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헛된 꿈

by 이인영


이인영, <숨어 있는 시간>, 종이에 수채, 21x30cm, 2022.1



서랍 정리를 하다가 오래된 다이어리 노트 한 권을 발견했다. 정리를 멈추고 가볍게 한번 쭉 훑어보았다. 달력의 네모진 칸칸마다 빼곡히 적혀 있는 그날그날의 계획들, 그 옆에 꼼꼼히 기입해 놓은 o, x, △ 표시들. 달력 뒤편 메모지에는 제법 많은 양의 일기가 적혀 있었지만, 그것들은 날짜만 다를 뿐 사실상 같은 내용의 지겨운 반복이었다. 후회, 의문, 불평, 다짐... 어떻게든 사회생활을 잘해보려 애쓴 흔적들. 요동치고 들끓는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스스로를 채찍질한 흔적들. 하루 두세 시간의 그림 활동으로 내면의 뿌리 깊은 갈증이 다 해소되리라 믿었던 과욕과 무지의 기록들.


문득 내가 왜 그렇게까지 조직생활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사람 사이의 크고 작은 갈등과 압박으로부터 늘 도망치면서도, 갈등과 압박이 없으면 이번엔 호기심과 지루함 때문에 자리를 박차고 나가면서도 이상하게 나는 늘 조직에 들어가고 싶어 했다. 그 과정 속에서 단 한 번도 작가의 꿈을 놓은 적은 없으면서도, 매 선택의 순간마다 그 길을 2지망으로 밀어냈다. 그건 꼭 타인의 시선이나 현실적인 여건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 집착에는 더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다.


그건 십 대 시절 그림을 본격적으로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내 안에 서서히 깃든 어떤 환상 때문이었다. 어떤 창조적인 집단에 대한 환상. 각기 다른 개성과 재능을 지닌 이들이 하나의 숭고한 기치 아래 모여, 서로 북돋우고 공감하고 자극하면서, 자기 삶의 한 시기를 공동의 꿈에 온전히 바치는, 그런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열정적인 집단. 그 속의 일원이 되고 싶은 열망이 나를 수십 년 동안 이리저리 끌고 다녔다. 사실 '숭고한' 목표라는 것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그저 어렴풋하게 인간 삶의 아름다움의 증진에 기여하는 어떤 창의적이고 건설적인 일이라고만 여겼다.


삼십 대 후반에 이르러서야 나는 그 막연하고도 뜨거운 갈망을 채울 수 없는 이유가 바로 나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직접 다 체크해야만 직성이 풀리는 나의 강박적인 기질, 이름을 건 의미 있는 작업을 하고 싶지만 혹시라도 오류가 남을까 봐, 그것이 큰 사고로 번져 체면이 깎일까 봐 전전긍긍하는 소심함. 자기주장을 절대로 꺽지는 않으면서 또 타인과의 갈등은 극도로 두려워해, 추진력 있게 밀어붙이지도 타인과 잘 타협도 못하는 이상한 우유부단함. 이런 성격으로는 도저히 협업을 잘 해낼 수가 없었다. 큰 프로젝트에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저 한 장의 종이가 내가 감당할 수 있는 최대 규모의 세상이었다.


새벽의 스탠드 불빛 아래서,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서, 퇴근길의 카페 한구석에서, 어차피 못 이룰 꿈을 한 자 한 자 정성스럽게 적고 있던 그 시절의 내가 문득 떠올랐다. 그 헛된 꿈을 향한 설렘에서 내일을 살아갈 힘을 얻던 나의 모습이 너무 바보 같아서 안쓰럽게 느껴졌다. 그 안쓰러움은 곧 부끄러움으로, 증오로, 우울함으로 순식간에 가지를 뻗었고, 끝내는 자기혐오라는 검은 나무로 변했다. 그 나무가 더 자라나기 전에 나는 미련 없이 폐지 봉투에 노트를 담았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