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어떤 질문을 마주하느냐에 따라 생각의 깊이가 달라지고, 삶의 방향이 달라지기까지 한다. 좋은 질문은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며, 익숙함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한다. 반면, 피상적인 답만 나오게 하는 질문도 있다. 이는 질문이 낯설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질문을 두려워하기보다는 그 앞에 서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다. 예리하고 불편한 질문일수록 나를 성장시킨다. 익숙한 질문을 넘어설 때, 시야가 넓어진다. 질문을 던지고 고민하는 자체가 더 나은 모습으로 스스로를 빚어가는 과정이다. 결국, 변화는 어떤 질문을 마주하고 자신만의 해답을 써내려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많은 말을 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질문은 많이 하지 않는다. 주입식 교육의 영향이지 않을까 싶다. 공부외 다른 것에 신경쓰는 것을 허락하지 않기 때문이다. '나중에' 해도 되는 것으로 치부한다. 관심조차 두면 안 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궁금함이 생길 기회조차 제공하지 않는다. 심지어는 공부해야 할 이유에 대한 질문은 한낱 스쳐 지나가는 반항이며 쓸데없는 짓이라고 치부하기도 한다. 예전처럼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되던 공식이 성립하지 않음에도 여전히 입시에 열중한다. 대학을 가야 한다는 분위기는 여전히 강력하다.
그래서인지 대학을 가서 방황하는 사람들이 많다.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 입학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재수를 결정하기에는 부담감이 커 선뜻 선택하지 못한다. 자신에 대한 확신이 부족한 것도 있지만 남들보다 늦게 졸업하게 될 것을 두려워하는 것도 한몫한다. 졸업이 늦춰지면 그만큼 취업할 나이가 늦어지기 때문이다. 이는 단순한 늦춰지는 것뿐만 아니라 뒤쳐짐으로 인식하는 게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취업이 늦어지면 상대적으로 돈이 늦게 모인다. 돈이 적은 만큼 자신을 위한 시간이나 결혼에 대한 시기 역시 늦어지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순차적으로 계속 늦어지는 것이다. 그래서일까? 우리에게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질문들은 대개 '언제'에 관한 성격을 갖고 있다. '언제'라는 질문이 먼저 찾아오고 뒤이어 '어떻게'라는 질문이 찾아오면 말문이 막힌다. '언제'라는 질문은 늦었음을 암시하고, '어떻게'라는 질문에서 늦은 만큼 행동할 것을 촉구하는 것처럼 다가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괜찮다. 이런 질문을 한 번만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받지만 큰 내상을 입히지는 못한다. 듣기 싫어서 기분 나쁠 수는 있지만 당장 큰 결정을 하게끔 만들지는 않는다. 그들이 대신 인생을 살아주는 게 아님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스로 질문할 때는 다르다. 대개 '언제'라는 질문은 스스로 초라하다고 느낄 때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기 때문이다. 이미 주변 사람들과 비교를 마치고 하는 게 '언제'에 관한 질문이다. "누구는 차를 모는데, 나는 언제…", "친구들은 다 결혼했는데, 나는 언제…" 등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자신은 갖지 못한 것이나 이루지 못한 상황에 주목할 때 나타나곤 한다. 그러나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불안만 키우고 '어떻게' 라는 뒤이은 질문에 답을 내릴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제'에 초점을 맞추면, '어떻게'라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불안함과 조바심에 어디부터 손을 써야 할지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언제'에 초점을 맞춘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렇기에 무의미하다. 명확하게 답을 내릴 수 없고, 목표를 급하게 정해도 지금을 바꾸지 못한다. '언제' 다음의 '어떻게'라는 질문이 좋지 않은 이유이다. 올바른 순서도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자주 하는 질문을 살펴보는 것이다. 질문을 판별할 필요가 있다. 좋은 질문인지 나쁜 질문인지 선별해야 한다. 질문이 생각의 초점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바라보는 순서를 조정하기 때문이다. 마음의 불편함을 넘어 자신을 괴롭히는 질문은 좋은 질문이 아니다. 피할 수 없는 질문일지라도 당장 맞이해야 하는 질문도 아니다. 무엇보다 비교 끝에 하는 질문은 더욱 좋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