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녀석이 말을 알아듣기 시작할 무렵부터, 나는 아이에게 수시로 세뇌 교육을 시켰었다.
“도원이는 커서 요리사가 되는 게 어때? 엄청 멋있겠지?”라고 말이다.
물론 말로만 교육한 것은 아니다. 계란 프라이, 찐 계란, 자장라면, 볶음밥, 팝콘 등 간단한 음식과 간식들을 함께 만들며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교육했다.
지금도 난 아들 녀석이 진짜로 요리사가 되면 참 좋겠다고 생각한다. 아들이 정성껏 만든 음식을 먹는 상상을 하면 너무나 행복해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아들 녀석은 정비사가 되겠다며 가위와 풀, 장난감 공구 드라이버를 들고 “아빠 뭐 고장 난 거 없어요?”라고 말하며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나를 보기 시작했다. 오케이! 정비사도 좋다.
“도원아! 아빠 자동차, 엄마 자동차 고장 나면 도원이가 다 고쳐 줄 거야?”
“걱정 마 아빠. 내가 다 고쳐 줄게”
아빠의 자동차를 고치고 있는 아들의 땀과 웃음을 보는 것도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제는 소방관이 되겠단다. 이건 아니다. 내가 크게 다치거나 사고를 당해야만 날 위해서 무언가를 해줄 수 있을 것 아닌가? 추측컨대 엄마의 정신 교육이 있었음이 분명하다. 회사(소방서)에 데려갈 때부터 의심의 눈으로 지켜봤어야 했다. 그곳에서 소방차와 소방 헬기를 타고, 각종 소방 장비들을 만지며 꿈을 키워온 것이다.
소방관 엄마 때문에 그동안의 내 노력들이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아들 녀석의 꿈은 이제 소방관이다.
물론 아들은 순간의 기분으로 가벼이 꿈이 바뀌는 6살 꼬마 아이일 뿐이다. 하지만 이 아이가 꿈을 대하는 자세만큼은 전혀 가볍지 않다. 오히려 배울 것이 많다.
아빠의 꼬임에 넘어와 요리사가 되고자 했을 때, 아이는 내가 부엌에서 무언가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꼭 같이 하자고 덤벼들었다. “위험하다”, “뜨겁다” 아무리 혼을 내봐야 소용없었다. 잠깐이었지만 요리를 한다는 것에 매우 적극적이었고, 또 관심도 많았다.
정비사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도 집에 오면 고장 난 물건을 찾아다니고, 멀쩡한 장난감을 고장 났다며 고치는 시늉을 한다. 자전거를 타러 가기 전엔 정비해야 한다며 항상 자전거를 거꾸로 엎어 놓고 이리저리 살펴보곤 했다.
이제 또 소방관이 되고자 무얼 하고 다닐지 짐짓 기대가 된다.
이에 반해 우리 어른들이 꿈이라 말하는 것들을 대하는 자세는 어떤가? 그 꿈을 위해 어떤 노력들을 하고 있는가? “난 이것도 하고 싶고, 저것도 하고 싶고…. 하고 싶은 게 너무 많아서 행복한 고민 중이야!”라고 말하는 철없는 어른들을 보고 있자면, 비록 일 년에도 몇 번씩이나 꿈이 바뀌지만 그 꿈을 위해 계속하여 무언가를 시도하는 우리 아들이 훨씬 더 어른스러워 보인다.
꿈이라는 것은 말로만 떠드는 것이 아니다. 덤벼들어야 한다. 소망하면 이루어진다고? 웃기는 소리, 세상에 그런 건 없다. 가만히 앉아 소망만 한다면 그건 언제까지 꿈으로만 남아있게 된다. 꿈을 현실로 만드는 방법은 도전하고 시도하는 것이다. 몇 번의 실패와 시련을 거친 후에야 그것이 현실이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단지 다른 이가 이루어 놓은 것을 동경하는 것은 꿈이 아니다.
꿈은 이를 이루려는 노력과 과정을 통해 구체화되는 것이며, 행동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리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