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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인영 Sep 26. 2022

비밀의 영역

이인영, <혼자만의 점심시간>, 종이에 수채, 21x30cm, 2022.4.



한 시간 남짓, 종종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온 덕분에 나는 '나'의 끝자락을 간신히 붙잡고 있을 수 있었다. 






한 개인을 이루는 수십 년의 시간 속에는 타인이 절대 들어설 수 없는 비밀의 영역이 곳곳에 형성되어 있다. 이 영역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차 하나의 공간으로 합쳐지고 하나의 독특한 분위기를 형성하여 그 사람의 특질, 즉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이 될 수 없게 하는 차이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타인이 지닌 비밀의 영역을 부정하는 것은 그의 고유성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돌이켜보면 직장 생활은 내 안의 소중한 비밀 장소를 지워버리려는, 그래서 나의 고유성을 완전히 분쇄하려는 어떤 파괴적인 힘과의 사투의 과정이었다. 그 힘은 내가 속했던 인간관계뿐 아니라 나의 위치, 내가 맡았던 업무, 사회적 관습 등 나를 둘러싼 모든 환경으로부터 발산되었다. 모든 외부적 여건들이 너는 어떠한 비밀의 영역도 지녀서는 안 되는 무성질, 무색채의 존재라고 끊임없이 주입하려는 것 같았다.

그런 부정적인 속삭임에 가끔은 상처받았고 그때마다 나름의 방식으로 소심한(헛발질에 가까운) 반격을 가했다. 하지만 '나'를 지켜내려는 노력을 하면 할수록, 그 메시지에 대응을 하면 할수록 오히려 그것은 메아리처럼 내 의식 속에서 울려 퍼져 나를 서서히 무너뜨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무너져가는 성벽을 계속 보수해가며 버텼던 그 힘겨운 공방전의 시간 속에서 나는 깨달았다. 한 개인을 존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의 내면 깊숙한 곳에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자기 자신조차 해석할 수 없는) 비밀의 세계가 존재함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그 베일에 싸인 영역을 부정하거나 폄하하는 것, 그래서 그 사람의 본질을 함부로 단정 짓는 것은 가장 심한 모욕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개인이 개인에게, 사회가 개인에게, 자연이 개인에게 가하는 온갖 힘의 궁극적인 목표는 결국 개개인이 지닌 비밀의 영역을 해체하는 것일지 모른다. 미스터리로 가득한 이 신비의 세계를 뻔하고 흔한 것으로 만드는 것, 그래서 개체로서의 고유한 의미를 무의미화시키는 것, 그것이 그 힘의 최종 목적인 것이다. 그렇다면 삶의 최종 성패는 외부로부터의 이 거대한 파괴 작업에 맞서 나의 세계를 굳건하게 잘 지켜내는 것, 다채로운 의미로 이 세계를 풍성하게 채워나가는 것, 이 작업에 달려있다고 볼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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