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한 일은 '자책'
나 보로는 오늘도 전쟁에 나가는 날이다. 아침부터 눈과 비가 썩여 내리더니 지금은 어둡게 그치고 있다. 어두운 것을 보니, 다시 비라도 내릴 것 같아 어떤 갑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고민이 되었다. 갑옷위에 '방수포'를 덧댈까? 아니야 방수포를 덧대면 땀이 나서 몸이 찍찍해 질거야. 아침부터 분열된 생각은 집앞을 나설 때 까지 계속되었다.
갈등이 생길때는 으레 선예에게 물어보고 답을 얻는다. 내가 내린 결론의 책임은 '자책'이지만, 대중의 뜻을 따를때는 '운명'이기 때문이다.
선예도 나와 같은 갑옷을 입는 친구였지만, 나보다 우열한 것 같다. 선예의 얼굴은 작고 귀여웠고 손은 가늘었다. 가끔 웃을때는 주름이 마구 지지만, 입가의 미소가 활짝 핀 꽃처럼 화사하다. 선예의 갑옷은 '폴리에스테르'로 만든 가볍고 실용적인 것이였다. 색깔도 어두운 쥐색으로 꽤나 '티타늄'의 그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나는 선예가 부럽기도 하지만, 내가 가진 얼굴크기와 손가락의 두께만 빼면, 내 경험과 사고가 그녀 보다 낫다는 근거없는 생각에 빠진곤 한다.
오늘의 전쟁은 그들이 가진 '관리기'를 쟁취하는 날이다. 그것을 가지면 우리의 주름도 펴지고 까만 피부도 하얗 될것 같다. 무엇보다 더러운 여드름과 거뭇한 검버섯도 일초에 지울수 있는 대단한 것이다.
조금 가벼운 것은 '그곳'을 침탈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는 우진의 연설 덕분이다. 그곳의 경비는 그저 cctv같은 것만 갖춰져 누군가 300미터 뒤쯤에서 모니터링 하는 정도 일 뿐이라고 한다.
300미터에서 우리를 감지하고, 군사무기를 챙겨 첨단장비로 쪼차 올때즘 우리는 그것을 챙기고 냅다 지하기지로 통하는 숨겨진 통로로 사라지기만 하면 된다.
나도 그 기구를 한번 사용해 보고 싶지만, 그것은 우리 기지의 책임자인 우진의 몫이다. '공명정대'하다고 정평이 났지만 실제로 그렇다할 것을 경험해 보진 못한 우진이 우리가 쟁취한 물건을 먼저 시험해 보고 우리에게 그 기술을 다시 '복'재하도록 한다.
복재를 그대로 했는지도 의심이 가끔 든다. 왜냐하면 이제껏 복제한 것들의 성능이 말 그대로 였다면 '우리는 벌써 잘생긴 그들과 함께 살 수 있을 정도의 외모를 갖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것이다.
까맣게 깡말라 목에 굵은 핏줄이 보일 듯이 큰소리를 내 뱉는 우진을 따르는 자들이 많다. 그리고 나의 우진에 대한 불신을 선예말고는 말할 순 없었다. 선예에게 우진의 이야기 할 때면, "맞지? 나도 이상했어" 하며 크게 맞장구 치면서 나와 함께 화를 내지만, 아마도 선예도 나 말고는 그런 이야기를 따로 누군가에게 하지 않은 눈치다.
그래도 오늘의 전쟁에서 성과를 올린다면 머지 않아, 내 큰 얼굴 곳곳에 난 여드름에 도움이 될 만한 관리기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것을 살려면 다시 '신생아용 갑옷' 몇 개를 더 만들어야 하는 수고가 따르지만 말이다.
때로는 전쟁의 두려움보다, 또다시 갑옷을 만들어야 한다는 무기력함이 나를 더 지겹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