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있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각자의 몫을 1인분씩만 책임감을 갖고 해낸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세상이겠는가. 하지만 현실은 어떻게 하면 조금 덜 일할 수 있을까 궁리하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으며, 누구에게나 똑같은 몫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안다. 조금 더 똑똑했더라면 현실을 받아들이고 내가 맡은 업무와 책임만큼의 정당한 보수를 요구하였거나 좀 더 빨리 이직을 준비를 하였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울 뿐이다.
눈치 빠르고 처세술이 좋은 사람은 적게 일하고도 인정을 받고, 미련한 사람은 많이 일하고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세계에서 그럼에도 미련한 사람들이 인정받는 세상을 꿈꾼다면 그야말로 미련한 것일까?
나는 서로를 돕기 위해 안달난 미련한 사람들이 모인 곳에서 일하는 것을 꿈꾼다. 어떻게 하면 더 적게 일할까 눈치 보느라 쓸데없는 데 에너지 쓰지 않고 서로가 더 잘 되기를 바라며 돕고 돕우며, 이런 좋은 에너지들이 모여 더 큰 시너지로 돌아오는 선순환이 이뤄지는 곳이 어딘가에는 있다고 믿고 싶다. 이런 별세계에서만이 진정으로 ‘니일 내일이 없다’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니일도 내일도 타인에게 떠맡기고는 책임마저 회피하려는 사람이 ‘니일 내일이 어디 있어? “라고 아무렇게나 내지르는 공허한 말이 아니라.
미련했던 시절 가중되는 업무에 매니저에게 업무 분장을 하자 건의한 적이 있다. 그때 상사는 말했다.
“니일 내일은 없는 거야.”
나에게만 지워지는 업무에 부매니저에게 불만을 늘어놓은 적이 있다. 그때 부매니저는 말했다.
“어쩔 수 없어.”
아무도 같이 짐을 짊어지겠다 하는 사람이 없었다. 면피성 발언 어디에도 책임자로서의 책임감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나도 살아남기 위해 행동을 달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적게 일하려 안달난 사람들 속에서 나도 그들과 똑같이 굴어주겠다는 유치한 생각을 했다. 그 생각의 발로로 나 또한 어떻게든 적게 일하려 눈치 보던 때가 있었다. 뱁새가 황새 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고 안 하던 짓을 하다 머리가 새햐얗게 샐 뻔했다. 또 이런 행동은 어설프기까지 해서 티가 나도 너무 났다. 자연스레 동료들의 눈총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속으로는 '나는 너희들이 하던 데로 한 거야.'라는 억울함 마저 들기도 했지만. 나의 짧았던 일탈이자 방황은 되려 역효과만 불러일으켰다. '같이 일하기에 까다로운 사람'에 더하여 '일 안 하는 사람'이라는 평가마저 따라왔으니 말이다.
퇴직 전 면담에서 매니저는 “OO 씨가 이전에는 하지 않던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힘든 일이 있구나 생각했어.”라고 말했다. '알고도 그랬냐!'는 말이 깊은 단전에서부터 목구멍까지 솟구쳤다.
모두가 서로를 도와 일하는 별세계는 우리들의 일터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사람은 본능적으로 덜 힘들기 위해서 이리저리 궁리하며 내빼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래서 관리자가 필요하다. 매니저는 요즘 얘들은 니 것 내 것 나누어, 내 것만 하려 하는 이기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비난을 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항상 "나 때는 이것보다 훨씬 힘들었어." 라거나 "열심히 일하다 보면 인정받는 날이 오겠지 하고 일했더니 나도 매니저의 자리까지 왔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덧붙였다.
듣다 보니 참 이상했다. 기본적인 노동권과 인권도 지켜지지 않던 때와 현재를 비교하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그때에 비하면 훨씬 나아진 환경에서 일하는 젊은이들은 현실의 부당함을 그저 참고 견뎌야 한다는 말인가. 상사의 젊은 시절에도 누군가는 "나 때는 말도 못 하게 힘들었어, 너는 좋은 환경에서 일하는 거야."라는 식으로 입을 막아버리려 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먼 옛날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싸가지가 없다.'라는 글을 남겼다고 하지 않는가.
상사가 살아왔던 시간 속에는 입을 닫고 열심히 일하면 언젠가는 인정을 받아 좋은 자리에 올라가는 일이 종종 일어나기도 했겠지만, 내가 살아온 시간에서는 그저 입을 닫고 묵묵히 일하는 사람은 미련한 사람으로 취급받고 입을 잘 놀리며 처세를 잘하는 사람이 일 잘하는 사람으로 인정받는 일이 당연시되었다. 당신이 미련하다 발로 채던 내가 바로 그 증거가 아니겠는가.
당신의 말에 기대어 보자면 요즘 것들인 나는 이기적으로 내 몫 만을 열심히 일했는데, 당신은 네 몫과 책임을 다하긴 했는지 묻고 싶기도 하다. 그저 각자의 몫을 책임 있게 해내기를 바란 것이 그리 큰 잘못일까. 니일 내일의 구분이 없이 일하다가는 모두가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한 명에게 업무가 과중되는 것이 현실이기에, 니일 내일이 어디 있냐는 당신의 물음에 "여기 있습니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각자의 몫을 잘 해내기도 어려운 현실 세계에서 이를 돕고 일을 잘 분배하는 것이 당신의 몫이라는 말도 덧붙이고 싶다.
모두가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바 일을 다한다는 것은 언듯 쉬워 보이나 이렇게나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