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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Dec 10. 2021

"엄마, 이 집에서 도망가!"

'나는' 장애와 비장애 형제를 둔 엄마입니다. 2화



'딸은 엄마인생을 물려받는다' 는 말이 있다.

과거 나의 어린시절 엄마로부터의 편애도, 엄마의 가정폭력피해도 지금의 나와 닮아있다.


우리 집은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나처럼 나의 엄마도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었고, 그로 인한 본인의 기대치와 한과 스트레스의 발산지는 언니와 나였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아빠에 대한 두려움과 원망 보다, 그것을 오롯이 당하고 지내며, 언니와 나에게 '인생의 의미' 그 전부를 건 엄마에게 오히려 불안함과 원망의 마음이 깊고 컸었다.      


지금도 생각나는 '엄마 혼자 중얼거리는 잔소리'는 너무나 고역이었다. 엄마가 혼자서 잔소리를 시작할 때쯤이면 나는 슬슬 불안감이 차오르다, 혼자 내방을 치우고 정리하고 또 정리를했다.     


엄마가 미우면서도 엄마가 어디론가 가버릴까 봐 무척이나 두려웠었다.     


하루는 나와 언니가 다니는 초등학교 앞에 엄마가 큰 가방 두어개를 메고는 찾아왔다.


그리고 학교앞 떡볶이 집으로 가  언니와 나를 앉혀놓고는, "너거 아빠 때문에 더 이상 못살겠다"면서, 아빠한테는 이야기하지 말라며, 엄마가 가는 친구네의 주소와 전화번호를 적은,  한쪽 귀퉁이를 뚝 잘라낸 작고 세모진 종이를 내 손에 쥐어주었다.     


깊은 밤 깊이 잠에 든 언니 옆에서, 나는 밤새 울고 또 울었는데,

나의 울음소리를 엄마가 들었는지, 다음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오자 엄마는 부엌에서 밥을 짓고 있었다.

그런데 '안도의 한숨'도 '설움의 눈물'도 나오지 않았다. 그저 엄마가 다시 집에 왔고, 이제 다시 그 잔소리를 들어야 하겠구나 하는 기분이 들었는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가 돌아오길 바랬으면서도 엄마가 영영 이 집을 나갔으면 하는 바램도 있었던 것 같다.     

1980년대는 일주일에 한 번 동네 목욕탕에 가서 꼭 '때목욕'을 하는 것이 당연하고 필수였던 시절이었다. 언제부턴가..... (아마도 내가 중학교 1학년쯤으로 기억하는 그때) 나는 더 이상 엄마와 언니와 함께 목욕탕을 가질 않았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혼자 목욕탕을 갔고, 그때부터 속옷 빨래도 스스로 하기 시작했다.


나는 지극히 관심받고 싶었음에도, 철저히 혼자 살수 있는 존재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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