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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글 Mar 18. 2022

당당한 예술

마음의 크기는 한계가 없다.

어떤 일에 마음을 다 하면서도 내가 쏟은 마음에 연연하지 않고 내려 놓는 것이 쉽지 않다. 거기 들어가는 시간이 있기 때문이다.  예술을 하며 내가 쏟은 것에 비해 조금 되돌려받았다고 실망하지 않는 법을 터특하는 것이 마음을 닦는것이다. 아니 아예 결과는 생각하지 않고 예술을 하는 그 과정의 순간순간에만 집중하는 게 마음을 닦는 것이다. 글로 적고 보면 자기계발서같이 모든 일이 해결될 것만 같이 꿈과 희망을 가지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계속해서 찌그러진 마음을 되돌려먹어야 한다. 


불법 덕분에 나는 점점 내가 나은 사람이 되어간다고 생각이 들지만 불법에서는 점점 나아진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도 집착을 가져올 수 있다고 한다.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난다. 지금 이 순간은 희망도 갖지 말고 절망도 갖지 말고 눈 앞에 있는 현상 그대로를 보라고 한다. 이렇게 글로 써놓으면 진짜 허무하다. 내가 기계도 아니고 그게 가능하냐고요. 그럼 부처님은 말한다. 너의 마음의 크기는 한계가 없다. 누구나 부처가 될 수 있다. 투쟁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닦아라. 

와....이렇게 당당할 수가 없다. 스웩이 넘친다. 그래서 나는 불법을 사랑한다. 내 인생에 너무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성경에서는 무조건 믿으라고 한다. 내가 예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나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라고 하는데 나는 '믿음'이라는게 불법에서 말하는 연기법을 터특하는데 꽤 효과적인 역할극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분석하지 말고 알려하지 말고 무조건 믿으라! 일어날 일은 반드시 일어나기 때문에. 물론 성경도 불법도 너무 쉬워서 쉽지 않은 이야기를 하려다보니 오해투성이라는 걸 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 모든 종교는 똑 같은 이치를 전하고 있다고 진심으로 생각한다.


상당히 사이비스럽게 들리겠지만 NFT를 하면서도 '믿음'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내가 NFT 세계를 종교처럼 생각한다는게 결코 아님.) NFT는 커뮤니티 기반의 세계이다. 내가 NFT 커뮤니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은 나의 작업을, 나의 캐릭터를 쉽게 받아주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뭔가 계속 거절당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럼에도 그 혼란 속에서 나를 다시 보게 되고 타인을 새롭게 발견하는게 되는게 나에게는 마음수련과 비슷한 느낌을 준다. 그래서 되돌아 커뮤니티에 고마워지고 나는 뭔지 모를 거절 당하는 느낌을 가지고도 계속 다가가게 되는 것 같다. 의도적으로라도 밝은 표정을 하다 보면 진짜로 밝아지는게 종교에서 말하는 정진하는 '믿음'과 닮아있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예술이든 종교든 철학이든 다 괴로움없이 내 살고 싶은 대로 살자고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욕심이 올라올 때마다 욕심을 버리고 인생이 복잡하게 생각될 때마다 단순한 마음을 유지해야한다. 그래서 예술을 잘 하면 인생도 평온하다. 물론 과정에서는 괴로움이 많지만 단계단계 그 괴로움을 헤쳐나갈 때마다 어떤 희열과 깨달음이 있다. 예술한다고 불행해진다면 그건 예술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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