족감에서 오는 기쁨과 오랜기간 원했던 것을 이뤘을 때의 성취감이 다르듯이 말이다. 어떤 기쁨은 타인과의 관계에서 오고, 어떤 기쁨은 자신의 성장을 통해 얻어진다. 이처럼 순간적인 즐거움과 깊은 행복감을 구분하는 것만으로도 감정의 폭이 넓어진다.
우리는 인생에서 많은 감정을 느낀다. 단지 적확한 표현을 못 찾아서 ‘화가 난다’, ‘우울해’, ‘그냥 짜증 나’ 등 단순하게 말할 뿐이다. 살펴본 것처럼, 감정에 대해 상황에 따라 다른 느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을 심리학에서는 ‘감정 명명하기’라고 한다. 감정 명명하기는 단순히 기분을 표현하는 것을 넘어, 내면을 깊이 이해하는 과정이다. ‘기분이 안 좋아’라고 말하는 것과 ‘나는 지금 실망감과 좌절감을 느끼고 있어’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또한, ‘나는 그냥 우울한 거야’라고 대신하던 순간들과 달리, ‘나는 기대했던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실망했고, 그래서 지금 우울한 기분이 드는 거야’라고 표현하는 것은 다르다. 이처럼 단순한 불쾌감으로 넘기던 감정을 정확히 짚어내면, 그 감정이 어디에서 촉발된 것인지 파악할 수 있다. 감정은 실체 없이 떠도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어떤 원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감정을 구체화할수록, 우리는 감정을 다루는 방법도 찾을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구체적으로 바라보는 연습은 결국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발견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가령, 불안을 깊이 들여다보면 안정과 성장을 동시에 원하는 나를 발견할 수도 있다. 기쁨을 살펴보면, 단순한 즐거움을 넘어 어떤 순간에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지 알게 된다. 감정을 명명한다는 것은, 결국 나 자신을 조금 더 선명하게 이해하는 일이다.
그렇기에 감정을 피하거나 억누르기보다, 감정을 탐구하는 태도가 필요하다. 감정은 논리적으로 정리할 수 없는 혼란스러운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정직하게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다. 자신의 감정을 알아간다는 것은 곧 나를 알아가는 과정인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