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복이 없어서
요즘 우리 부부가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둘째 아이의 학교 생활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담임선생님과의 관계이다. 4월 말, 아이는 두 번째 학기부터 학교에 다니기 시작했고, 둘째 학기 중간쯤 담임선생님과 ESOL 선생님, 교장선생님과 나 이렇게 아이의 학교 생활에 관련해 미팅을 가졌다. 그리고 두 번째 학기말, 세 번째 학기 중간까지 세 번의 미팅이 있었다.
처음에는 아이의 적응을 위해 현지 선생님들의 말을 따라 주려고 노력했다. 선생님들은 아이가 학교에서 하품을 하고 엎드려 있는 등 피곤해하며, 활동에 참여를 하지 않고 배우는 것을 꺼려한다고(reluctant) 했다. 모든 게 낯설고 영어로 의사소통이 힘들어 선생님이 뭘 하라고 하는 건지 조차 알기 어려운 아이였다. 학교 공부가 지루하고 어렵기만 했겠지. 처음에는 선생님들의 조언을 듣고 아이를 늦어도 8시에는 재워보려 했고, 영어실력을 늘리기 위해 집에서도 날마다 공부를 봐주고, 일주일에 두 번씩 공부방도 다니게 되었다. 두 번째 미팅 때 선생님들이 한 말이었다. 이렇게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면 자기들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고. 튜터를 붙여 공부해 보면 어떻겠냐고. 그 뒤로 몇 가지 사건을 경험하며 정말로 그들이 우리 아이를 위해 도움을 주고 있는 게 맞나 의심하게 되었다.
세 번째 텀이 시작한 첫 주 금요일, 아이는 같은 반 아이들이 악기를 가져와 연주 연습을 하고 노래를 연습한다고 뭘 하는 것 같으니 담임선생님한테 물어봐달라고 얘기했다. 금요일에 메일을 보내, 무슨 발표 같은 게 있다면 악기연주는 우리 아이도 할 수 있고 집에서도 연습시킬 수 있으니 꼭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주말이 지나 월요일에 학교를 다녀온 아이는 발표가 오늘이었다며, 강당에 같은 학년 아이들이 다 모였고 자기 반 애들이 발표를 했다고 했다. 자기만 아무것도 안 했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담임선생님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고 했다. 메일에는 답이 없었다. 화요일 학교가 끝날 때 아이를 데리러 갔다 담임선생님을 만났다. 나를 보자마자, 메일을 오늘 아침에서야 확인했다며, 발표 때 뭐 할지 손을 들어 정했는데, 우리 애가 손을 안 들었고(못 알아들었으니 당연히 그랬겠지) 영어로 말도 잘하지 않는 아이가 여러 아이들 앞에서 악기 연주도 못할 거라고 생각했단다. 나는 화를 참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우리 애가 영어만 못할 뿐이지 다른 것도 다 못하는 건 아니니 다음에 이런 일이 있다면 꼭 미리 알려달라고 했다.
이 일이 있은 후, 선생님의 메일이 잦아졌다. 우리 애가 오늘 머리를 안 묶고 왔다(어쩌다 한 번이었다). 자를 가져오라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안 가져온다(자는 가방 안에 있었다). 등등. 그리고 아이가 학교에서 공부시간에 다른 아이와 이야기했는데(공부시간에 영어 못하는 세 명만 바닥에서 퍼즐 맞추기를 시킨다고 함), 선생님이 자기한테만 "No"라고 소리 지르고 계속 서있게 했다며 서럽게 운 일도 있었고, 아이 아빠가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선생님이 우리 아이를 혼내고 있었고, 이유인 즉 책으로 다른 남자애 머리를 때렸다는 것이 문제라는데, 아이 말로는 둘이 서로 장난쳤는데, 남자아이가 머리를 맞고 선생님한테 일러서 자기만 혼났다는 것이다. 아빠를 본 아이는 또 서럽게 울었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전, 학교에서 연극을 준비하는데 우리 애는 대사를 말하기 어려울 것 같으니 소품을 들고 있거나, 무대 준비 등 다른 방법으로 참여할 수 있다고 메일이 왔다. 나는 아이와 상의 후 잘하지는 못하더라고 노력은 해보겠다. 집에서도 연습을 하겠다고 했다. 메일에는 답이 없었으나 아이는 학교에서 연습하고 있다고 했다. 그런데, 대본은 들고 오지 않아 왜 안 가져오냐고 했더니, 그때 남자아이 머리를 때린 책이 그거라 선생님이 뺏어가서 안 주고 있다고 했다. 선생님에게 모른 척 메일을 보냈다. 연극 대사의 내용을 아이가 알고 싶어 하고, 집에서도 연습을 시키고 싶으니 대본을 보내달라고. 선생님은 그날(금요일), 대본책을 보냈다.
그리고, 주말 지나 이번 주 월요일 또 한 통의 메일. 우리 부부는 폭발하고 말았다. 첫째, 우리 아이의 책상서랍이 너무 지저분하다며 사진까지 첨부했고(하지만, 누가 봐도 그렇게 지저분해 보이지 않음), 두 번째 서랍 정리가 안 돼서 학용품을 찾기가 어렵다(그날 화이트보드 펜이 없었다고 함), 세 번째 지난주 금요일에 도서관 책을 반납하지 않았다(아이가 깜빡했다고 해서 월요일에 들려 보냄). 이건 지도 수준을 넘어 감정이 섞인 게 분명하다. 우린 당장 실습 중인 유치원 현지 선생님들이 추천해서 전학을 생각해 봤던 근처 학교에 찾아갔다. 다행인 건지 학군 안에 다른 초등학교가 또 있다. 그 학교에서는 왜 전학을 보내려고 하냐고 물었다. 난 우리 애가 그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뉴질랜드 교육의 핵심인 a sense of belonging, inclusion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그 학교는 현재 3학년 학생들의 학급당 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당장은 받을 수 없으니, 내년을 위해 미리 등록해 놓으라고 했고 나는 바로 등록했다. 그리고 그날 오후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가서 담임을 만났다. 나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당신이 보낸 메일에 대해 말하고 싶다고. 서랍이 어떻게 지저분한지, 사진에 보이는 이 하얀 종이 조각이 문제인지 물었더니 아이 서랍을 열어 보여주며 지금은 정리해서 깨끗하지만, 지우개 가루나 종이 자른 조각들이 있었다는 설명을 해 주었다.
이런 경험을 같이 공부하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얘기하니 선생님이 이렇게 메일 보내는 건 흔하지 않다고, 너무 무심한 거 아닌가 싶을 정도로 연락이 없다고 했다. 그리고, 유치원 교사를 하고 있는 현지 인들도 혹시 그녀가 백인이니? 물을 정도로 뭐가 있는 건 맞는 것 같다. 인종차별이라고 까지는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우리 애가 찍혀도 단단히 찍혀서 학교생활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 같다. 한국이나 뉴질랜드나 담임복은 정말 중요한 것이었다. 좋은 학교라고 해서 보냈는데, 우리 아이한테 좋아야 좋은 학교지, 남들에게 좋은 학교라는 평판이 무슨 소용인가!
아이가 학교 가는 길, 당부한다. "선생님한테 꼬투리 잡히지 않게 학용품 잘 챙기고 눈치 있게 잘 행동해." 본인이 제일 힘든데, 선생님 눈치까지 봐야 한다. 하루빨리 전학을 보내고 싶은데, 아이는 그 학교 교복이 안 이뻐서 전학 가기 싫다는 철없는 소리만 하고 있으니, 애는 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