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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가영 Mar 07. 2021

여행하는 이유

사람들은 왜 여행가고 싶어 할까?

여행이 가고 싶어졌다.

여행을 좋아하는 편이 아니다.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날 때마다 여행하는 이유를 물어봤다.

여행하는 이유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일상과 벗어난 곳에서 아름다운 곳과 맛있는 것을 먹는 건 물론 즐겁지만, 주말마다 하면 될 것은 굳이 많은 돈과 시간을 할애해서 여행을 주기적으로 가야 하는 이유를 몰랐다.


그랬던 내가 2월 중순이 지나고 여행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여행이 가고 싶다기보다,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걱정과 근심에서 벗어나 아무 생각하지 않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무념무상을 실현하기 위해 내 걱정과 근심의 가득한 일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여행이라는 수단을 선택한 것뿐이다.


새해가 되자마자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았고, 이 곳에 내 욕심과 열정을 온전히 쏟아부었다.  최고의 결과물을 내기 위해 24시간 일 생각으로 일상을 보냈다.

내 기대와 현실의 간격을 줄이기 위해 욕심을 낸 만큼 이전보다 결과물을 좋았지만, 프로젝트가 끝날 때쯤 육체적으로, 정신적으로 많이 지쳤다.

아무 걱정과 근심 없이 온전히 나를 위해 휴식 시간을 갖고 싶었고, 눈치 보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회사 문화 덕분에 설 연휴를 포함해 총 10일의 소중한 휴식을 가질 수 있었다.




여행의 목표

이번 제주도 여행의 목표는 온전히 일 생각을 포함해 어떤 생각도 하지 않고 무생각, 무계획으로 '휴식 실현'을 목표로 잡았다.

나에게 무념무상은 목표로 세울 정도로 어려운 일이다.

어떠한 스트레스로부터 벗어나고자 무계획 여행을 계획했지만, 네이버 지도에는 즐겨찾기가 가득하고, 전날 밤마다 그렇게 어디갈지 검색하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일 생각에서 벗어나기로 했지만, 여행 가서도 회사 메신저를 확인하는 나를 발견하면서, 100프로 목표 달성률에 실패했다.

하지만 내가 생각한 목표 이상으로 다른 것을 얻었다. 생각하지 못한 여행의 이유를 여행하면서 찾았다.




여행의 이유 1: 예상하지 못한 만남.

여행의 즐거움 중 하나는 여행지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만남이라고 말들 한다. 하지만 새로운 사람들과 낯을 가리고 경계한다. 그래서 여행지에서 만남도 일회성 만남에 불과하다고 생가해 달갑지 않다. 물론 내가 낯가린다고 말했을 때 주변인들은 전혀 믿지 않는다. 그만큼 새로운 사람과 만나는 자리에서 유연한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과 에너지가 많이 소비한다는 의미이기에 가능하면 새로운 만남을 피한다.


하지만 내가 머무는 에어비엔비 숙소의 사장님을 만나보고 싶었다.

숙소에 신발을 벗고 방에 들어서자마자 미리 덥혀 높은 전기장판과 히터, 이동하고 시선이 머무는 곳곳에 섬세한 사장님의 언어로 적힌 공지, 안내, 메시지들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하게 만들었다.

협상 위에 놓인 자그마한 책, 책상에 놓인 공지글이라고 칭하는 대신 편지글로, 손이 닿는 난방 온도계, 샤워부스에 붙어있는 공지들에 따뜻한 언어로 적여 있는 문장을 보며, 안내글 하나에도 섬세함이 느껴졌으며 한 문장 한 문장 여행객을 생각하며 정성스럽게 작성하신 마음이 전해졌다. 글 마무리에는 항상 "넘치지 않게 적당한 것들로 조화롭게"문구와 곳곳에 인테리어 센스가 돋보이게 꾸민 이 센스 있는 분은 누구일지 더욱더 궁금증이 커졌다.


 둘째 날 저녁, 사장님과 작은 담소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있었다. 내가 굳이 편안 분위기를 만드려고 하지 않아도, 사장님은 어투와 행동이 편안하게 만들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며 사장님이 과거의 독립출판물 관련 일을 했음을 듣고, 글을 맛있게 잘 작성하기는 이유가 납득되었다. 사장님은 오히려 이런 세심한 부분은 알아주는 사람이 우리 숙소에 오는 것 같다며, 겸손한 태도로 나를 치켜세워주셨다.

내 생활 반경에서 벗어난 장소에서, 전혀 다른 직군의 몸담은 사람과 대화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육지 생활을 청산하고 마냥 행복할 것 만 같았던 제주생활은, 그녀에게 일상이 되었고 육지에서 겪은 고충과는 다른 현실 고민 공유하면서 공감할 수 있었다.  숙소 사장님과  짧지도 길지도 않은 대화 시간이 말투와 어조, 그날 숙소의 공기, 숙소에서 느껴지는 세심한 손길들이 모두 어우러져 따스했다고 형용할 수 있었다.

이것이 사람들이 말하는 여행지에서 새로운 만남의 즐거움인가? 문뜩 생각이 들었다.






여행의 이유 2 : 예상하지 못한 경험

사장님과 담소가 끝날 무렵 사장님께서 잠들기 전 가볍게 읽기 좋은 책이 있다며, 독립 출판물 서적이 가득한 책장 앞으로 자리를 옮기셨다.

사장님에 대한 호기심이 끊이지 않아서 계속해서 나의 이야기로 대화가 이어졌다.

사장님이 독립서점에 가서 책을 고르는 기준이 궁금했다. 평소 독립출판물은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고, 책을 고를 때 항상 지인들의 추천 혹은 후기들을 보고 구매가 이어진다.

