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친언니는 만성 우울증 환자이다. 두 살 터울로 어릴 적부터 박고 싸우며 같이 자라나던 어느 날 각자의 사춘기가 오고는 서로 멀어졌다. 그리고 알았다. 서로 정말 다르다는 것을....
언니와 나는 친자매 간이라고는 연상되지 않을 만큼 생김새도 성격도 다 다르다.
다름이 틀린 것이 아님을 알면서도, 나는 늘 언니가 못마땅하다. 특히 삶의 태도에서 그렇다.
자신의 수입규모를 생각지 않는 지출은 특히 나를 실망시키고 화가 나게 만든다. 매번 자신의 카드값에 한계가 오면, ‘다정하지 않은 나’에게 까지 손을 벌린다.
틱틱대며 바른말 쏘아대는 동생에게 손 벌리는 마음이 오죽하겠냐 싶어, 처음에는 넣어주고 다음에는 빌려도 주고, 그다음에는 반만도 줘 보았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하겠지만...... 아직도 몇 년째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이다.
그래서 나에게 언니는 없다는 생각으로 거절을 했다.
참 모질게도 거절한 터이다.
그러자 엄마에게서 전화가 온다. “네 언니 전화요금 백만 원, 네가 이번에는 좀 넣어줘라. 엄마 보고 빌려줘, 아파서 그런 거잖아...”
내가 빌려준 돈을 받지 못할까 봐 걱정이 돼서 거절한 줄 안다. 두 자매의 엄마는....
내가 엄마라면, 혼을 내던가 거지가 되어 나앉게 만들어서라도 제버릇 고치게 만들 것 같은데, 엄마는 늘 언니가 아파서 그런 거라고 감싸주고, 해결해주기 바쁘다.
한 인간의 책임감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
자식? 가족? 친구? 지인??......... 지역사회 전체??? 인류????
자기가 낳은 자식을 책임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나도 나의 아이들에게 나만의 최선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더욱이 아픈 자식은 성인이 되어도 물가에 내놓은 애 같다.
나 또한 아픈 자식 하나 끼고 있어, 그 아이에 대한 책임의 선이 모호하다.
그렇다면 나의 엄마도 그 책임을 지고 있느라 그런 것일까?
아니면 엄마의 책임을 나한테 미루는 것일까?
그것도 아니면 언니는 자신의 책임을 가족에게 미루는 것이 되나?
책임의 한계에서 우왕좌왕하다 생각해낸 것은 결국, 자기 자신에 대한 책임감이다.
나는 나에 대한 책임을 다하고 살고 있을까??? 나의 책임의 한계는 어디까지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