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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영 Oct 15. 2022

우울

이인영, <무거운 마음>, 종이에 수채, 21x30cm, 2022.10.



유난히 발걸음이 무거웠던 어느 퇴근길.

아, 우울하다,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묘하게 이 기분이 조금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건 내가 우울한 기분으로 길을 걷고 있는 자신을 그림 속 풍경처럼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풍경이 그림으로 그릴만한 소재일까, 이 기분을 어떻게 효과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라고 고민하면서 자신의 우울을 감상하고 있었다. 그림을 완성할 때까지는 이 기분이 유지돼야 하는데,라는 이상한 걱정하고 있었다.

나는 그때 그림을 그리는 일이 내포하고 있는 함정을 어렴풋이 알게 되었. 자신의 감정에 대한 애착이 지나쳐 그것을 액자 속에 박제해 놓고는, 그 액자 속 감정에 (이미 변한) 자신의 감정을 다시 끼워 맞추게 되는, 그런 가식적인 감정으로 그림을 그리게 되는 함정.

(2022.10)






내가 자꾸 자신의 우울함을 감상하는 건 그럴만한 심적 여유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것이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자신과 거리를 두어 그 감정을 조금이라도 무덤덤하게 혹은 즐겁게 바라보고 싶은 것이다. 그 행위를 연극적이라고, 지나친 자아도취라고 무조건  폄하하거나 억제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2022.10.)






나는 한때 '우울'이라는 감정 때문에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보다 훨씬 외향적이었던 시절에도 나는 때때로 이유 없이 우울한 기분에 사로잡혔고, 그런 가라앉은 기분 속에서 깊은 안정감을 느꼈다. 그런 때는 이 세상에 오로지 그림과 나, 단둘만 존재하는 했다. 가끔은 이런 쓸데없는 걱정도 했다. 언젠가 내 삶이 너무 즐거워져서 이 우울한 기분이 사라져 버리면 그림을 그리고 싶은 마음도 함께 사라져 버리는 게 아닐까, 하는.


하지만 언젠가부터 시간이 있고 우울한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그림을 그리고 싶지 않은 날들이 점점 잦아지면서 깨달았다. 그림이 그려질 정도의 우울은 '우울'이 아니라는 것을. 그림을 그리고 싶게 만드는 '우울'은 본질적으로 열정과 같은 감정이라는 것을. 그림조차 그릴 수 없는 어떤 무거운 감정이 '우울'이었다. 얇은 세필 붓 하나 들 의지조차 꺼버리는 무기력한 상태가 '우울'이었다.

 

어쩌면 인간이 느끼는 모든 감정은-그것이 아름다운 감정이든 추한 감정이든- 어떤 행위를 하고 싶게 만드는 감정인 '열정'과 어떠한 행위도 하고 싶지 않게 만드는 감정인 '우울'이라는 감정, 이 두 개의 커다란 상위 감정 속에 포함되는 하위 감정들이 아닐까. 나를 지금까지 그림에서 손을 떼지 못하게 만든 '우울'아니라 '열정'이었다. 우울의 강물 속에 완전히 가라앉으려 열정이 그리기라는 행위로써 나를 끌어올려준 것이다. 지금 내가 그림을 그리는 삶을 지속하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마음에서 살려내야 하는 것도 열정이지 결코 우울이 아니다.

(2021)






동네 카페에 나와 있다. 아침부터 계속 비가 내려서 낮인데도 창밖 풍경이 온통 잿빛이다.

맞은편에 앉아 있는 두 여인. 40대 중후반쯤으로 보인다. 얼핏 들리는 말.

"너무 우울해요, 일도 너무 힘들고... 집에 가도... 정말 혼자만의 시간이 좀 있었으면 좋겠어요..."

하다가 벅차오르는 듯 말을 잇지 못한다. 울음소리가 카페의 적막을 뚫고 나지막이 울려 퍼진다.

"그렇죠. 회사 일이라는 게 참 힘들죠." 하면서 다른 여인이 어깨를 토닥인다.

갑자기 나의 우울은 좀 엄살이라는 생각이 든다.

(2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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