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고, 사용해봤을 표현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대상이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이해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는 사실입니다. 설명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연스럽게 이해되기 때문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빠진 부분을 채워 넣기 때문입니다. “아! 많이 알면 많이 보이는구나”라고 자동으로 해석하는 것이죠. 그럼에도 한 걸음 더 나아가 물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정확히 '무엇'이 보인다는 걸까요?
답은 '연결'입니다. 아는 만큼, 연결이 보입니다. 즉, 관계가 보입니다. 서로 다른 책에서 읽은 내용들이 연결되는 경험, 책에서 접한 것과 내 경험, 과거에 배운 것과 지금 마주한 상황의 밀접함. 이런 연결들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예를 들어, 심리학을 어느 정도 공부한 사람들은 팔짱끼고 얘기를 듣고 있는 사람을 보면, '경계하고 있다'는 것을 대번에 알 수 있습니다. 같은 행동에 대해서도, “저 사람은 왜 저럴까?”라고 이해할 수 없다는 표현을, 심리학을 공부한 사람은 다르게 봅니다. “저 행동은 방어기제일 수 있겠네”, “확증편향의 사례 같은데”, “불안 애착 유형의 특징인데?”와 같이 배운 개념과 눈앞의 상황이 연결되는 것이죠.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말 역시 일맥상통합니다. 이는 단순히 과거로부터 배우고, 이것을 바탕으로 현재와 미래를 현명하게 만들어가야 한다는 의미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이 안에는 민족의 뿌리이자 정체성에 대한 인식의 촉구가 담겨 있습니다. '역사를 잊으면 방향을 잃고 표류하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역사는 과거에 불과하다고 치부할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과거와 현재는 밀접하게 맞닿아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습니다. 결코 분리하거나 무시할 수 없는 관계입니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단순히 어떤 사건들이 '있었는지'를 열거하는 것을 지칭하지 않습니다. 역사를 알면, 과거와 현재를 연결시킬 수 있는 안목이 생깁니다. 그리고 이 연결 속에서 패턴을 보는 것입니다. “이 상황은 과거의 어느 시점과 비슷하다”, “이런 조건에서는 보통 이런 결과가 나타났다”, “이 사건은 위험의 전조였다”와 같이 말이죠. 그리고 패턴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완벽한 예측은 존재하지 않지만, 적어도 “이런 방향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높다”, “이런 선택은 위험하다”, “이 길은 이미 실패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는 민족의 역사, 다시 말해 '국사'에 대해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경제를 비롯해, 개인의 경험에서도 동일합니다.
경제를 아는 사람은 뉴스를 다르게 바라봅니다. “금리가 오른다”는 소식을 접할 때, 경제를 모르는 사람은 “대출 이자가 오르겠구나” 정도에서 그칩니다. 그러나 경제를 아는 사람은 좀 더 많은 것을 연결시킵니다. “금리가 오르면 대출이 줄어들고”, “대출이 줄면 소비가 위축되고”, “소비가 위축되면 기업 실적이 나빠지고”, “그러면 고용이 줄어들 수 있다”와 같이 연결고리가 길어집니다.
이외에도 과거의 경제 사이클을 아는 사람은 패턴을 읽습니다. “2000년대 초반 닷컴 버블이 꺼질 때도 이런 신호가 있었다”, “2008년 금융위기 전에도 비슷한 조짐이 보였다”와 같이 말이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하기 때문에,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이유에서 위험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왠지 이 사람은 믿을 수 없을 것 같아”, “이 선택은 위험할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이건 잘 될 것 같은데?”와 같이 말이죠. 흔히 '직감'이라고 하지요.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그냥 그런 느낌이 드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직감은 축적된 경험과 지식의 패턴 인식입니다. 그래서 '제 6의 감각'이라고 말하기도 하지요. 많은 경험에 의해 만들어진 능력인 셈입니다. 아는 만큼, 연결이 보이고, 연결이 많아질수록, 직감이 정확해지는 것이죠.
