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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영 Oct 02. 2023

'두 개의 시선'

<14화> 에필로그의 에필로그

두 개의 시선 1.  (ctrl+ c)


지난 <에필로그> 편 줄거리


지금까지의 글은 뻔하다는 거다. 나약한 인간의 욕망, 상처, 기억, 화해를 뉴턴의 운동법칙으로 설명했다.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세계에 외력이 가해지면 사건이 발생하여 갈등이 생기고, 힘이 가해지는 쪽으로 욕망과 갈등은 점점 커지고, 어떤 결과로 이어진다는 (중략) 이해관계가 없는 사랑을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 빗대어 말하고(다시 중략)그리고 알 수 없는 고양이의 당부의 말을 전하고 있다.


두 개의 시선 2. (ctrl + z)



너를 생각하면 온통 삼각형과 동그라미가 이리저리 돌아다닌다. 역삼각형의 머리, 머리 위에 쫑긋 서있는 두 개의 삼각형, 동그란 두 개의 노란 눈, 그 속의 동그란 까만 눈동자, 삼각형의 입, 흰 털실의 벙어리장갑을 낀 듯한 동그란 발, 동그랗게 몸을 말고 자는 모습.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첨부하는 상냥함을 발휘했지만 난 원래 소설가를 지망하는 인간 아니던가. 사진은 여기까지 하고 글로 설명하는 게 맞다.)


너는 무심한 얼굴을 하고 있지만

내가 자는 걸 지켜보고

내가 먹는 걸 지켜보고

내가 책 읽는 걸 지켜보고

내가 글 쓰는 걸 지켜보고

샤워할 때는 문 뒤에서 기다리고

옷 입는 걸 지켜보고

커튼 뒤에서도 지켜보고

지루해하지 않고 어디선가 멀리서 또 지켜본다.


나도 네가 자는 걸 지켜보고

아작아작 먹는 걸 지켜보고

귀여운 원 모양으로 꼬리가 굽이치는 것을 지켜보고

중력에서 벗어난 듯 포물선을 그리는 도약을 지켜보고

마치 빛을 가지고  만지작거리듯 노는 모습을 지켜보고

딱딱한 나뭇바닥을 가로질러 옆으로 미끄러지는 걸 지켜보고

커튼 뒤의 너의 움직임을 짐작하고

갸르릉 거리며 내적 만족감을 표현하는 것을 듣고

얼굴에 치대는 촉감을 느끼고

머뭇거리며 톡 톡 톡 뭔가를 건드리면 얼른 움켜잡을 준비를 하고

야옹이라는 한 단어에 담긴 기대, 원망, 행복, 기쁨, 불안, 환희를 알아챈다

우린 서로가 궁금해서 지켜보지 못하는 걸 안다

우린 관측자인 동시에 관측대상이다.

지금도 네가 궁금하다

관측되지 않았으니 결정된 건 없다

다만 궁금한 내가 있을 뿐.


어떤 인간들은 고양이에게 의식이란 게 있을까 생각한다

그들은 예전에 노예, 여성, 흑인도 영혼의 소유자라는 것을 거부했었으니 이상할 건 없다

그들은 타자의 존엄성을 인정하는 것이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그런 부류이다

그들이 자연의 소유자이자, 그들이 짐승이라고 부르는 다른 생명보다 우월하다는,

그들이 주인으로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에 게욱질을 할 필요는 없다

그들은, 네가 하루의 시작을 열어주기 위해 내게로 다가오는 것을,

예의를 배운 적은 없지만 우리 앞에서 밖으로 꺼내놓은 발톱을 재빨리 거둬들이는 것을,

너와 내가 섬세하고 신비한 영혼의 끈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을 이해할 수 없는 인간들이다

그런 거에 신경 쓰지 마.

어럽쇼, 저런 인간들도 있네,라고 웃어넘기면 된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유는 주변 눈치를 보지 않는 꿋꿋함이다.


두 개의 시선 3. (ctrl + alt + esc)


너는 내게 두 번 다시는 만날 수 없는, 그런 친구이다. 네가 앞서 말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의 '카레닌'이라면 나의 마음은 어떨까,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마음에는 커다란 검은 구멍이 열릴 것이다.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비교 불가능한 상실의 상태가 될 것이다. 그 상황을 상상해 본다.


