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와 비장애 형제를 둔 엄마 입니다. 3화
무조건적인 사랑은 아름답다.
사랑에 조건은 없다. 그러나 나는, 사랑도 받으면 돌려줘야 할 것만 같은 부채감이 느껴진다.
고등학교 진학 무렵 공부를 잘해서 엄마의 기대를 듬뿍 받았던 언니는 갑자기 '실업계'로 진학하겠다고 하였다.
집안의 사정을 고려해 돈을 일찍 벌어보겠다는 이야기는 아니였고, 그저 자신의 눈이 안좋아 학업 스트레스를 더 이상 받기 싫으니 그냥 실업계를 가서 편하게 졸업하고 싶다는 것이였다.
엄마는 만류하지 않았다. 그저 언니의 그런선택이 가엽기만 한 모양이였는지, "그래 힘들면 공부안해도 된다"고 하면서 언니의 진로선택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이 과정이 훗날 언니에게 원망으로 돌아올줄은 그때 아무도 상상하지 못하였다.
열등감이 심했던 언니는 지금도 툭하면, '그때 실업계를 가서'...'그때 전문대를 가서'....
지금 자신이 이렇게 밖에 직업을 못얻고, 이렇게 밖에 결혼을 못하고, 이렇게 밖에 못산다고 말하면서 늘 엄마를 원망했다.
자신이 선택한 인생에 왜 엄마를 원망하는지 나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때 마다 엄마는 언니에게 미안해 했고 가여워 했다.
그러나 나는 인문계로 진학했다. 나의 목표는 '서울'이였다. 어서빨리 집을 떠나고 싶어서, 딱히 무슨 대학 무슨 과를 가고 싶다는 결론도 없이 막연히 "고투서울"을 외치면서 공부를 했다.
그러나 나의 성적은 역시나 서울을 갈 실력이 못되었다. 대학입학을 고려하던 그때. 엄마는 취업이 잘 되는 간호학과를 밀어붙였지만, 나는 그저 엄마의 의견에 반대하고 싶어, 환경학과를 진학하게 되었다.
집과 대학과의 거리는 자석버스(1990년대는 일반버스보다 요금이 조금 더 비싼 좌석버스라는 것이 있었다.)를 타고서 한시간이 넘는 거리에 있었다. 나는 자취를 희망했지만 엄마는 나의 대학근처에 집을 구했다. 그저 나의 편의를 봐주는 엄마에게 고맙다기 보다 이제와서 왜 이러냐는 생각밖에 없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대학에서 공부를 시작하면서, 어떨결에 엄마의 '기대'라는 부담을 안게 되었다.
엄마는 나에게 기대하는 눈치였다. 아빠도 "우리 딸이 사년제(그때는 사년제 대학가는게 조금은 힘든시기였기도 하다.)다니는데"...하면서 자랑을 하셨다. 그때 마다 나는 내가 뭘 어떻게 잘해야 하는지 몰랐고, 부끄러웠고, 미안했고, 이러한 생각은 곧 무엇인가를 해 주고 떠냐야 할 것같은 부담감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따라 붙는다. "너는 사년제 대학에 엄마가 보내줬잖아...."
이 말은 이년제 나온 언니에 비해 너에게 투자를 많이 해 줬으니 이제 보답을 하라는 압박으로 다가왔다.
대학3학년 시절 교수님의 연구소에 소속되어 있다가 4학년 말, 교수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대학원을 진학하지 않았다. 취업을 해야만 했다. 그래야만 사년제대학에 보내준 엄마아빠의 기대를 충족시키고, 어서빨리 떠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대학졸업식에서는 다들 새로사온 정장을 입고 졸업사진을 찍었다. 나는 언니의 정장을 빌려 입고 가서 사진을 찍었는데, 내 친구는 '아빠가 여러벌 사준 것 중에 이것이 제일 마음에 들어서 입고 왔다'고 했고, 또 어떤 친구는 '오늘 입을 옷을 고르려 백화점을 몇군데나 들렸다'고 하였다.
먼 나라 다른 세계 이야기처럼 들렸다. 그래도 엄마 아빠에게 섭섭하지 않았다.
나는 무엇인가 받게 되면 무엇인가 꼭 더 해드려야 하는 그런 딸이니까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