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만큼 아름다운 건

by 카이

어른이 되면서부터는 눈물을 흘려 본 기억이 거의 없는 것 같다.

아버지가 암으로 돌아가시기 전 병원에서 운 것을 합하더라도 최근 10년간 10번이나 될까? 고작 1년에 한 번씩 밖에 울지 않았다는 것인데…, 아버지가 아니었다면 10년이 넘도록 서너 번 운 것이 전부였단 얘기다.


사실 어른이 될수록 울어야 하는 이유가 많아지는 것은 당연하다. 어린 시절에야 그저 배고픔, 졸림, 아픔과 같은 단순한 이유들로 울지만 어른이 되어 가면서는 기쁨, 미움, 슬픔, 사랑은 물론이고 오만가지 인간의 감정들 모두가 울음의 이유가 되지 않는가 말이다.

그럼에도 오히려 어른이 될수록 점점 더 눈물이 말라 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론 말 못 하는 아기들이야 울음 자체가 의사소통의 방법이니 예외로 하더라도, 빠르면 3살 늦어도 4살이면 대부분의 아이들도 의사소통이 가능할 것인데…, 눈물에 담아내는 의미의 종류만 생각한다면 언뜻 이해가 잘 되지 않는다.


그저 단순히 참을성의 차이인 걸까? 어른이 되면 자연히 감정을 담아내는 마음과 생각의 그릇이 커져 감정의 수위까지도 통제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 하더라도 감정을 참아내고 통제하는 것이 ‘어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하는 덕목인가?’에 대한 내 생각은 다소 회의적이다. 이건 맞는 말 같으면서도 뭔가 어색하고 자연스럽지 않다. 최소한 눈물은 참아 내거나 통제해야 할 만큼 불필요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다.


오히려 눈물은 우리 삶에 꼭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감정이 일정한 수준에 다다르면 그 뒤엔 그 감정이 녹아 볼을 타고 흘러내린다. 그것이 내가 알고 있는 눈물이다. 기쁨이 어느 수준을 넘어서면,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 찾아오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이 격해지는 순간에도 눈물이 흐른다.


눈물은 그런 것이다. 쌓아 놓을 수 없는 감정들을 녹여 밖으로 내보내는 신의 선물이다. 그 감정들을 녹여내지 못해 몸에 쌓아두면 그것이이 되고이 되어, 나와 사람들을 못살게 구는 것이다.


대부분의 정상적인 아이들은 거짓말을 잘 못한다. 바꿔 말하면 아이들은 솔직하단 뜻이다. 그리하여 몇 안 되는 이유로도 하루에 몇 번씩이나 울어재끼는 것이다. 이와는 반대로 어른들이 잘 울지 않음은 솔직하지 못함 때문이 아닐까? 자꾸만 참고, 이해하고, 숨기려 한다. 감정을 녹여내지 못하고 자꾸만 어딘가에 숨겨 쌓아두고 있는 것이다. 참 바보같이. 그것이 병이 되어 스스로를 갉아먹고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어린 시절 흘리던 눈물과 어른이 되어 흘리는 눈물은 분명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나이가 많이 변하여 어른이라 불리게 된 지금, 눈물이 없는 나는 아직 철이 덜 들어 몸만 자란 ‘어른이’이거나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한 겁쟁이일 것이다.

나는 눈물을 참는 것인가? 감정을 속이는 것인가? 그것이 무엇이든 그리 바람직해 보이지는 않는다.


눈물을 보임은 나쁘지 않다. 어리석거나 초라해 보이지도 않는다. 사는 게 힘들고, 괴로운 일이 생기고, 외로움이 느껴지면 울어야 한다. 눈물에 녹여 밖으로 내보내야 병에 걸리지 않는다. 내 어깨를 토닥여 줄 많은 사람들이 있음으로, 눈물은 언제나 옳은 것이다.


눈물을 흘리는 사람에게 손가락질하는 경우는 없다. 눈물은 그 자체로 후회이며 반성이고, 사랑이며 용서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손가락질받아야 할 사람들은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그들에게 눈물은 지금껏 살아온 인생에 대한 자기부정이기 때문이다.


눈물은 진심이다. 때문에 진솔하고 솔직한 사람들은 통상 눈물이 많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는 말이 있지만, 우는 얼굴에 침 뱉는 것이 더 이상해 보임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지금껏 살면서 눈물이 많은 사람 중 악한 사람을 본 기억이 없음은 그저 우연이 아닌 듯싶다.


눈물만큼 아름다운 건, 어쩌면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눈물에 녹여내는 인간의 감정보다 아름다운 것을, 나는 아직 보지 못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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