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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편지

by 카이

아들의 어른이 되는 길목에 편지가 한 통 도착했다.


"아빠, 나 꼬추에 털 났어요!"


순간, 웃음이 났다. 하지만 웃음 너머로 마음 한구석이 찡하게 울렸다.

세월이 참 빠르다. 내 품에 안겨 어리광을 부리던 그 아이가, 이제는 어른의 문을 조금씩 두드리고 있다.


며칠 뒤, 어머니가 조심스레 편지 봉투 하나를 내게 건넨다. 봉투 안에는 어머니가 손수 쓰신 편지 한 장, 그리고 용돈이 곱게 접혀 있었다.


편지를 읽는 동안,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하지만 끝내, 고개를 떨구고 말았다. 묵직하게 차오르는 무언가를 더는 참을 수 없었다.


"할머니의 보물 나의 손주 박도원, 사랑합니다. 애기인 줄 알았는데 커가고 있었네. 대견하기도 하고 슬픈 마음도 드네. 이젠 어른을 향해 커가고 있구나. 아프지 말고 건강하게 자라 주렴. 사랑하는 손주 박도원, 할머니 손주로 태어나서 고맙습니다. 축하합니다. 나의 손주야!"


짧은 편지였지만, 그 속엔 아들 녀석의 탄생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진 할머니의 사랑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축하해”라는 말보다 더 큰 마음이, “고맙다”라는 말보다 더 깊은 울림이 있었다.


아들 녀석은 아직 이 편지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알지 못한다. 하지만 언젠가 알게 될 것이다. 삶이 고단하게 느껴지는 어느 날, 이 편지를 다시 펼쳐 들고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랑 속에서 자라났는지를 깨닫게 되겠지.


사춘기를 처음으로 축하해 준 사람,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기뻐하면서도 조용히 서운함을 감추던 사람, 바로 할머니였다.


내 아들은 지금 어른이 되는 문턱에 서 있다. 그 문턱에 가장 먼저 도착해 기다리고 있던 건, 그 어떤 말보다 따뜻한 편지 한 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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