연결이 보인다는 것은 세상을 입체적으로 본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사건이 고립된 점이 아니라, 선으로 보인다는 것이죠. 그 선들이 많아질수록 하나의 면이 되고, 면이 모여 자신만의 입체적인 사고체계가 형성됩니다. 물론, 이 과정은 뇌가 불확실성을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해석이나 의미를 부여하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결을 보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그리고 연결시킬 수 있는 안목이 필요합니다. 설령 연결은 뇌가 만들어낸 해석이라 하더라도, 상당히 실용적입니다. 금리 인상과 소비 위축의 연결을 보는 사람은, 그 연결을 보지 못하는 사람보다 더 나은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과거의 경제 위기 패턴을 아는 사람은, 모르는 사람보다 미래를 대비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프랜시스 베이컨은 “아는 것이 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아는 것은 생존의 도구가 될 때가 많습니다.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기회를 포착하고,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게 만드는 것처럼 말이죠. 그래서 우리는 늘 “안목을 갖춰야 한다”고 말하기도 하지요. 또한 연관성을 볼 수 있는 사람은 보지 못하는 사람보다 변화에 더 잘 적응합니다. “살아남았다는 것은 강하다는 증거”라는 말은 이에 대한 유머 섞인 표현일 것입니다.
이런 연결 능력은 창의성으로 이어집니다. 연결을 발견하는 능력, 연결시키는 능력을 통틀어 '창의력'이라고 말합니다. 창의력이란, 흔히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으로 여겨지곤 합니다. 하지만 실제 창의성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의성은 연결입니다. 기존에 있던 것들을 연결하고 조합함으로써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에 담긴 의미이기도 합니다.
스티브 잡스는 “창의성은 단지 연결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가 개발한 아이폰은 무에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전화기, 컴퓨터, 인터넷, 터치스크린 등 이미 존재하던 것들을 새로운 방식으로 연결한 것입니다. 뉴턴의 만유인력 법칙도 마찬가지입니다.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보고 갑자기 떠오른 개념이 아닙니다. 케플러의 행성 운동 법칙, 갈릴레이의 낙하 법칙, 데카르트의 기하학 등 이미 존재하던 지식들이 연결되는 과정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이처럼 창의성은 특별한 사람만 가진 능력이 아닙니다. 연결할 수 있는 점들을 많이 가지고 있을수록, 그것들을 연결하는 연습을 한 사람이라면 누구나 발휘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연결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아는 만큼 늘어납니다. 점이 2개라면 연결할 수 있는 선은 1개입니다. 점이 3개면 3개, 점이 4개면 6개입니다. 점이 10개면? 45개의 연결이 가능합니다. 점이 100개면? 무려 4,950개의 연결이 가능합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점을 늘리는 방법이 단순히 새로운 책을 읽는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의 점을 더 깊이 이해하면, 그 점은 여러 개로 나뉘기도 합니다. 마치 하나의 선을 반으로 자르면 두 개가 되는 것처럼요. 예를 들어, 처음에는 '심리학'을 하나의 학문으로 알고 있었는데, 여러 권을 읽다보면 '인지심리학', '발달심리학', '사회심리학', '임상심리학'으로 세분화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경제학'도 '미시경제', '거시경제', '행동경제학', '국제경제'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편집'의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의 학문을 더 정교하게 나누고, 구분하고, 세분화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구분된 분야들은 다시 새로운 연결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인지심리학'과 '행동경제학'을 융합하면, “사람들이 비합리적 선택을 하는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됩니다. '발달 심리학'과 '교육학'을 연결하면 “아이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경우의 수를 늘리는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새로운 것을 추가하거나, 기존의 것을 편집하는 방식으로 말이죠. 이 두 가지를 모두 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바로, '독서'입니다.
책을 읽어나가면서 우리는 새로운 점을 얻습니다. 새로운 개념과 사례, 관점 그리고 질문까지. 이런 것들이 머릿속에 점으로 찍힙니다. 반면, 같은 주제의 책을 여러 권 읽다보면 비슷하면서도 다른 내용이나 관점을 접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책을 계속 읽다 보면, 점들이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어? 이 내용 저번에 읽은 책에서 봤던 내용인데?”
“이 내용이 내가 겪은 경험을 설명해주네”
“이 분야와 저 분야가 비슷한 점이 있네”
이처럼, 독서를 통해 경험과 지식이, 지식과 지식이 연결되는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의 대상이 늘어나는 것이죠.
독서는 하나의 창조 과정이다.
에렌 부르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연결할 수 있는 대상들을 접할 수 있고, 어떻게 연결되어 있고, 세분화할 수 있는지 알 수 있기에, 독서는 그 자체만으로 하나의 창조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관계를 볼 수 있는 안목이 생기는 만큼 창의력 역시 향상됐다고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의 대상이 늘어날수록 더욱 그렇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