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메리카드림은 없다.
줄거리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개츠비가, 잃어버린 사랑을 다시 찾기 위해 불법을 저질러 가면서 돈을 모아 그녀의 사랑을 되찾으려고 하나 비극적 결말을 맞이한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제대로 교육받지 못한 개츠비는 상류층 여성인 데이지를 사랑하고, 잃어버린 사랑을 실현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젊은 나이에 엄청난 부자가 된다. 그는 신흥 부자들이 사는 '웨스트에그'에서 살았던 반면에 데이지는 전통 부자들이 사는 '이스트에그'에 산다. 조그만 만을 사이에 두고 개츠비는 밤마다 그녀가 있는 만 건너편의 초록색 등대를 그리워한다.
개츠비는 주말마다 파티를 연다. 파티에는 뉴욕의 저명인사들 수백 명이 모인다. 뉴욕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은 없다. 그가 파티를 주말마다 왜 열고, 옆집에 사는 닉을 왜 파티에 초대했는지가 추리소설의 기법으로 시작한다. 파티를 여는 이유는 데이지를 만나기 위함이다.
데이지의 남편인 톰과 예일대 동창이며 데이지와 사촌 관계인 닉은 뉴욕의 증권가에서 일을 한다. 우연찮게 개츠비의 옆집에 살게 되고 개츠비의 초대를 받아 파티에서 개츠비를 만난다. 그 후로 몇 번의 만남 속에서 둘은 친숙하게 되고, 개츠비는 닉에게 데이지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여 둘은 만나게 된다.
닉의 집에서 개츠비는 데이지를 만나게 된다. 5년 전에 그녀의 집은 동네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망의 대상이었고, 그녀는 수많은 남자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개츠비가 데이지를 사랑할 때 순수하게 사랑한 것이 아니라 세속적 욕망에서 시작되었던 것이다. 만나 사랑을 하였으나 그녀 부모의 반대로 사랑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개츠비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여 무공을 세우고 잠시 옥스퍼드에 머무른다. 이것으로 옥스퍼드 대학에 다닌 것으로 위장을 한다. 그 후 돈을 벌기 위해 석유와 도박, 주식 투기와 밀주로 엄청난 부를 일궈낸다. 개츠비는 데이지를 잡으면 그가 사회적으로 수컷들을 제압하고, 인정욕구의 투쟁에서 이긴다고 생각하였다.
데이지의 남편인 톰은 이스트에그와 웨스트에그의 중간에 위치한, 쓰레기 처리장 옆 정비소의 주인인, 윌슨의 아내와 바람이 나있었다. 데이지뿐만이 아니라 주변사람들이 그의 바람을 알고 있었지만 그것에 아랑곳 하지 않은 뻔뻔함을 그는 가지고 있다. 그는 항상 지배적인 백인들이 유색인종에게 주도권을 뺏기지 않게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한다. 당시 보수적이고 탄압적인 부유층 백인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데이지 역시 "우리가 그들을 때려잡으면 돼요"라며 비슷한 가치관을 보인다. 백인 우월주의에 경도된 인간이다.
어느 날 개츠비는 데이지가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은 자신이라는 것을 밝히기 위해 사람들과 만난다. 선택을 강요당한 데이지는 개츠비의 구애에 살짝 흔들렸으나, 어디서 굴러왔는지 모를 개츠비와 시키고의 부호의 아들이면서 예일대를 졸업한 톰에게 더 끌린다. 톰은 그가 실제로 옥스포드를 나왔는지 그의 직업은 무엇인지, 그의 출생은 어떠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든다. 논쟁 끝에 데이지는 복잡한 기분을 풀기 위해 운전을 하다 톰과 바람난 내연녀를 차로 치게 되고, 개츠비는 그녀가 입을 해를 걱정하여 자신이 운전을 한 것으로 한다. 톰은 정비소의 주인인 윌슨에게 개츠비가 운전을 하였다고 말한다. 개츠비는 자신의 집에 침입한 윌슨에 의해 총탄을 막고 사망을 한다. 윌슨도 자살을 한다.
도입부
"누군가를 비판하고 싶을 때는 이 점을 기억해두는 게 좋을 거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너처럼 유리한 입장에 서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그 후로 나는 모든 것에 대해 판단을 미루는 버릇이 생겼다. 판단을 유보하면 희망도 영원하다. 나는 더 이상 타인의 내면을 우월적인 시선으로 내려다보며 요란하게 이러쿵저러쿵하고 싶지 않았다. 오직 개츠비, 내가 진심으로 경멸하는 모든 것을 대표하는 개츠비만이 예외였다. 인간의 개성이라는 게 결국 일련의 성공적인 제스처라고 한다면, 그에겐 정말 대단한 것이 있었다. 1마일 밖의 흔들림까지 기록하는 지진계처럼 그는 인생에서 희망을 감지하는 고도로 발달된 촉수를 갖고 있었다. 희망, 그 낭만적 인생관이야말로 그가 가진 탁월한 천부적 재능이었으며, 지금껏 그 누구도 갖지 못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성질의 것이었다…
이 책의 도입부만 보더라도 왜 미국인들이 영어로 쓰인 소설 중 최고의 작품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는지 이해가 간다. 줄거리는 단순한 멜로드라마인 듯 보이나 살아움직이는 캐릭터들의 대결과 시대적 배경, 계층 간의 문제, 아메리카드림을 면밀히 살핀다면 흥미로운 면들이 셀 수 없는 소설이다.
1920년대는 미국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가진 시기일까?
미국인들은 그 시대를 으르렁거리는 시대(The roaring 20's)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미국이 부상했던 시기이다.
