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수목원.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이곳은 아들과 나의 비밀 아지트 같은 곳이다. 아들과 단 둘이서 가장 많은 추억을 만든 곳, 지난 주말에도 아들과 함께 그곳에 다녀왔다.
그곳 수목원의 좁은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나누는 부자간의 대화는 언제나 주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한다.
눈사람을 만들기 위해 북극에 가고 싶다든지, 아프리카에 갈 때는 꼭 아이언맨 선풍기를 가져가야 한다든지, 타조와 달리기를 하면 자기가 무조건 이길 수밖에 없다든지 하는 대화들을 하다 보면 나조차도 미소 짓게 된다.
오늘도 아들은 언제나처럼 쉬지 않고 재잘거린다. 갑자기 내리는 소나기에도 그 이유를 설명하려는 녀석.
“아빠 구름이 슬픈가 봐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비가 오는 게 구름이 슬픈 거야?”
“네 구름이 슬퍼서 우는 거예요.”
“그렇구나. 그런데 갑자기 구름이 왜 슬펐을까?”
“엄마한테 혼나서 슬픈 거예요.”
“어! 이제 비 그쳤네. 구름이 이제 안 슬픈가 보다.”
“맞아요. 엄마가 사탕을 줘서 행복해진 거예요.”
“사탕?”
“네, 해가 사탕이에요. 그래서 해가 있으면 구름이 행복해져서 안 우는 거예요”
이런 말들을 아무렇지 않게 쏟아내는 아이의 생각의 폭과 상상력을 보건대, 나와 아내가 아이를 잘못 키운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특히나 이젠 외출 준비를 하라고 하면 스스로 씻고, 자기가 입고 나갈 옷은 계절에 맞게 골라 입으며, 가져갈 장난감들을 가방에 담고선 신발을 신고, 현관에서 아빠를 기다린다.
가끔씩 ‘내가 6살의 나이에 이런 걸 스스로 했었나?’라고 생각해 보게 된다.
‘부모의 간섭이 작을수록 아이는 생각의 크기가 커지며, 그 생각 속에서 자유롭게 상상력을 발휘할 때 아이들은 행복하다고 느끼고, 자존감이 생겨난다.’ 어느 심리학 책에서 읽었던 내용이다.
조금씩 아이에 대한 간섭을 줄이고, 스스로 생각하고 행동하도록 기회를 줘 보는 것은 어떨까? 아이가 클수록 간섭의 범위를 줄여 나가는 것, 그것이 올바른 부모의 역할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