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인영
이인영, <숨을 곳>, 종이에 수채, 21x30cm, 2022.5.



직장 근처에 자주 가던 단골 카페 몇 곳이 가끔 생각난다. 그곳에 들어설 때면 커다란 투명 커튼이 내 뒤로 스르륵 드리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현실의 공기와 잡음은 그 한 겹의 커튼을 경계로 멀어졌다. 숨 가쁘게 돌아가던 술래잡기 놀이판에서 겨우 벗어난 느낌, 술래의 감시망에서 감쪽같이 몸을 숨긴 듯한 느낌이 내게 은근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그 눈속임의 공간 속에서 나는 지금 내 삶의 핵심이 된 활동의 묘미를 터득했다. 바로 커튼 밖 치열한 생존 세계를 하나의 풍경처럼 바라보는 것, 바라보는 중에 어디선가 흘러들어온 공상의 물결을 타고 이리저리 떠밀려 다니는 것, 그러다가 우연히 마음의 망에 걸려든 이미지 조각들을 종이 위에 옮기는 것. 이런 활동에서 얻는 행복감은 그날의 누적된 피로와 우울을 어느 정도 상쇄했다. 이런 시간들이 당시의 나의 무채색 일상 속에서 가끔 반짝이던 채색된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제 와 돌아보니, 그 공간들은 어쩌면 술래가 설치한 정교한 덫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 덫 안에 놓인 달콤한 미끼. 덫 안으로 상대를 더 깊숙이 끌어들이기 위해 술래가 마련한 감미로운 엔터테인먼트. 왜냐하면 나는 그 오렌지빛 작은 아지트들이 점점 좋아져서, 그곳을 둘러싼 드넓은 잿빛 현실을 더더욱 벗어날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이다.


방금 전까지 속해있던 머리 아픈 일상 세계가 유리창 한 겹을 앞에 두고 바라보면 그렇게 매력적으로 보일 수가 없었다. 그런 매력적인 세계에 있기 위해서는 이 정도 고통과 번민은 감수해야지, 하는 생각이 자연스레 들었다. 자신의 본래 기능을 잊은 채 사람 구경만 하며 낡아가던 카페 안의 잡동사니들처럼, 나 역시 창밖을 바라보며 점점 현실 감각을 잃은 인형이 되어갔다. 은신처는 잠시 숨는 곳이지 진정한 안식처가 아닌데 나는 그곳의 가벼운 즐거움과 편안함에 중독된 나머지 자신이 원래 가려고 했던 방향을 차츰 잊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요즘도 문득 그때와 비슷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편안하지만 어딘가 멍한 느낌, 찝찝한 안도감, 자유로움 속에서 느껴지는 갑갑함. 혹시 지금의 나는 그때와 똑같은 상황에 처해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만든 이 고요하고 무해한, 몽롱한 세계 속에 너무 익숙해져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태. 잠시 숨는 곳을 진짜 안식처로 착각하고 있는 상태. 내가 마주하고 있는 '그림'이라는 유리창은 혹시 덫 안의 미끼가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떤 덫에 걸려 있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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