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한 잔 할까요?

by 카이

나는 참 술을 좋아한다. 술을 마시지 않으면 금단현상이 나타난다거나 주량이 엄청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을 불러 모아 술자리를 만들고 그들과 웃고 떠드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내겐 삶의 활력소라 할 만큼 술에 대한 나의 애정은 특별하다.


과거 군에서 장교로 근무할 때는 어딜 가나 나처럼 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어 그들과 자주 술자리를 만들곤 했지만, 전역 후 새로운 직장을 다니면서부터는 그 기회가 크게 줄어들었다.

군에서 근무할 때와 비교하여 동료의 수가 몇십 배나 줄어버린 이유가 가장 크겠지만 그것 말고도 요즘 직장인들이 일부러 술자리를 피하는 경향이 많다는 이유도 있다.


이유야 여러 가지겠지만, 통상 사람들이 술자리를 피하는 이유는 건강, 경제적 이유, 가정과 사생활의 중요성 등이 있을 것이다.

물론 나도 건강, 가정, 경제, 개인 시간이 중요한 것임은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을 불러 모아 일부러 술자리를 만드는 것은, 그런 것들을 조금씩 손해 보더라도 그 손해를 채우고도 남음이 있는 무언가를 얻기 위함이다.


내게 술은 기쁨이고, 추억이며, 행복이다.


내가 처음으로 술을 마셔본 건 중학교 때였다.

친구와 다툰 후 분을 참지 못하고 씩씩거리는 내게 아버지가 따라나서라 말씀하셨다. 그리곤 아무 말 없이 집 근처 순댓국집으로 데리고 들어가시곤 소주를 한잔 따라 주셨다. 난 조금 당황했지만 분기를 삭힐 수 있을 것이란 기대로 단숨에 잔을 비웠다. 첫맛은 쓰고, 뒷맛은 역했다. 소주에 대한 내 첫인상이었다. 연거푸 두세 잔을 마시곤 약간의 어지러움을 느끼던 내게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넌 지는 법을 배워야 돼, 항상 이기기만 하면 좋을 거 같으냐? 그러면 주변에 사람이 없는 거야. 현명하게 잘 지는 게 이기는 것보다 더 어려운 거야.”


그전까진 아버지와 이렇다 할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없다.

결혼 전 아내를 집에 처음 데려갔을 때에도 식사하시는 동안 아무 말씀도 없으셨던 아버지가 자리에서 일어나시며 "놀다 가거라."라고 하시곤 방으로 들어가실 정도이니, 평소 얼마나 말씀이 없으신 분인지는 더 설명 안 해도 될 듯하다. 그런 아버지가, 어린 시절 집에 과일 한번 사 오신 적이 없던 아버지가 내게 인생의 첫 교훈을 주셨고, 그 자리엔 소주 한 병이 함께 있었다.


결혼 전, 장인어른은 일부러 내게 술을 주시며 취한 모습을 보려 하셨다. 난 그것을 알면서도 연거푸 술을 들이켰다. 장인어른은 내 인간됨을 확인하려 하셨을 테고, 난 내 진심을 보여 드리고 싶었을 게다.


수년 만에 만나기로 한 내 가장 소중한 친구가 사케부터 위스키까지 좋은 술을 직접 골라 준비해둔 이유는 어린 시절 함께했던 소중한 친구를 진심을 다해 반기기 위함이었을 것이다.


술이라는 건 참으로 신기한 액체다. 때론 용기를 불어넣기도 하고, 슬픔을 잊게도 한다. 기쁨을 나누는 최고의 도구가 되어주거나, 외로움을 달래주는 친구가 되어줄 때도 있다.


술이 접착제는 아니지만 사람과의 관계를 끈끈하게 해주기도 한다. 술 속에는 사람마다의 진심과 애환이 고스란히 녹아 있고 그 진심과 애환을 이해하려면 내 몸 깊숙이 술을 밀어 넣어야 하기 때문이다.


난 되도록 주변의 많은 사람들과 인생을 함께하길 원한다. 그들이 좋은 사람이건 나쁜 사람이건, 잘난 사람이건 못난 사람이건, 나이가 많든 적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그저 술 한 잔에 서로의 진심을 담을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인생이라는 긴 여정을 함께하며 서로 돕고 의지할 수 있는 관계가 된다면 서로의 인생에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이 되어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난 오늘도 누군가를 붙잡고 자꾸만 귀찮게 한다.

“술 한 잔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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