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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시작

by 이인영
이인영, <거울의 무덤>, 종이에 수채, 22x23cm, 2021.9.




출근을 하다가 거리의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고 흠칫 놀란 적이 있다. 표정이 너무 어두워서. 내가 이런 얼굴을 하고 있었구나, 내가 이렇게 침울한 분위기의 사람이었구나, 하는 자각과 함께 갑자기 마음 한가운데가 쩍 갈라지는 듯한 섬뜩한 기분이 들었다. 그즈음 비슷한 일이 또 있었다. 한 동료가 내가 일하는 모습을 핸드폰으로 찍어 보여준 것인데, 무방비 상태에서 사진을 찍힌 당혹스러움보다 나를 더 경직시킨 건 커다란 구름의 그림자 속에 갇혀있는 듯한 어두운 내 모습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그 무렵이 나의 중년이 시작된 시점이었던 것 같다. 환영 속 자신과 실제 자신 사이의 괴리를 인식하기 시작한 때, 자신에 대한 온갖 몽상과 합리화, 젊음의 열정을 원료 삼아 만들어진 가짜 거울이 이제 그 수명을 다하고 부서지기 시작한 때, 그러면서 그 뒤에 숨겨져 있던 진짜 거울이 서서히 눈앞에 드러나게 된 때. 자신의 낯선 모습에 뒤숭숭해져 있던 마음은 그즈음 일어난 여러 자잘한 사건들로 인해 더 크게 흔들렸고, 어느 순간 가짜 거울을 의식 속에서 완전히 치우게 만들었다.


새 거울 앞에는 그때까지의 삶에 대한 총체적인 성적표가 놓여 있었다. 30대 중반의 나는 학창 시절 내가 꿈꿔왔던 세계에 전혀 가까워지지 못한 상태였다. 대학원 졸업 후 여러 일터를 떠돌며 틈틈이 그림을 그려오는 동안 ‘쉬지 않고 뭔가를 하고 있다’는 막연한 만족감으로 살았지, 그림 작가가 되기 위한 현실적인 방법을 강구한 적은 없었다. 자기 색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작업에 몰두하지도 않았다.

그림 작가라는 꿈을 그저 '꿈'이라는 의자에 앉혀놓고, 지나가다 가끔씩 '그래, 저게 내 꿈이지'라고 확인하며, 아직 그것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는 사실에 안심만 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몽상에 빠지지 않는 사람, 눈앞의 현실에만 충실한 이들을 속으로 은근히 무시하곤 했는데, 그런 나야말로 가장 무시당할 만한 인간이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몰랐다.

몽상에서 깨어난 이상 그 상태 그대로 있을 수는 없었다. 믿어왔던 것과 너무도 다른 내 실제 모습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기존의 삶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미 본 자신의 모습을 못 본 척해야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런 자기기만의 삶은 5년 후, 10년 후 다시 진실의 거울을 마주하게 됐을 때 완전히 붕괴돼 버릴 것이 뻔했다.


나는 일단 그곳을 벗어나자고 결심했다(그곳은 4년 가까이 다닌 나의 세 번째인가 네 번째 직장이었다). 그건 작가에 대한 로망 때문이 아니었다. 도망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나는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표정이나 말투가 들쑥날쑥했고, 그러다 보니 자신에 대한 혐오감과 주변의 눈치를 보는 성향이 심해진 상태였다. 이런 심리 상태로 계속 다니다가는 평생의 큰 오점으로 남을 추한 꼴을 보일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이미 못난 꼴을 여러 번 보인 상태였다) 나를 퇴사로 다급하게 몰아붙였다. 내가 원하는 삶이 정확히 어떤 것인지, 작가가 된다 하더라도 어떤 주제와 형식의 그림을 그리고 싶은 건지, 순수미술을 하고 싶은 건지 상업 미술을 하고 싶은 건지, 자유를 원하는 건지 소속을 원하는 건지... 직장을 나오기 전에 고민해야 할 사안들을 나는 일단 나가서 생각해 보자고 마음먹었다.







현재 나는 아주 사치스러운 방황을 하고 있는 중이다. 기한도 없이 느긋하게 그림을 그리고, 뚜렷한 목표도 없이 대학원을 다니고 있다. 햇볕 드는 따스한 카페 창가에 앉아 이 방향, 저 방향으로 오고 가는 사람들을 멍하니 구경하며 아이디어를 끄적이는 것이 요즘 나의 주된 일정이다. 몸과 머리의 활동량만 놓고 보면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이 한가롭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마음은 전혀 그렇지가 않다. 직장생활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있던 평화로운 마을을 지켜준 마지막 방파제였던 듯, 그것이 사라진 지금은 마구잡이로 밀려드는 감정과 생각의 파도에 이리저리 휩쓸려 떠다니고 있다.