내가 모르는 사이 너는 늙어 버렸고,

내 나이도 '상실의 시대'의 '와타나베'처럼 중년을 지나고 있다

너는 죽음을 앞두고 대부분의 시간을 잠으로 보내고 있

언젠가 너는 밤새 신음소리를 내고

나는 겁에 질려 너를 바라보고는

침대에 엎드린 너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너의 몸을 품에 껴안고

너는 냄새를 맡고 힘없이 나를 바라보고 작게 갸르릉 거린다

나는 이 순간을 영원히 기억 속에 가두어 두려고 하고

너는 몸을 일으키려 애쓰지만

나는 그런 너에게 "그대로 있어"라고 애원조로 말할 거다

나는 너의 침대에 무릎을 꿇고 앉아 너의 머리를 나의 얼굴에 대고 말할 거다

"두려워하지 마, 아프지 않게 끝내줄 게, 거기에서는 아프지 않을 거다"


의사는 주사기 바늘을 너의 발에 찌르고 피스톤을 누르고

너는 가벼운 경련과 함께 피로감이 몰려오고

네 의식은 마비되고 어둠 속에서 눈꺼풀이 감기고 몸은 힘없이 늘어지고

너는 고통으로부터 해방되고

나는 분필 같은 창백한 얼굴에 눈물이 글썽거려 주변 풍경은 온통 흐릿하게 보이고

구겨지고 젖은 티슈를 쥔 채 너를 바라보고

늘어진 너의 몸을 내 몸에 꼭 밀착할 거다


이별장소로 옮기며 기적이 일어나기를,

하루만 더 시간이 주어지기를 바라지만

기적은 일어나지 않고

너를 보내고 남겨진 나는

너를 그리며 예고 없이 그저 눈물이 날 거다

그리고 지쳐 쓰러지고 아주 깊이 잠깐 잔다

다행히도 너는 꿈에 나타난다

너는 책상 위 전등 밑에 앉아있다. 

나는 너를 무릎 위에 앉히고 너의 등을 쓸어준다

너무나 그리웠던 부드럽고 포근한 털. 

"이제 아무 데도 가지 말고 우리랑 같이 있자, 응?" 

그 순간 너는 움찔하며 한마디 말도 없이 사라져 갔다.

잠에서 깨자마자 눈앞은 흐릿해지고

유리창은 거울로 바뀌고

내 모습과 너의 모습이 겹쳐 보이고

너에 대한 기억들이 나를 사로잡는다

그것은 한 밤중에 꾼 꿈이 깨고 나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불그스름한 불빛의 암실에서 물이 담긴 싱크대의 사진을 핏셋으로 이리저리 헹구면

무(無)의 상태에서 그림자가 감광지에 선명히 드러나듯 또렷할 거다.

이젠, 가슴께가 하얗고, 하얀 털장갑을 낀 너를 만질 수 없고

내게 다가와 너의 아름다운 얼굴을 비비며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없고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눈을 고정하는 순간도 사라졌다


한 때,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아내가 있다면 어땠을까에 대해.

모르겠다. 분명한 건, 설사, 아내가 있다 해도 혼자일 것이다

지금처럼 혼자 생각하고 혼자 느꼈을 것이다

그리고, 글을 쓸 거다

가장 생생한 슬픔의 정점을 표현할 단어를 찾지만 약한 글쓰기의 힘은 실패를 거듭할 거다

그건 글로 표현할 수 없을 거 같기도 하다

그러면서 한 마리 고양이의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는

인간의 죽음이든, 신의 죽음이든, 한 고양이의 죽음이든, 죽음은 같은 거라 생각할 거다

누군가는 불경스럽다고, 도발적이라고, 생각하는 인간이 있을 거다

그들에게 작은 고양이의 죽음으로 모든 것이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이해시킬 순 없다.


두 개의 시선 1-1. (ctrl + v)