사장님의 답변은 이러했다.

안정 추구형은 책을 고를 때도 드러나는 것 같다고, 사람들의 후기들을 보면서 내용이 보장된 책을 고르는 것 같다고 하셨다. '안정 추구 성향이 책 구매에도 드러나다니!' 적지 않은 놀람과 함께 나를 들킨듯한 기분이 들었다.

사장님 또한 일상 속에서는 극심한 안정추구형이지만 독립서점에서 책 고르는 것만큼은 모험을 즐긴다고 하셨다. 물론 서점에 가서도 평상시 즐기는 장르의 손이 간다고 했다. 그 이후로는 즉흥적으로 책을 고른다고 하셨다. 예상했던 줄거리와 다른 책일 때 새로움, 예상했던 기대보다 더 재미있었을 때 아닐 때, 이 변수를 즐긴다고 하셨다.

독립출판물의 서적을 고르는 것과 여행하는 것이 비슷한 것 같다고 하셨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가 생겼을 때 일시적으로 스트레스를 받지만, 그럼에도 어떻게든 해결하는 과정이 즐겁게 다가온다고, 책 고르는 것도 이와 마찬가지라며, 책 한 권을 뽑아 자기 전에 한 번 읽어보라며 전해주셨다.

독립 출판물로 가득한 책장  / 사장님이 추천해준 독립출판물 서적 /  피식하고 웃었던 에피소드


'제가 이 여자랑 결혼을 한 번 해봤는데요'라는 책은 오사장 부부의 재미있는 에피소드의 기록이다. 남편이 아내와 일상에서 일어난 내용들을 인스타에 업로드했고, 반응이 좋아 책으로 출판했다고 한다. 묘사된 아내 캐릭터가 현실 나와 너무 닮아서 공감 가는 내용이 많았다. 이로 인해 피식피식하며 이튿날 하루를 마무리했다.


대형 출판사의 검열 없이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를 녹여내 현실과 거리감이 1도 없는 이야기라서 그럴까,

아니면 한정판이라는 이유로 독립 서적에 더 매력을 느낀 걸까.

사장님이 말한 독립서점 방문하는 즐거움을 나도 경험해보고 싶었다. 다음날 날이 밝자마자 독립서점로 향했다.





안정추구형의 독립서점 입문을 환영합니다.

책의 두께도 크기도 다 제각각인 개성 넘치는 제목들과 각기 다른 표지 디자인과 포장이 내 눈을 사로잡았다.

기존 서점에 비치되어있는 책의 날개에는 보통 작가의 연혁이 나열되어있다. 대게 독립 서적의 작가 소개란을 보면 마치 본캐를 숨기고자 짧고 간결한 문장으로 자신을 소개한다. 책 표지의 유명인의 추천글 대신 책방 주인의 언어로 작성된 책 소개 읽는 재미가 독립 서점의 매력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변수를 즐기고자 독립서점에 왔지만, 수많은 책들 중 한 권을 고르기는 안정 추구형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책방 주인분에게 좋아하는 책을 여쭤봤다. 평소에 어떤 책을 좋아하냐고 되려 여쭤보셨지만 온전히 다른 사람의 취향의 책을 읽어보고 싶은 모험을 위해, 나의 취향을 답하지 않았다.

한 권은 사장님의 추천 책, 한 권은 사장님이 적어둔 책 소개글을 읽고 고른 책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내가 읽는 책이지만 정성스럽게 포장으로 선물 받는 느낌이었다. 설레는 마음에 독립서점에 첫 방문이자 첫 구매라고 말씀드리자 이제 독립서점이 눈에 보일 거라는 말씀이 마치  "독립서점 입문을 환영한다"는 의미로 들렸다.





가장 행복했던 여행

여행 마지막 날, 제주 올 때마다 들리던 카페에 들렀다.

아무 걱정과 생각 없이 오롯이 작가가 말하는 문장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졌다.

여행 마지막 날 가장 행복했던 여행 여정의 방점을 찍었다.


겨울의 마지막 눈발이 봄날의 햇살과 인사했고,

빛에 반짝반짝 반사되는 빛들이 파도와 춤을 추고,

조용하고 고요한 동네의 바다, 구름 풍경을 바라보고,

달달한 민트초코라떼를 마시면서,

카페 사장님의 틀어주는 감미로운 노래 선곡과,

브랜드 이름까지 여쭤볼 만큼 침대같이 편안한 의자에 앉아

관계에 대해 위로하고 치유하는 책을 읽으며,

나에게 어색한 단어일 줄 알았던

진정한 '여유'를 온전히 즐기는 시간이었다.





다시 채워지는 일상.

제주도가 좋았는지, 독립 서적의 새로운 경험이 나를 설레게 했는지, 다른 곳에 집중함으로써 일 걱정을 잊을 수 있던 시간이 좋았는지 모르겠지만, 나의 계획과는 다른 변수들로 채워진 여행이었다.

그래서 이번 여행이 가장 좋았던 여행이었을까.


여행의 변수들로 인해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여행의 이유를 체감했다.


일상에서 더 많은 것을 담기 위해 비워내기 위해 여행을 하고 싶었다. 이번 여행에서 비워질 뿐만 아니라 깊어지고 더 넓어진 공간에 채우는 여행이 되었다.


일상에 복귀하자마자 비워진 만큼 다양한 인풋으로 채우는 즐거움을 다시 느끼고 있다.

인풋이 너무 많아 다시 비워냄이 필요할 때, 또다시 여행 가고 싶지 않을까?







사진으로 기록한 여행 조각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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