사실 이런 상황은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나는 직장생활이 내가 가진 모든 혼란의 진원지라고 생각했었다. 직장만 관두면, 그림 그릴 시간만 충분히 주어지면 내면의 진동이 금세 진정되고 혼란이 정리되어 그 사이로 하나의 길이 또렷하게 드러날 줄 알았다. 그런데 일과 함께 길도 사라져 버렸다.


이런 상태이다 보니 대학원 과정에 품었던 건전한 초심도 급격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 다소 늦은 나이에 다시 학교에 들어간 건 완전한 자유에 대한 두려움이나 앞으로 프리랜서로서 활동하는 데 여러 방면으로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현실적인 고려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이론에 대한 순수한 배움의 갈증이 강력하게 작용해서 선택한 길이었다. 나는 고인 물처럼 썩어가고 메말라 가던 나의 영혼에 새로운 지식과 영감의 물결을 불어넣어 주고 싶었다.


그런데 심리적인 문제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심각해지니, 책 속에 있는 것들보다 내 속에 있는 이상한 것들이 더 시급하게 연구해야 할 대상으로 느껴지는 것이다. 수업과 책 속에서 나는 늘 내 안에 있는 것들의 정체를 밝혀줄 힌트를 찾고 있는데, 문제는 이 탐구의 성질이 너무도 산만하고 충동적이고 단발적이라, 학위 과정이 요구하는 일정한 방향성의 끈기 있는 탐구적 자세와는 맞지 않는 것이다. 한 마디로 지금의 내겐 한눈팔지 않고 한 가지 주제에 깊이 천착할 만한 끈기와 차분함이 부족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최근 내가 맞닥뜨린 아주 심각한 문제가 있다. 그건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나는 나의 사교성이 이 정도로 심각하게 무너진 상태인지 몰랐다. 학창 시절에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나름은 사교적이고 밝은 성격이었고, 새로운 얼굴의 등장을 두려워하기보다는 반기는 쪽이었기 때문에, 나는 직장을 관둘 무렵 흉하게 손상된 나의 대인관계 능력이 새로운 환경 속으로 가면 다시 원상 복구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나는 입력과 송출이 제대로 안 되는 고장 난 로봇 같은 신세이다.


사람을 만나면 당황하고 긴장해서 횡설수설하는데(무언가를 변명하듯이), 내가 봐도 그 모습이 정말 꼴불견이다. 새로운 인연에 대한 반가움에 흥분했다가도, 혹시 상대의 말속에 어떤 공격적인 의도가 담겨 있나 의심하게 되고, 나의 언행에 예의에 어긋난 점이 있었나 하는 걱정에 불안해하면서도, 누군가의 별뜻 없는 말에 대해서는 화가 나고(아마도 그 사람의 인상이 과거 누군가를 연상시키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사람과 대면하고 나면 안 그래도 출렁이던 내면의 파도가 훨씬 더 격렬해지는 것이다. 이 파도를 잠재우기 위해 내가 얼마나 긴 시간을 속 끓이고 애태우는지 아무도 모를 것이다.


결론적으로 지금 나의 문제는 환경이 바뀐다고 바로 회복 수순을 밟을 정도로 단순하지 않은 것이다. 지난 십 년, 아니 전생애 동안 나를 움직여 온 어떤 종류의 불꽃이 서서히 꺼져가고 있음을 느낀다. 그와 동시에 내 안에서 오랫동안 곪아오던 병들이 이제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아픈 통증을 주며 눈앞에 드러나고 있다.


지금은 그저 이 병들의 정체를 알고 싶은 마음뿐이다. 그동안 이 병들을 키워온 것들, 인생 전반기의 나의 행로를 조종해 온 온갖 감정과 취향, 가치관의 근원을, 그리고 지금 내 안에서 쉼 없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 것들의 정체를 알고 싶은 탐구심이 다른 모든 욕망을 가린다. 나는 이것들을 대강 처리해서 덮고 싶지 않다. 이것들에게 온당한 이름과 형상을 부여해 주고 싶다. 그래야만 남은 생에 본능이나 기분이라는 이름으로 이들에게 함부로 휘둘리는 일을 피할 수 있을 것 같다.


과거가 내 안에 남긴 온갖 무형적 유산에 그림을 입히는 것. 어쩌면 이 작업이 삶이 내게 준 개인 과제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 과제를 제출해야만 중년의 삶이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남은 30대 후반의 삶을 몽땅 이 작업에 던져보려고 한다. 부디 이 작업 뒤로 하나의 길이 펼쳐지기를, 그리고 그 길 위를 내가 흔들림 없이 올곧게 걸어갈 수 있기를 바라면서.

(2021. 9.)



<카페의 시간>_종이에 수채, 14.5X22cm_2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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