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thing or Everything

by 카이

난 해외여행 가는 것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 생소한 기후와 사람, 음식 등에 꽤나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인데, 그래서인지 집과 멀리 떨어져 있으면 향수병에라도 걸린 듯 우울해질 때가 종종 있다.


아내는 이런 내가 못마땅하다. 괌에 가자, 베트남에 가자 항상 노래를 불러 대지만 신랑의 시큰둥한 반응에 상처만 받을 뿐이다.


하지만 계속하여 아내의 말을 흘려들을 순 없다. ‘결정적 순간’이 되면 못 이기는 척 아내의 말을 들어주어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내가 생존(?) 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다.


결국 베트남으로 가족 여행이 결정되고, 아내의 여행 준비가 시작되었다. 나의 역할은 아내의 의견에 “Okay!”와 “Good!”을 연발해 주는 것뿐이다. 그럴 때면 아내의 얼굴엔 행복의 미소가 한가득이다. 아내에게 여행은 그 준비단계부터 이미 시작된 듯 보인다.

아들 녀석 또한 비행기를 탄다는 것에 매우 흥분되어 있었으니, 가족 중 나와 당시 한 살이었던 딸만이 간신히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을 뿐 큰 아이와 아내는 이미 구름 속을 걷고 있었다.


드디어 출발하는 날이다. 아내는 공항 도착과 동시에 사진 찍기에 여념이 없으며, 아들은 언제 출발하냐고 5분에 한 번씩 짜증을 낸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지금이라도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참아야 한다. 지금은 ‘결정적 순간’이니까.


비행기가 하늘로 날아오르자 아들은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래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불빛들 속에서 우리 집을 찾기 위해 열심이다.

‘도원아! 우리 집은 오른쪽에 있어, 우리가 앉아 있는 왼쪽에선 볼 수가 없단다.’라고 말해주고 싶었지만, 여행 시작부터 아이에게 좌절감을 줄 수는 없었다. 그저 아이가 가리키는 불빛에 우리 집을 한 번에 찾았다며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을 지어 줄 뿐이다. 그 옆에서 아내는 여전히 사진을 찍고 있다.


그렇게 비행기가 출발한 지 20~30분 간 아빠의 서비스 타임이 지나자 큰 아이가 잠이 들었다. 아내의 사진 놀이도 잠시 멈췄다. 드디어 정서적 안정의 시간이 찾아왔지만 비행기가 공항에 도착함과 동시에 짧았던 안정의 시간도 끝이 났다. 큰 아이가 깼고, 아내의 사진 찍기 놀이가 다시 시작되었다.


당시 큰 아이가 베트남에 도착 후 했던 첫마디, “다 왔어요?”

“응, 이제 다 왔어!”

“그럼, 이제 집에 가요”


큰 아이에게 이번 여행은 어떤 의미였을까? 도착하기 무섭게 꺼낸 첫마디가 “집에 가요”라니, 역시나 아빠의 마음을 알아주는 건 아들밖에 없는 것인가?


아들 녀석에겐 비행기를 타는 것이 여행의 전부였던 것이다. 한 달 전부터 여행을 위해 계획을 세우던 엄마의 노력도, 여행 간 가족의 즐거움 위해 최선을 다했던 아빠의 노력도 아이에겐 큰 의미가 없었을지 모른다.

엄마, 아빠에겐 그저 여행지로의 이동을 위한 수단에 불과했던 비행기가 아이에겐 여행의 전부였을 테니 말이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에게 좀 더 많은 추억을 만들어 주지 못한 뒤늦은 후회가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내겐 아무것도 아닌 것이 누군가에겐 삶의 전부 일 수도 있고, 내겐 너무나 중요한 것들이 다른 이에겐 사소한 것일 수도 있다.

어떤 잘못으로 인한 것인지 조차 깨닫지 못한 채 주변 사람들을 떠나보내지 않으려면 「역지사지」의 마음이 반드시 필요할 것이다.


Nothing or Everything. 영화 속 명대사가 생각나는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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