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4,5. [질문] 관심의 표현과 좋은 질문

질문

by 오 영택

#관심의 표현

기본적으로 상대를 향한 질문은 관계가 있을 때 하기 쉽다. 그러나 관계가 있더라도 관심이 없으면 질문하지 않게 된다. 질문은 관계와 관심을 전제로 한다. 길을 묻거나 모르는 것에 대해 물을 때는 누구에게나 질문할 수 있겠지만, 그 사람에 관한 질문을 하기는 어렵다. 솔직한 답변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질문은 관계를 형성하는 데 있어서 훌륭한 수단이다. 가벼운 질문으로 대화를 시작할 수도 있고, 안부를 묻는 질문으로 연락하기에도 무난하다. 누군가를 알아가는 데 있어서 질문만큼 직접적으로 정보를 얻는 방법도 드물 것이다. 또한 상황을 파악하거나 물건의 용도를 빠르게 숙지하는 것을 돕는다. 질문이 많아지는 것도 이와 비슷하다. 낯선 환경이나 상황에 대해서는 질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걱정이 앞서기도 하고 확실한 정보를 얻고 싶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첫 모임이나 새로운 만남에서는 비교적 많은 질문이 오고 간다. 간단히 알아가기 위해 가벼운 질문을 주고받기 때문이다. 하지만 깊은 질문은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지속적인 궁금함은 관심과 신뢰가 있어야 생기는 것이고 물어볼 용기를 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침묵을 견디지 못해 나오는 질문들이 오고 가며 형식적인 대답만 남게 된다. 침묵을 채우기 위한 질문이 도리어 침묵의 시간을 길게 만드는 것이다.


질문은 생각을 강제하는 특성이 있다. 그래서 질문을 받으면 답하기 위해 생각하게 된다. 대답하지 않을지라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대화가 이어지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한 관심이 적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나 이는 사람 사이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자신에게도 충분히 나타날 수 있는 현상이다. 관심 있는 사람에게는 궁금한 것들이 많아지듯이, 자신을 향한 질문은 어떠한지 생각해보자. 질문이 적다면, 자신에게 관심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혹은 자신을 잘 안다고 착각했던 것은 아닌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많은 경우, 자신을 향한 질문은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그렇다면 자신을 향해 질문이 없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자신을 안다는 착각 속에 무관심했던 것은 아닐까? 회의감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할 때 의문을 제기하는 질문 외에 없었다면, 주기적으로 자신에게 질문하는 연습을 시작해보면 좋다. 곧장 답을 얻지 못할 수도 있고, 답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자신에게 질문을 계속 던져야 한다. 어떤 질문에 답하지 못하는지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질문에 대한 자신의 반응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알아가는 수단으로써 질문을 하는 것이다.




# 좋은 질문

이제는 좋은 질문과 나쁜 질문을 구분해야 한다. 문장 끝이 '물음표'라고 해서 다 같은 질문이 아니다. 형태는 질문이지만 상대를 비꼬거나 비교하며 자신을 내세우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 것이다. 이와 같이, 의도가 다분한 질문은 당연 좋은 질문이라 할 수 없다. 누구에게도 좋은 말이 될 수 없기에 더욱 그러하다.


사실 악의적인 의도를 갖고 있지 않다면, 질문 자체는 좋다고 말할 수 있다. 질문하지 않는 것보다 질문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또한 상대에 대한 관심, 현상에 대한 궁금함, 지속적인 호기심의 표현이기 때문에 질문은 생각의 방향을 설정하고 생각의 범위를 확장시킨다. 더 많은 것을 볼 수 있게 만드는 효과가 있다. 질문의 범위가 확장되는 만큼 읽을거리가 풍부해지는 셈이다. 질문은 자주, 그리고 계속 할수록 좋은 이유이다.


물론 모든 질문이 좋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질문을 만나기 위해서는 많은 질문을 접해야 한다. 자신에게 맞는 신발을 찾기 위해 여러 신발을 신어보는 것처럼 말이다. 또한 자주 신어야 신발은 길들여진다. 사이즈가 맞을지라도 발이 편안함을 느끼는 데는 일정 시간이 필요하다. 자주 신을수록 신발이 늘어나면서 여유 공간이 생긴다. 이 여유 공간이 불편함을 사라지게 만드는 것이다. 질문 역시 이와 같다. 필요한 질문일지라도 당장은 불편할 수 있다. 그러나 질문도 자주 마주해야 익숙해진다. 마주한 만큼 질문을 다양한 측면에서 바라볼 여유가 생긴다. 낯선 날 선 질문은 아프게만 보이지만, 익숙한 날 선 질문은 자신을 위한 도구가 된다.


결국 좋은 질문이란 자신에게 익숙한 질문인 셈이다. 질문을 마주해야만 좋은 질문으로 다가온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표현처럼 직접 마주해야 한다. 괜찮은 질문들을 알게 된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자신을 불편하게 만드는 날 선 질문에 직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직면한 질문만이 변화를 이끌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신발이라도 신지 않는다면, 신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모두가 좋은 질문이라 말할지라도 질문 앞에 직면하지 않는다면, 그저 남에게만 좋은 질문일 뿐이다. 직면해야만 인생질문 리스트에 남게 된다. 그래야만 변화를 도모할 수 있다. '좋은 질문'이란 자신을 돌아보게 만들고, 조금 더 성숙하고, 조금 더 좋은 사람으로 나아가게 만들기 때문이다.


남에게 좋은 것이 나에게는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유는 분명하다. 접한 시간이 다른 만큼 익숙함 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적응된 상태와 낯선 상태는 당연히 같을 수 없다. 질문도 그렇다. 방법은 하나뿐이다. 익숙해지는 수밖에 없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자주 접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자주 마주함과 동시에 자신에게 적합한 방식으로 접근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발을 길들이고, 도구를 능숙하게 다루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사용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흐른다고 좋아지지 않는다. 인생의 도구인 질문 역시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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