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
생각하고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_ 폴 발레리
우리는 수많은 생각을 하며 살아갑니다. 생각이 너무 많아서 어떤 날에는 불면의 밤을 보내기도 합니다. 갖가지 생각들이 떠올라 쉽사리 결정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생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생각이란 무엇일까요? 생각 얻기라고 명명했지만, 생각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생각과 감정을 구분하는 작업도 필요합니다. 물론 감정이 생각을 불러일으키고, 생각이 감정을 소환하기도 합니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관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구별하는 작업이 필요한 이유는 자명합니다.
감정과 생각을 구별하지 못하면, 우리는 감정에 휩쓸려 살게 됩니다. 감정이 나를 조종하는 것이죠. 그러나 사람은 생각하는 존재입니다. 그러니 감정과 생각을 구별할 수 있다면, 감정을 관찰하고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내가 지금 화가 난 이유는 뭘까?”, “생각할수록 화나는 이유가 뭘까?” 이렇게 자문함으로써, 감정을 파악하고 생각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감정이 반응이라면, 생각은 반응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나는 이 영화가 좋다고 생각해”라고 말할 때, 이것은 생각보다는 감정에 가깝습니다. 좋다는 느낌, 마음에 드는 기분을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이 영화가 좋은 이유는 캐릭터의 심리 묘사가 섬세하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생각의 표현입니다. 좋다는 감정의 원인을 분석하고, 근거를 제시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감정은 즉각적입니다. 화가 나거나, 슬프거나, 기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것들 말이죠. 이유를 따지기 전에 먼저 느껴지는 것입니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기분이 좋을 수도, 나쁠 수도 있습니다. 왜 그런지 모르지만 그냥 그럴 때가 있습니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면 가슴이 벅차오르기도 하고, 길 고양이나 산책하는 반려동물들을 볼 때면 기분이 좋아질 때가 있습니다. 저마다의 작은 힐링 포인트들도 있을 것입니다. 이것들 모두를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히 느껴지는 감정인 것이죠.
반면에, 생각은 다릅니다. 생각은 한 걸음 물러서는 것입니다.
“왜 화가 났을까?”
“왜 울적함을 느끼고 있지?”
“뭐가 두려워서 이러고 있는 거지?”
이처럼,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고, 질문하고, 이해하려는 시도. 이것이 생각입니다. 감정이 날씨라면, 생각은 그 날씨를 바라보고 분석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감정과 생각을 구별했다면, 이제 생각을 유도하는 질문에 대한 차례입니다. 생각의 전제조건은 질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질문을 받을 때, 답을 하기 위해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자동반사와도 같습니다.
이런 원리로 질문은 사고의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로 활용할 수도 있습니다. 탐구의 출발점이 되는 것이죠. 또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주기도 합니다. “이게 맞나?”라는 의구심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을 다시 보게 만드는 것처럼요. “왜 이렇게 되는 거지?”라는 질문은 원인을 찾게 만들고, “다른 방법은 없을까?”라는 질문은 대안을 모색하게 만듭니다.
이처럼, 생각은 질문에 의해 촉발됩니다. 혹은 질문을 함으로써 생각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어떤 질문을 간직하고 있느냐는 상당히 중요한 사항이 됩니다. 생각의 방향을 설정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때로는 질문 자체가 생각을 견인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생각에 잠기는 이유는 주변의 말들에 의한 경우가 많습니다. 비교의 말이든, 걱정의 말이든, 위로의 말이든 말이죠. 혹은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일 때도 있습니다. 자책이나 비관, 혹은 한심하게 여기는 형태로 말이죠. 출처가 어디든 이런 성격의 질문들은 좋지 않은 감정을 야기합니다.
때로는 울적함으로, 심하면 우울함으로 나타납니다. 걱정을 짊어진 채 하루하루를 보내기도 합니다. 곱씹어 생각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답은 단순합니다. “신경쓰지 마”라는 말을 따르는 것입니다. 참 어이없는 말이죠? 그게 안 되니까 계속 신경쓰고 밤을 설치는 건데 말이죠. 맞습니다.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게 가능한지도 의문입니다.
그럼에도 살아가기 위해서는 최대한 '신경쓰지 않는' 연습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관계를 단절한 채 지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요. 방법은 참 다양합니다. 누군가는 운동을 함으로써 스트레스를 해소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잊기 위해 술잔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혹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함께 얘기하기도 하지요. 다양한 모습이지만, 여기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상에 집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관심사를 돌리는 방법인 것이죠.
이런 측면에서 독서 역시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읽으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나서 화가날 수도 있고, 어처구니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곱씹으며 매몰되는 것보다는 낫다는 점입니다. 이런 방법들을 열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생각의 주체'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떠오르는 것은 막을 수가 없습니다. 그에 따라 감정이 촉발되는 것은 더욱이요.
