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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Jul 18. 2021

네가 잠을 자면, 나는 가슴 저린다.

내 기억과 마주하기



“하나도 아프지 않습니다”라는 말은 ’어느 것도 아프지 않을 수 없다 ‘는 뜻이었다.

“강한 부정은 강한 긍정이다”.


지금은 전남편의 폭력에서 ‘이혼’이라는 의식을 치러가며, 멀리 도망쳤다고 생각하지만, 내 안의 기억은 아직도 살아서 꿈에서 꿈틀대고, 내 삶에서 움직인다.     


이것을 나만의 ‘기억’으로 가둬두고, 혼자서 ‘치유’하기에는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고통이기에, 나와 같은 아픔으로 힘들어하는 단 한 사람이라도 구조 해 내야만 할 것 같다.

그래야만 내 고통과 상처에 이유가 있었다고 스스로를 위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싸움은 늘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다. ‘사소’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것은 시간이 지나 그 일을 되새겨 보아도 도무지 무엇 때문에 남편이 화를 내며 욕을 하고, 나를 때렸는지 그 까닭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남편은 한번 화가 나면, 소위 ‘눈빛이 바뀌었다. 그리고 손에 잡히는 물건을 나에게 집어던지면서 끔찍한 ’ 폭력‘이 시작된다.


그 폭력은 ’ 억울‘한 것이고 ’ 정당‘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4년제 대학까지 나온 나름의 ’ 지성인‘이다. 대학에서는 장학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고, 사회생활의 첫 발도 ’ 큰 기업‘에 취업할 만큼 나름 ’ 내 할 말은 하고 사는 당당한 여자‘였다. 나의 학력과 그때의 사회적 위치를 운운하는 것은 폭력을 당하는 여자들이 못나서 그런 것이 아니라고 강하게 말하고 싶어서이다.

하지만, 남편의 폭력은 나를 ’ 삶‘과 ’ 죽음‘ 사이를 오가게 만들었으니, 나는 당시에 ’나‘를 구하기 위해 ’나‘를 ’ 무력화‘ 시켜야만 했다.     


남편은 나의 배를 발로 차고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쓰러지면 발로 밟았고, 도망치려고 하면 방에 가뒀다. 그리고 내가 집을 나가고, ’ 이혼‘을 하자고 할까 봐 무서웠던지(지금 생각해 보면 그렇다.) 나를 강하게 ’ 협박‘했다. “네가 집을 나가면 나는 너를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겠다”라고...

그리고는 그의 두꺼운 상의 안에 ’ 부엌칼‘을 숨기고서 방앞을 지켰다.


자칫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며, ’ 저 칼이 내 뱃속으로 들어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 하는 상상을 그때 나는 해야만 했다.     


남편은 화가 한풀 꺾이면, 날이 샐 때까지 ’ 자기 합리화‘를 위한 이야기를 나에게 듣도록 강요했다. 말을 하다가도 나의 반응이 못마땅하면, 또 나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렸다. 

그럴 때면 나는 너무나 지쳐서 잠을 자고 싶어 졌다. 졸려서 눈을 감으면 다시 얼굴을 때리는 주먹이 날아왔고, 나는 잠이 와도 잠을 잘 수 없는 그 ’끔찍한 밤‘을 여러 해 보냈다.     


그런 폭력은 나를 ’ 무력화‘시켰고, 남편의 장황한 설명은 나를 ’ 피해자‘가 아닌 ’ 가해자‘로 세뇌시켰다. 본인은 ’너무나 이러고 싶지 않았지만 너 때문에 이럴 수밖에 없었다 ‘고 말하며 자기를 ’ 합리화‘ 시키고 나를 ’ 설득‘했다.      

마지막은 늘 너무나 졸리고 힘든 내가 무릎 꿇고 빌면서 끝이 났다. “잘못했다”라고.... “그만 자고 싶다”라고...

그때는 그저 잠을 자고 싶었다. ’ 몸의 상처‘도, ’ 마음의 아픔‘도, ’ 머릿속의 혼란도... 너무도 지쳐 쓰러지듯 잠을 자고 싶었다.     


그리고 그 폭력의 현장에는 늘 갓난아기 때부터 초등학교 때까지 자라 온 큰 아이가 있었다.     


큰 아이는 태어나서 밤낮이 바뀌고, 툭하면 울기를 반복하는 꽤나 예민한 아이였다. 한번 잠을 재우려면 (잠투정이 너무 심해서) 아이를 엎고 온 동네를 몇 바퀴씩 돌아야만 겨우 잠이 들었고, 이런 잠투정은 초등학교 고학년까지도 계속될 만큼 아이는 쉽게 잠들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는 그 참혹한 상황을 혹여나 ’ 아이‘가 보았을까 걱정하면서 늘 아이를 살폈지만, 매번 아이는 어느새 깊게 잠들어 있었다. 하지만 그로부터 오래 지난 지금 아이가 어릴 때를 기억 못 하는 것은 그때 잠을 자서인지, 잠을 자는 ’척‘을 한 것인지 알 수가 없다.     


그 아이도 나의 ’ 기질‘을 닮은 것일까? 아니면  아이의 무의식이 그 상황을 견뎌 내기 힘들어 스스로 잠을 재운 것일까??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아이가 잠을 잘 때 참 예쁘고 평온하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나는 지금도 큰 아이가(19세다.) 잠을 자는 모습을 보면 가슴이 저린다.     

오늘도 그때처럼, 무엇을 잊기 위해 자는 밤이 아니길 바라며...

“지금은 괜찮다”라고... “다 지나갔다”라고... 나에게도 말을 건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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