세계 1차 대전의 승리 이후 유례없는 경기 호황으로 자신감을 가지고 우뚝 섰던 시기이다. 그 전시대에도 제조업에서는 미국이 유럽을 앞질렀지만 문화적으로 아직도 미국이 유럽을 흉내 내던 시대이다. 그리고, 음악적으로는 재즈의 시대였다. 남부 흑인들이 시카고나 뉴욕으로 이주하여 흑인들은 재즈를 연주하고 백인들은 그 음악에 춤을 추었던 시대이다. 또한, 합법적으로 술을 못 먹게 했던 금주령의 시대이다. 하지만 금기는 달콤한 것이라 그 시절이 미국인들이 술을 가장 많이 마셨던 시대이기도 하다. 자본가들은 1929년 대공황 전까지 주식과 채권으로 많은 돈을 벌었다. 돈은 많고 시간은 남아돌아가 테니스, 골프, 폴로, 요트, 승마를 즐겼던 시대이다. 그 시대의 대표적인 여성상은 '플래퍼'였다. 코코 샤넬이 스커트 라인을 무릎까지 올렸고, 짧은 단발 혹은 보브컷에 구불구불한 파마머리와 원피스, 진하고 화려한 화장이 유행했던 시기이다.
개츠비는 왜 위대한 것일까?
데이지는 사람을 만나면 속삭이듯 말하여 사람들을 들뜨게 한다. 개츠비는 5년 만에 데이지를 만날 때 그녀의 모습에 약간 실망을 한다. 그러나 그녀의 허스키하고 낮은 목소리에, 그녀에 대한 환상을 다시 찾는다. 그녀의 목소리가 그녀 자신을 팜므파탈로 만든 것이다. 마치 호메로스의 오디세우스처럼 사이렌의 유혹에 빠진 것이다. 개츠비의 잃어버렸던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목소리인 것이다. 개츠비는 그녀를 다시 찾겠다는 일념으로 불법적인 방법으로 돈을 모아 그녀 앞에 나타나 사랑을 다시 찾으려고 했으나 그녀는 개츠비가 모은 돈은 근본이 없는 돈이지만 남편의 돈은 전통 있는 집안에서 내려온 탄탄한 돈인 것이다. 돈이라는 사다리를 만들어 데이지의 성으로 다가갔지만 그녀는 사다리를 걷어찬 것이다. 개츠비가 생각하기에 아메리카드림은 내가 노력하면 모든 것을 얻을 수 있고, 상류사회에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하나 아무리 돈이 많아도 들어갈 수 없는 집단이 있다. 넘어설 수 없는 신분의 벽이 있다. 빈민가 출신인 개츠비는 결코 데이지에 닿을 수 없었고, 쓰레기 처리장에 사는 톰의 내연녀 역시 결코 톰에 닿을 수 없다. 오로지 선택하는 자는 데이지, 톰일 뿐이다.
개츠비는 '내 운명의 주인공은 나다'라고 생각하고, 그 길로 갈려고 했던 사람이다. 과거도 사랑을 얻음으로써 다시 재현하고 미래도 바꿀 수 있다는 순수함을 가지고 있었다. 이룰 수 없는 열망이지만 열망 자체는 위대하다. 과거의 순수했던 인간으로 가려고 했던 그는 살아남았던 타락한 인간에 비해서는 위대한 부분이 있다. 미국이 청교도 정신을 잃어버리고 점점 금권주의로 변해가던 시절에 개츠비는 악착같이 돈을 번다. 그는 돈을 좇는 것이 아니라 한때 연인이었던 데이지가 돈을 숭배하는 여자였기 때문에 그녀를 만족시켜 주려고 돈을 버는 것이었다. 모두 다 돈만 좇던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가장 돈이 많았던, 개츠비는 돈보다는 사랑을 쫓았던 것이다. "사랑을 위해서는 돈은 아깝지 않아"라고 말하는 그런 인간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런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위대한 개츠비라고 말한다. 그렇지만 돈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을 써도 괜찮다는 것인데, 현대사회의 문제가 목적을 위해서는 어떤 수단도 괜찮다는 수단의 도덕성과 정당성이 무시되는 세태가 또다른 문제를 일으킨다.
개츠비가 자기 인생을 걸고 사랑한 데이지는, 그런 사랑을 바칠 만큼 대단하지 않다. 그가 인생을 걸고 사랑하는 여자가 실은 그럴만한 대상이 아니라는 아이러니는 받아들이기 쉬운 것은 아니다. 그녀는 쉽게 사랑에 빠지고 허영에 사로잡혀 있으며 무책임하다. 자신의 무책임이 심각한 결과로 돌아올 때에는 그 처리를 남에게 맡기고 달아난다. 개츠비는 현실과 환상을 구분하지 못하고 애초에 설정한 자신의 환상 속에서 나오려 하지 않았지만 나중에는 의연하게 실패를 받아들인다. 데이지는 사랑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지고, 개츠비는 자기 자신의 이미지와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만일 누군가 나에게 이 소설을 단 한 줄로 요약해달라고 한다면 이렇게 말할 것이다. "표적을 빗나간 화살들이 끝내 명중한 자리들"이라고. 개츠비에게는 데이지라는 목표가 있었고, 데이지에게는 낭만적 사랑이라는 지향이 있었다. 지친 윌슨은 엉뚱한 사람에게 복수를 하고, 몸이 뜨거운 그의 아내는 달려오는 자동차를 잘못 보고 제 몸을 던진다. 작가인 피츠제럴드마저도 당대의 상공과 즉각적인 열광을 꿈꾸었다. 그러나 그 표적들을 행해 쏘아 올린 화살들은 모두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꽂혔다. 난데없는 곳으로 날아가 비로소 제대로 꽂히는 것, 그것이 문학이다. ㅡ 김영하(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