그렇기에 관심사를 돌리고, 초점의 대상을 바꾸기 위한 시도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그 방법으로 운동과 독서를 선택했습니다. 물론 친구들에게 넋두리를 늘어놓기도 하고, 하염없이 누워서 잠들기 바란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방법들에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시간을 맞추기도 어렵고,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말한다고 해결되지 않으니 말이죠.
운동을 통해서는 그 시간에 집중하고,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을 느낌으로써 기분을 환기시키고, 책을 통해서는 다양한 질문과 마음에 와닿는 표현과 문장들을 마음에 쌓는데 집중하곤 합니다. 무의식에 계속 새기는 작업인 셈이죠. 때로는 위로와 격려를 받기도 합니다. 이런 기억과 경험이 쌓인 덕분에 좀 더 마음의 관심사를 어디에 집중해야 할지 선택할 수 있게 된 것 같습니다.
물론, 항상 잘 되는 것은 아닙니다. 독서를 하는 중간중간 마음을 후벼파는 말들이 불쑥 떠오르기도 합니다. 평소에는 잘 지내다가도, 상황이 좋지 않거나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는 더욱 그렇습니다. 취업준비 기간이 길어질 때는 “네 인생은 느리다”는 말이 오랜 시간 괴롭혔습니다. 스스로 “내 인생은 정말 느린가?”라는 회의 짙은 질문을 읊조리면서요.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자신조차 동의하기 때문에 읊조리는 것이었으니까요. 스스로를 좀 먹는 시간이 길어진 이유였지요. 그럼에도 이미 쌓아둔 문장과 표현, 그리고 질문들이 저를 지탱하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의식적으로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저마다의 속도가 있다”는 말을 붙잡았습니다. 또한, '모소대나무'와 '영과후진', '불광불급'이라는 단어를 되뇌이며 하루하루에 충실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모소대나무'는 중국 극동 지방에서 자라는 대나무인데요, 이 대나무는 씨앗을 뿌린다고 해서 바로 자라지 않습니다. 씨앗이 뿌려진 후 4~5년 동안은 단 3cm 정도 밖에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죽은 것처럼 보여서 땅을 갈아엎기도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약 5~6년이 되는 해부터는 '매일' 30~70cm씩 성장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6주차가 되면 무려 21~27m의 높이를 자랑하는 빽빽하고 울창한 대나무 숲을 이루는 것이죠.
그렇다면, 모소대나무가 3cm에서 성장을 멈춘 것 같이 보이는 4~5년 기간 동안에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것은 바로, '깊이' 뿌리 내리는 것입니다. 수백 ㎡까지 뻗어나간다고 합니다. 이 길고 긴 기간동안 뿌리를 내린 덕분에 폭풍 성장이 가능한 것이죠.
또한, '불광불급(不狂不及)'은 “미치지 않으면, 미치지 못한다”는 뜻인데요. 인생에 대한 회의감과 “이렇게 책을 읽는다고 도움이 될까?”라는 의문이 찾아올 때마다 의식적으로 붙잡았던 표현입니다. 이와 함께, '영과후진(盈科後進)'이라는 사자성어를 붙잡았습니다. “물이 흐를 때 움푹 파인 곳을 채운 후에야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여러 질문과 개념, 단어들이 존재하지만 주로 이 셋을 붙잡을 수 있었던 것은 독서를 통해 알게 된 덕분이었습니다. 의도적으로 되뇌이면서 마음가짐으로 자리 잡도록 반복해서 읊조리며 힘든 시간들을 견디며 지나올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도 그럴테지만요.
우리는 많은 말을 들으며 살아갑니다. 그 말은 타인에 의한 경우도 있지만, 스스로 재생산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어김없이 마음에는 어둠이 드리우기 마련입니다. 마음의 힘듦은 마음 속에 기록된 말들로부터 비롯되곤 합니다. 이 기록들은 지워지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말들을 기록하는 것이죠.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
성경의 잠언 4장 2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마음의 중심을 어디에 둘 것인지 결정하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구원과 별개로, 메시지 자체는 누구에게나 유효하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을 지킴으로써, 살아갈 활력을 유지하는 것은 중요한 사안이니까요. 많은 말을 접하는 가운데, 독서를 통해 마음을 세워주고, 붙잡을 문장들을 접하는 전략을 취하는 것은 전략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은 생각의 재료와 마음에 와닿는 문장들을 만날 수 있는 보고(寶庫)입니다. 부정적인 말들을 대체해주기도 하고, 마음을 대변해주는 표현을 발견할 수도 있습니다. 위로의 말이나 격려의 말, 붙잡아야 할 인생질문 같은 것들 말이죠.
결국, 독서를 통해 생각을 얻는다는 것은 마음에 새길 말을 선택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네 인생은 느리다”는 말 대신 “모소대나무처럼 뿌리를 내리는 중이다”라고 되뇌이기를 선택했던 것처럼요. 이처럼 무엇을 붙잡느냐에 따라 생각을 결정짓고, 삶의 방향과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다시 말해, 독서는 단순히 지적활동일 뿐만 아니라 마음을 붙잡게 해주는 전략인 셈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