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읽기는 눈과 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뇌의 영역이라는 사실을 앞에서 살펴봤다. 읽기는 뇌가 하는 활동이기에 경험과 기억은 그만큼 중요한 재료라 할 수 있다. 경험과 기억을 쌓는 과정은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다. 결국 좋은 기억을 만들기 위해서는 잘 읽는 게 중요해진다. 반면에 상황을 어떻게 읽었느냐에 따라 선택이 달라지기도 한다.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사람의 뇌는 기본적으로 부정적인 것에 주목하게끔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자극적인 제목에 끌리고 안 좋은 소식과 부정적인 생각에 쉽게 빠져드는 이유이다. 한없이 우울해지고, 상황이 풀리지 않을 때 안 좋은 일들만 상상하는 이유가 역시 기본적인 특성 때문이다. 긍정적인 얘기보다 부정적인 내용을 더 눈에 띄는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인 셈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선택할 수 있다. 단순히 긍정을 선택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선택은 본인의 몫이기 때문에 생각의 흐름을 읽어야 한다. 부정적인 생각은 한없이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불안하거나 걱정에 사로잡혔을 때 수많은 생각으로 불면증을 겪어 본 사람들은 잘 알 것이다. 생각하다가 지쳐서 잠이 드는 나날을. 이런 생각의 고리는 잠자리에서만 나타나는 게 아니다. 우울하거나 걱정이 앞설 때도 마찬가지다. 초라한 자신을 비하하며 무엇을 걱정해야 할지 모른 채 불안해하기도 한다. 이렇게 불현듯 발현되는 현상을 읽어야 한다. 이때의 마음과 생각의 경향을 관찰해야 한다. 왜 불안해하고 무엇을 걱정하는지 명확히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불면의 밤은 잦아지고 자신은 작아진다.
죽을 것 같은 시기를 잘 견디지 못하면 수의를 입지만, 눈물 속에서 불편하더라도 살아서 우의를 입는 게 낫다. 바라만 봐도 지치고 먹을 때마다 소화가 안 되던 시간도 결국 지나기 마련이다.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처지를 비관하는 생각보다 분명히 보기 위한 의지를 다져보자. 비관하게 만드는 생각에 이끌려 다녀서는 안 된다. 생각의 주체는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생각이 나를 움직이는 게 아니라 내가 생각을 움직여야 한다. 움직일 만한 울림이 없는 일상일지라도 살아가야 한다. 인생에는 정해진 상수보다는 변수들이 더 많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충분히 아파하고 우는 게 낫다. 부모를 찾으며 우는 아이처럼 소리를 내야 한다. 엇갈릴지라도 움직여야 한다. 소리를 내야 도움이 찾아오고 움직여야 마주하는 기회가 생긴다. 단순히 아픔을 참고 견디는 게 능사가 아니다. 참고 견딘다는 것은 일상을 살아가며 인내하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의도적인 멈춤과 멈춰지는 것은 다르다. 의도적인 멈춤은 방향을 모색하는, 혹은 마음을 지키기 위한 단절을 말한다. 그러나 멈춰지는 건 고장나버린 것이다. 멈춰지기 전에 자신의 살펴야 한다. 생겨나는 구덩이들이 더 커지기 전에 적절한 조치가 필요하다. 때로는 단절함으로써, 때로는 방향을 재점검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생은 날의 기록들이 쌓인 총합이기 때문이다. 일기는 자신이 써야만 온전하다고 말할 수 있다. 당시의 생각과 기억들은 다른 사람은 관찰자 시점으로만 알 수 있기 때문이다. 부분적으로 기술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나는 어떤 상태인가', '나는 무엇을 원하는가' 하며 이따금씩 자신을 돌아봐야 일기를 온전히 써내려갈 수 있다.
상황을 읽는 것 못지 않게 자신의 생각과 마음을 읽는 것은 중요하다. 안정적인 삶을 위한 필요한 요소에는 의식주만 있는 게 아니다. 마음의 상태를 파악하고 점검하는 것도 중요한 요소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자신만의 구덩이가 있다. 그 깊이는 사람마다 다르고 몇 개가 있을지도 알 수 없다. 이때 기억하면 좋을 사자성어가 있다. '영과후진(盈科後進)'이 그것이다. 흐르는 물은 구덩이를 먼저 채우고 흐른다는 의미이다. 언뜻 생각하면, 물이 구덩이를 언제 채울 수 있을까 싶을지도 모른다. 깊이를 알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나 물이 흐른다는 것은 물이 샘솟는 곳이 존재한다는 의미이다. 그렇기에 물은 구덩이가 몇 개일지라도 채우고 끊임없이 흐를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마음이 물과 같지 않을까. 언제, 어떻게 샘솟는지 모르고, 마음의 구덩이들이 언제 채워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물이 구덩이를 채우듯이 마음의 아픔을 시간이 다른 의미로 채워줄 것이다. 깊어 보였던 구덩이가 좀 더 성장한 눈으로 되돌아보면 이전보다 깊어 보이지 않고, 곱씹으며 구덩이를 더이상 파내려 가지 않는 의연함을 갖춘 모습으로 말이다. 또한, 반대로 생각해보면 구덩이의 깊이만큼 물이 채워진다. 다시 말해, 그만큼의 물을 품고 있는 것과 같다. 마음의 구덩이가 크고 깊을수록, 그리고 많을수록 채워져 물이 흐르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한 번 채워진 구덩이의 물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 된다.
우리는 마음을 계속 살펴야 한다. 아픈 만큼 성장해야 성장통이다. 아픈 만큼 채워지려면 제대로 아파야 한다. 마음의 깊이를 온 몸으로 느껴야 내 것이 된다. 물이 흐르면서 퇴적물들이 쌓이고 정화작용이 일어나듯 우리 마음도 동일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구덩이는 그 깊이만큼 삶의 수장고가 될 것이다. 물이 흐르면서 퇴적물을 옮기며 다양한 지형을 만드는 것처럼 감정의 퇴적물은 다양한 마음의 지형을 형성할 것이다. 이렇게 형성된 마음은 생태환경을 조성하고 다양한 경치를 제공할 것이다. 당시의 아픔이 미래의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날의 기억이 달라지고 삶의 일기가 다르게 쓰여지는 것이다.
인생의 책이 보통의 책과 다른 점은 고쳐 쓸 수 없다는 것이다.
책은 잘못 쓰면 지우고 다시 쓸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다시 쓸 수 없다.
또한 남이 대신 써줄 수 없는 것이다.
_ 마테를링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