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지만 일이잖아요
퇴직 앞둔 상사와의 면담에서 내가 내뱉은 말이었다. 어떻게 보면 지난 4년간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마다 온 정신을 꽉 채웠던 명제이자 의문이었다. 어떤 최악의 상황에서도 이것은 ‘일(공적인 영역)'이기 때문에 해내야만 하는 것으로 스스로를 강하게 몰아붙일 수 있었던 주문 같은 것이었고, 동시에 이것은 '일'인데 왜 개인적인 사감을 넣어, 해야 할 도리를 다하지 않는지 강한 의문과 분노를 자아내는 것이기도 했다.
돌아보면 일의 스킬이 부족했던 것 같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일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바람직하지 못했고, 동료와 함께 일을 '잘' 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미숙했다. 나를 지켜가며 일을 지속하는 적정선을 알지 못해 나와 동료 모두를 한계 밖으로 밀어 넣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일에 밀쳐져 지쳐갔고, 동료는 튕겨져 나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일과 동료, 그리고 나를 잃었다.
일을 잘해보겠다고 멋모르고 덤벼대다 몸과 마음 모두를 다쳤다. 때문에 나를 안다는 것은 중요하다. 어디까지가 나의 한계인지 분명히 알아야 한다. 어떤 업무에 자신이 있는지, 어떤 것을 어려워하는지, 어떨 때 스트레스를 받는지, 과부하가 올 때 나는 신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떤 상태인지,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효과적인지, 오작동이 나지 않는 선에서 나는 어디까지 내달릴 수 있는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일에 짓눌리지 않고 일에 올라타 주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다.
그러나 멋모르던 시기에는 요령 있게 일한다는 것이 요령을 피우는 것처럼 여겨졌다. 뺀질거리며 쉬운 일만을 찾아 나서는 얄미운 여우 같은 종족으로 생각되었다. 스스로가 그런 얌체 같은 인간이 되는 것을 경계했고, 동료들도 그런 낌새를 보이면 날을 세우곤 했다. 불나방처럼 일하다 보니 나보다 나이도 경력도 훨씬 많았던 동료는 나의 일처리 방식을 부담스러워했다.
매니저가 출근하지 않는 날이면 오전 중에 그날 해야 할 일을 카톡으로 올려주곤 했다. 나는 이것을 오늘 중으로 빨리 처리해야 할 것으로 보았고, 동료는 매장 상황에 따라 바쁘지 않으면 조금씩 나누어서 처리하고 만약 오늘 중에 다 하지 못하면 내일 하면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일을 대하는 마인드가 너무 달랐다. 때문에 업무를 처리하는 방식에 있어 차이가 컸기 때문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서로가 다른 생각을 나누고 어떤 방식으로 일할 것인지 의논하고 합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 그러나 당시 내가 택한 방법은 혼자서라도 일을 시작하고 후에 동료들에게 해야 할 일을 분배하는 것이었다. 이 방식이 동료의 마음에 들리 없었고 나 또한 눈치만 보고 일을 하지 않는 동료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 찼다. 표정이 굳고 말투가 딱딱해졌다. 동료는 비협조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일을 이렇게 하자 하면 좀 있다 하자고 뒤로 미루는 가 하면, 업무를 함께 하다가도 고객이 오면 응대하러 가서는 고객이 돌아가고 나서도 일을 하러 돌아오지 않는 식이었다. 때로는 해야 할 업무에 대해 잘 모르는 척하며 힘든 일은 떠넘기기도 했다.
동료의 협조를 얻어내지 못한 채 스스로를 갈아 일을 해치우는 방식으로 매일을 보냈다. 마음에 조금의 여유도 사라져 버렸을 때 입사한 지 얼마 안 된 메기에게 분통을 터트렸다.
“여긴 일을 시키는 사람만 있고 일을 같이 하자고 하는 사람이 없어!”
아 흑역사여. 신입에게 그 이야기를 하는 건 정말 아니었는데.
어쨌거나 그 후로 이 방법에는 문제가 있구나 인식하고 방법을 바꾸어보았을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내가 말하는 것에 자동반사적으로 반감을 갖게 된 동료는 청유형, 권유형 등에도 같은 태도를 견지했다. 그 뒤로도 같은 일들이 반복됐다. 그리고 퇴사 직전 매니저와의 대화에서 문제의 원인을 좀 더 뚜렷이 알 수 있었다. 매니저가 말하길 “B가 그러는데 OO씨가 하는 말이 명령처럼 느껴진데. 조금 지켜보면 본인이 알아서 스스로 할 텐데 자긴 좀 행동이 느린 것뿐이지 하지 않는 게 아닌데, OO씨가 '이거 해주세요’라는 말이 그렇게 들린다는 거야.”
'네 다 제 잘못입니다. 무식하게 일한 제 잘못이에요' (삐뚤어진 마음이 아직 회복되지 않았나 보다.)
매니저의 말에 나도 나름의 항변은 해야만 했다. 그래서 한 말이 "그렇지만 일이잖아요."였다. 말투가 어떻고 표정이 어떻고 간에 일이기 때문에 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변론이었다. 나라고 일을 회피하는 동료를 보면서 유쾌했던 것이 아니다. 그러나 일이었기 때문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나의 일하는 방식에 문제가 있었다는 걸 인정한다. 사람을 갈아대는 방식으로는 일을 지속할 수 없을뿐더러 동료의 동의도 얻어낼 수 없었다. 나의 한계만큼이나 동료의 한계도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이 중요했다.
이걸 못했다. 그래서 망했다.
여기엔 조직 내에서 업무를 분배하고 일이 잘 되게 만드는 리더가 부재했다는 것도 한몫했다. 매니저는 지시만 하고 부매니저는 눈치 보며 외면했다. 그래서 내가 나섰는데, 잘못된 선택이었던 듯싶다. 선 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딱 그 짝이었다.
일에도 스킬이 필요하다. 일의 종류와 미감 기한, 참여하는 인원의 수와 특성 등을 고려하여 일을 어떻게 진행시킬 것인지, 어디까지 할 것인지, 외부 변동 상황에 따라 어떻게 유동적으로 처리할 것인지. 해당 인원의 특성과 장단점을 고려해 업무를 분배하고, 적절한 타이밍에 휴식을 주는 것. 동료의 참여를 이끌어내는 언어적 기술도 겸비해야 한다. 또 개인으로는 일과 자신을 분리해 생각하는 것과 본인의 하루치 적정 노동량을 잘 알고 이 한계 내에서 본인의 최선을 다하는 것이 필요하다. 적절한 때에 스스로에게 휴식을 주고 스트레스에 노출되었을 때 환기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만약 지금 근무하는 직장이 이러한 여건이 주어지지 않는 곳이라면 냉정하게 판단해 이직을 준비하는 것도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