너의 말이 맞다. 이 글은 참 거시기하고 시시껄렁하다. 너는 내게 늘 현재에 충실하라고 당부했지만 나는 그게 안된다. 현재의 시간에 과거와 미래가 뒤엉켜 있다. 소설을 쓰는 일도 내게는 과거, 현재, 미래가 하나가 된다. 과거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현재의 나는 미래의 독자를 상상하며 자신의 글이 영원한 생명력을 가질 것을 기대하며 이야기를 짓는다. 글이 아니라도, 당신이 아름다운 그녀의 모습을 보고, 조그만 입술을 오물거리며  '아름답다'라고 말하여 보라. 미래의 슬픔이 느껴지지 않나? 나만 그런 건가? 그렇다면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를 생각해 보라. 80대 노인으로 태어나 점점 젊어지는 운명을 지닌 '벤자민 버튼'과 그 곁에서 젊어지는 그를 바라보는 '데이지'. 한 때 늙은 남자와 젊은 여자로 만났던 두 사람이 이제 젊은 남자와 늙은 여자로 만나 사랑을 나눈 뒤, 등지고 옷을 입는 그녀의 쭈글쭈글하고 검버섯 핀 몸을 바라보고, 시간이 다시 흘러 치매에 걸린 어린 벤자민과 노년의 데이지가 손을 잡고 걷는 뒷모습, 그리고 요양원에서의 그녀가 이제는 갓난아이가 된 그를 흔들의자에서 안고 있는 모습. 아직도 희미한 슬픔이 느껴지지 않으면 <더 리더:책 읽어주는 남자>에서 10대 소년 마이클이 30대 여인 '한나'와 오래 머물고 싶어, 더 오랫동안 책을 읽어주고, 해는 황혼으로, 부엌은 음영 속에 잠기고, 한나는 욕조에 앉아 그 모습들을 멍하니 바라보는 모습을 본다면 쓸쓸한 슬픔이 느껴질 거다. 지금은 아름답고, 아직은 오지 않은 슬픔이지만, 언젠가 오고 말 슬픔 같은 거다. 다시 한번 입을 오물거리며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 '아름답다'라고 말하여 보라. 미래의 슬픔이 조금은 느껴질 거다. 그렇지 않다면 나의 표현력이 부족한 거다. (중략) 내가 처음으로 사랑한 작가 '쿤데라'를 언급해 주어서 고맙지만, 어쩌나, 지금은 다른 작가에게 눈이 돌아가 있는데. (다시 중략) 글 속의 당부의 말을 한 동안 조합해 보았다. 모래시계에서 모래가 떨어지듯 머릿속에 글자들이 떨어지는 걸 이리저리 맞추어 보았다. 그건 소설가 '배두아'의 글이더라. '걸어라, 울어라, 그리고 써라'라는 글.


ps. 안녕하세요, 제 글을 읽은, 앞으로 읽으실 독자 여러분.  (얼굴은 모르지만) 일단 감사합니다. 어쩌다 보니 짧지 않은 글이 되었습니다.(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29회나 31회에 마치려고 했었는데 여기에서 맺습니다. 수학하는 사람들에게 소수는 중요한 숫자라서요. 제가 숫자 감각은 있거든요, 하하.) 간혹, 제 글을 보고, '적지 않은 나이에 이런 치기 어린 감성은 또 뭐람'(그래요, 저는 그런 놈입니다) 닭살이 돋고, 이야기가 무겁게(애들은 가라!라는 말은 아닙니다. 저도 깊이를 위하여 무겁게  쓰는 것이 아니라 가벼우면서 무겁고 고급지게 쓰고 싶습니다. 그런 날이 언젠가 올 겁니다. 죽기 전에 와야 하는데..) 느껴졌을 겁니다. 그냥(작가가 쓰기에는 무책임한 말인데), 거르지 않고 열심히 쓰려고 했다는 거로 이해해 주십시오.(술 먹은 다음날 기억과 기억사이에 지워버리고 싶은 순간처럼, 민망한 글을 아예 지워버릴까도 생각했답니다.)


그 녀석(이렇게 불러도 되나)과 울고 웃는 사이 가을, 겨울, 봄이 지났습니다. 앞으로 그 녀석과 한 번도 존재하지 않은 새로운 여름, 가을, 겨울을 맞이할 겁니다. 서로 처음 경험하다 보니 서로 우왕좌왕하며 살 겁니다.(뭐, 언제는 안 그랬나, 새삼스럽게) 저에게 그 녀석은, 푸석한 거친 땅의 한 송이 꽃입니다(아, 이 진부한 표현은 또 뭐람. 민망한 듯 백스페이스(Backspace) 버튼을 재빨리 누른다.) 우아함의 기적, 움직이는 예술작품입니다(아, 이것도 아니다) 작고 커다란 영혼입니다(너무 나갔다) 입술을 동그랗게 만들어 녀석의 하얀 털에 입김을 불어넣으면 금세 날아갈 나비나 깃털 같은 존재입니다(믿거나 말거나, 차라리 이게 낫다). 사람을 절망시키는 것도, 희망을 가지게 하는 것도, 다른 사람의 눈에는 터무니없이 작을 수 있습니다. 그 녀석은 흩어지는 마음을 다시 잡게 만든 놈입니다. 나도 가끔은 쓸모 있는 존재일 수 있다고 생각하게끔 만든 그런 놈입니다.(좌중 침묵)(굴하지 말고 다시 한번 말하자) 앞으로 두 번 다시 만날 수 없는 친구이고, 앞으로도 그럴 겁니다.


방금, 뭔가 할 말이 있었는데, 그 말이 무엇이었는지 잠시만 시간을 더..., 아, 이제 지겹다고요(그렇다고, 연신 하품까지 할 건 없잖아요), 네,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안 되겠죠, 알겠습니다. 여기서 끝내겠습니다.(그래, 나도 할 만큼 했다) 그동안 즐거웠습니다. 이렇게 끝나는군요. 글을 끝맺고 나니 세상이 고요하네요.(지금, 새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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