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Good!
지난 이야기에 이어 둘째 아이 전학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둘째 아이는 한국에서는 2학년 3월 한 달 학교를 다니다 뉴질랜드에 왔고, 여기 학제로는 year 3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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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주 전, 월요일. 나는 아이 담임선생님의 제안대로 아이의 수업을 참관하러 갔다. 아침시간, 매트에 앉아 주말 이야기를 했다. 우리 애는 제대로 알아들을 수가 없으니 그냥 풀이 죽어 가만히 앉아 있었다. 그다음은 각자의 자리에 앉아 파닉스(그날의 사운드는 dg였음) 공부를 하는데, 선생님이 gadget, cudgel, pledge, podge, dredge, grudge와 같은 낱말을 읽으면 아이들이 따라 읽은 후, 낱말을 보지 않고 받아쓰기를 했다. 우리 아이에게는 너무 어렵기에(솔직히, 나에게도 어려웠다), 아이는 답을 맞힐 때를 기다렸다가 선생님이 칠판에 적는 답을 보고 공책에 낱말을 적었다. 같은 방식으로 이번에는 2-3개 문장으로 구성된 짧은 이야기로 문장 읽기 연습, 받아쓰기를 했다. 이번에도 선생님이 답을 칠판에 적는 것을 보고 공책에 문장을 적었다. 하지만 아이는 빠르게 적지 못하기 때문에 다른 아이들이 한 명씩 공책 검사를 받을 때에도 가장 늦게 나가 검사를 받았다. 그다음은 큰 화면에 수학 문장제 문제를 띄워주고 아이들 각자 화이트보드에 문제를 풀게 했다. 우리 애는 영어로 설명된 것을 이해하지 못하니 선생님이 아이에게 다가와 화이트보드에 식을 적어주면 아이가 문제를 풀었다. 내가 수업을 참관하면서 느낀 점은 그저 단 하나였다. '우리 애를 여기서 구출해야 한다.' 선생님은 우리 애가 문제가 있으니 와서 수업을 보라고 한 것이었지만, 내가 보기에는 수업이 문제였다. 아니, 아이가 어려운 수업을 따라갈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은 선생님이 문제였다. 선생님은 우리 애가 아침마다 하품을 한다, 너무 피곤해한다, 저녁 7시 30분이면 재워야 한다며 그렇게 자는 시간을 강조했는데, 나라도 하품이 나올 만큼 수업은 너무 지루하고 어려웠다. 한국에서 2학년이면 통합교과로 여러 가지 다양한 활동도 많이 하고, 국어, 수학 공부를 하지만 집중력이 길지 않은 아이들을 위해 재미있는 활동도 많이 한다. 아이가 다니는 학교에서는 내가 예상했던 뉴질랜드의 교육과는 너무 다른 방식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아이 교육을 위해 뉴질랜드에 왔는데, 한국의 교육이 그리워질 줄이야! 수업 참관 후 나는 바로 전학 보내야겠다고 결심이 섰다.
아이가 다니던 A학교는 학군에서 가장 큰 학교. 먼저 전학 보내려고 가봤던 B학교는 학급 당 학생이 많아 내년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이제 남은 학교는 C학교. 실습하고 있는 유치원에 C학교 학부모인 선생님이 있어 학교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고 남편과 같이 학교를 방문했다. 한 학년에 한 반밖에 없는 작은 학교였는데, 데스크의 직원도 너무 친절했고, 교장선생님이 직접 나와 학교 안내를 해 주셨다. 교실에 일렬로 책상이 놓여있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이 바닥에 모여 앉아 선생님 말을 경청하고 필요에 따라서는 테이블에 둘러앉아 활동을 하는 것이 좋아 보였다. 그리고 교복도 없었다.
지난주 월요일, 전학 첫날. 아이와 학교를 갔는데, 학교 직원들과 선생님들이 모두 우리 아이 이름을 불러주며 환영해 주었다. 담임선생님은 나이 많은 할머니 선생님으로 정말 친절하셨고, 우리 애가 영어를 잘 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자, 그건 사과할 일이 아니라며, 자신도 외국에 가면 외국어 한 마디 못한다고, 아이들은 금방 언어를 배우니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집에서는 꼭 홈 랭귀지(한국어)를 사용하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A학교와는 너무 비교되었다. A학교에서 담임선생님, ESOL선생님, 교장선생님과 미팅할 때, 그들이 그랬었다. 아이 영어가 빨리 늘 수 있게 집에서도 애한테 영어를 좀 쓰라고. 같은 학군 안에 있는 학교인데도 어쩌면 이렇게 분위기가 다를 수가 있는지. 그날 오후에 아이를 데리러 갔을 때에는 한 학부모가 자기 애가 나에게 전화번호를 주라고 했다며 자신의 전화번호를 적어서 건네주었다. 나중에 아이들 플레이데이트도 하자면서, 자기들이 한국어를 좀 배워야겠다고도 했다. 감동이었다.
지난주 목요일에는 학교에서 큰 행사가 있었다. 올해 내내 아이들이 준비한 공연을 발표하는 날이었는데, 공연은 전교생이 같이 준비한 것이었고 더 놀라운 것은 아이들 스스로 기획하고, 스토리도 짜고, 소품도 준비했다는 점이었다. 월요일에 전학을 간 우리 아이도 의상을 맞춰 입고 참여했다. 1시 30분, 5시 30분, 두 차례 공연을 모두 보았는데 작은 강당에서 아이들이 공연하고 학부모들이 뺑 둘러앉아 아이들 공연을 보며 호응해 주고 격려해 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공연장에서 이 학교를 나에게 소개했던 유치원 선생님, 유치원에서 학부모로 만났던 분, 우리 애 반 학부모 등등 안면이 있는 분들과 인사도 나누며 아직은 낯설지만 책에서 배웠던 뉴질랜드 교육과정의 핵심, Inclusion이 이런 거구나 느낄 수 있었다. 같이 공연을 본 첫째 아이도 이런 분위기가 부러웠는지 자기도 초등학교 때 뉴질랜드에 왔으면 좋았겠다는 말을 했다.
아이는 A학교를 다니는 동안 집에서 영어 한 마디 하지 않았다. 학교에서 영어 하는 것도 스트레스인데 집에서 까지 하고 싶지 않다고 하면서. C학교를 다닌 지 일주일. 아이는 집에서 자연스럽게 영어 낱말이나 표현을 사용한다. 아이는 C학교를 다니면서 기가 좀 살은 것 같다. 다행이다. 오늘 아침에 아이를 등교시키러 학교에 갔다가 교장선생님을 우연히 만났다. 우리의 전학 사정을 아는 그녀가 묻는다. "Is she happy?" 그게 제일 중요한 것 아니겠냐며. 그렇다. 네가 행복한 게 제일 중요하지. 나와 남편은 이 작은 학교의 구성원으로, 학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며 아이가 학교에 잘 적응하고 즐겁게 지낼 수 있게 돕기로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