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은 항상 가엾음을 받고, 다른 이들로부터 보살핌과 도움을 받는 것이 당연한가? 또 부자들과 힘 있는 자들은 그들의 ‘가짐’으로 하여 항상 의심받아야 하고, 사람들로 부터 시기와 질투를 받는 것이 당연한가?
물론 그렇지 않다. 가난하고 힘이 없어도 정직하고 성실하게 살려 노력하는 사람만이 우리 사회로부터 보살핌과 도움을 받을 자격이 있으며, 아무리 큰 돈과 권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그것이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하여 얻은 것이라면 사회로부터 존경과 귀함을 받을 자격이 충분할 것이다.
이를 알면서도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보면 왠지 측은하고 안쓰러운 생각이 먼저 들고, 돈과 권력을 가진 이들을 보면 나도 모르게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인가? ‘기생충’이란 영화는 매우 불편하다.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감싸주기는커녕 그들의 추악하고 더러운 욕망을 남김없이 발가벗겨 관객의 발 앞에 던져 버린다. 알지만 불편한 진실, ‘덜 가진 자의 추악함’을 통해 감독이 전하고자 한 것은 무엇일까?
사전에 어떤 정보도 없이 영화를 보면서 한동안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인지 잘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 정도가 지나서야 알 수 있었다. 혹시 봉준호, 그 천재 감독이 전하고자 했던 것이 ‘욕심은 모든 불행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아니었을까?
기생충, 영화 제목부터 매우 직설적이다. 어떠한 미사어구나 수식어도 없이 거만하게 툭하고 던지는 말 같다.
기생충 : 노력하지 않고 남에게 의존하여 사는 사람을 비난조로 이르는 말
마치 제목이 무엇이든 그딴 건 상관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영화에 대한 감독의 자부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제목만 보아도 알 수 있다.
반 지하에 사는 한 가족, 그들은 어떤 노력도 하지 않는 하루살이 같은 인간들이다. 그런 인간들이 스스로를 거짓으로 꾸미고 부잣집에 거머리처럼 들러붙어 돈을 빨아먹으려 하지만 결국 지워지지 않는 그 ‘거짓의 냄새’로 인해 그들은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다. 그 나락에서 조차 또다시 헛된 꿈을 꾸어 보지만 이루어질 리가 없다.
영화에서 이선균이 얘기하던 그 ‘넘지 말아야 할 선!’ 그 선이 과연 밑바닥 인생들은 계속하여 밑바닥에서 살아야 한다는 뜻이었을까? 넘을락 말락 한다던 그 선이 혹시 욕망과 욕심의 흐릿한 경계선은 아니었을까?
이 영화의 관객은 천만이 넘었다. 개봉과 동시에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렸던 영화임을 감안한다면 정말 엄청난 성공이 아닐 수 없다. 만약 가진 자들의 욕망과 이기를 영화의 주제로 정해 좀 더 자극적이고 상업적으로 만들었더라면 호불호가 갈리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지금의 인기와 좋은 평가, 묵직한 깨달음 같은 것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봉준호 감독의 그 미친 기질에 박수와 찬사를 보낸다.
PS. 결국 아카데미 시상식 4관왕에 올랐다. 처음으로 리뷰한 영화가 이리 대단한 영화일 줄이야! 그땐 미처 몰랐었다. 그런 영화를 알아본 내가 참 기특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