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 근처에 자주 가던 단골 카페 몇 곳이 가끔 생각난다. 문을 열고 그 안에 들어설 때면 커다란 마법의 투명 망토가 내 뒤로 스르륵 드리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자리에 앉아 커피 한 모금을 마시고 나면 숨 가쁘게 돌아가던 술래잡기 놀이에서 드디어 빠져나온 듯한 해방감과 안도감이 몸 안에 서서히 퍼졌다.
그 한 시간 남짓의 짧은 눈속임의 시간 속에서 나는 이런 유희활동을 즐겼다. 망토 밖 치열한 생존 세계를 하나의 풍경처럼 멍하니 관망하는 것. 풍경과 상상이 뒤섞이며 일으키는 감성의 물결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 둥둥 떠다니다가 우연히 손안에 잡히는 어떤 이미지 조각을 종이에 옮기는 것. 이런 유희 활동에서 얻는 행복감은 그날의 모든 피곤과 우울함을 상쇄하고도 남았다. 이런 시간들이 당시의 나의 무채색 일상 속에서 가끔가다 반짝거리던 채색된 부분이었다.
그런데 이제 와 돌아보니, 그 공간들은 어쩌면 술래가 설치한 정교한 덫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덫 안에 놓인 달콤한 미끼. 덫 안으로 상대를 더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술래가 마련한 감미로운 엔터테인먼트. 왜냐하면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그 오렌지빛 작은 아지트들이 점점 좋아져서, 그곳을 둘러싼 드넓은 잿빛 현실을 더더욱 벗어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속해있던 치열한 일상 세계가 유리창 한 겹을 앞에 두고 바라보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매력적인 세계에 있기 위해서는 이 정도 고통과 번민은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자신의 본래 기능을 잊은 채 사람 구경만 하며 낡아가던 그 안의 잡동사니들처럼, 나 역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며 점점 현실 감각이 없는 인형이 되어갔다. 은신처는 잠시 숨는 곳이지 진정한 안식처가 아닌데 나는 그곳의 가벼운 즐거움과 편안함에 중독된 나머지 자신의 원래 꿈을 차츰 잊어버렸다.
그런데 요즘도 문득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편안하지만 어딘가 멍한 느낌, 찝찝한 안도감, 자유로움 속에서 느껴지는 갑갑함. 혹시 지금의 나는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만든 이 고요하고 무해한, 몽롱한 세계 속에 너무 익숙해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 잠시 숨는 곳을 진짜 안식처로 착각하고 있는 상태.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유리창은 혹시 덫 안의 미끼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덫에 걸려 있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