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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영 Dec 11. 2021

'결혼'으로 엄마에게서 도망쳤다.

'나는' 장애와 비장애 형제를 둔 엄마 입니다. 4화


부모는 늘 희생하며 무조건적인 사랑만 주는 사람인 줄 알았다.

그때는 몰랐다.

이미 낳아준 것으로, 다 해 준 것이라는 것을....     


졸업을 하고 '건설회사 연구소'에 취업을 하였다. 

엄마아빠가 보내준 사년제는 입학금만 지원받았을 뿐, 장학금과 아르바이트로 학비며 용돈을 알아서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나머지는 학자금대출을 받았다. 그로인해 나는 이미 상당한 빚을 갖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래도 엄마아빠는 "딸을 '사년제대학'까지 졸업 시켜놨으니, 이제 편하게 살겠다"는 말을 종종하였다.

도망가고 싶은생각과 함께, 그 생각이 도리어 죄책감으로 되돌아 오는 반복의 연속선상에 줄다리기를 하였다.     

취업 후, 친구의 소개로 전남편을 만나게 되었다. 나에게 조건없이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이 처음인지라 단숨에 그 사람과의 결혼을 결심해 버렸다.     

나의 결혼은 기대와 부담감으로 부터의 도피처 이기도 했다. 언니를 제치고, 졸업하고 취업하자마자 하게 된 결혼을 앞두고 엄마는 "어떤 집은 딸래미가 시집갈 때 집에 빚도 갚아주고 가던데.....

공부 다 시켜 놓으니깐 바로 결혼해 버려 간다". 라고 말하며

나에게 노골적으로 서운함을 드러냈다.  


상견례날, 사년제 나온 딸을 바로 시집보내는게 못내 아까웠던 엄마는, 예단이며 혼수를 거의 해 보내지 않겠다는 말을 하였다. 당연히 상대방에서도 어처구니가 없었던지, "해 올 것은 해 와야 하지 않겠냐"고 반격하며, 이내 말싸움이 벌어졌고, 엄마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가버렸다.     

사실 그때 내 뱃속에는 후니가 있었음으로 나는 어쩌질 못하고 울기만 울었을 뿐이였다.


집에 온 나에게 엄마는 '요즘세상에 그런 것 없다'며, 아이를 지울 것을 강요하였고, 나는 그런 엄마를 피해, 시댁에 의존해 결혼을 감행했다. 엄마는 그런 나를 ‘배신한 딸년’이라고 부르며 비난하였음에도, 결혼식에는 참석해 주었다.     


결혼식장에서 엄마아빠를 보기가 어려웠다.      


'결혼해서 잘해드려 갚아으면 되지....'.

하고 생각하면서 울음을 참고 또 참았다.     


그때는 몰랐다. '결혼'은 '독립'이 아니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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