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상황, 직장을 다녔을 때 내가 맡았던 업무를 상기시키는 어떤 상황 속에 처하게 되면 나도 모르게 예전의 그 잘 훈련된 사회적 태도가 나와버린다. 그 업무를 잘 수행하기 위해 필요로 했던 어떤 정신(일종의 서비스 정신, 영업 정신), 어떤 태도(상냥함, 꼼꼼함, 예의 바름 등)에 입각하여 그야말로 텅 빈, 진심이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 사교적인 언행으로 사람들을 대한다. 당연하게 돌아오는 어떤 평가, 그리고 밀려드는 자괴감, 분노...
습관의 무서움에 새삼 몸서리를 친다. 수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그때의 옷 조각들이 내 몸과 정신 여기저기에 붙어있음을 깨닫는다. 내가 잘 아는 그 지긋지긋한 감정들, 자기 파멸적인 감정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나는 그때처럼 황급히 종이 앞에 앉는다. 다시 고통스럽게 그 옷 조각들을 내게서 떼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